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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춘포면

원신동

구술일: 2012년 9월 2일
구술자: 정호은(1959년생)·남, 정순애(1943년생)·여, 이점순(1928년생)·여, 김순자(1947년생)·여
면담자: 장윤준,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마을유래담 :
- 원신동마을의 유래 : 미등골이란 기미년 흉년이 났을 무렵 이 지역만 물이 아주 잘 나와서 농사를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쟁시 피난처였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곳, 즉 미등골이라고 불렸다 한다.

2) 전설 및 민담 :
- 애장 : 오쟁이라는 것을 만들어 소나무 위에 얹어놓았다고 한다.
- 일본사람 : 일본사람들이 곡식을 너무 빼앗아가서 방죽에 마을사람들이 자신들이 먹을 곡식을 버렸다고 한다.

3) 민속 :
- 마을 축제 : 칠석날 술맥이와 기세배를 했다고 한다.

4. 구술 채록
A1 : 정호은 1959
A2 : 정순애 1943
A3 : 이점순 1928
A4 : 김순자 1947

B1 : 장윤준
B2 : 이순영

● ● ●

B1 : 우리 마을에 전설같은게 있습니까?

A1 : 제가 어렸을 때 그 전설의 고향. 전설의 고향이 방송에 나왔는데 여 돌박재라고 있지 돌박재. 돌박재가 나왔었어. 내가 그건 기억해.

● ● ●

B1 : 우리 마을을 옛날에 뭐라고 불렀습니까?

A2 : 여그가 미등골이라고 했지.

A1 : 여기가 왜 미등골이라고 허니 지금 이 부락 뒤에 있어 부락 뒤에 이공단 있는 디. 다른데는 가물어도 벼같은걸 못먹어도 하튼 여기는 먹었어. 여긴 물이 나가지고. 수랑이가 여까지 빠졌었어. 내가 여가지 빠졌었어. 그게 뭐 갈도 못허고 사람이 다 팠지. 그 미등골이라는 데만 거가 그랬어.

A2 : 여그는 미등골이라 피난처라고 했어. 피난민들이 다 와가지고 이런데서 미등골이여 믿을 수 있어서 미등골이라 피해가 없었어. 옛날부터.

B1 : 우리 마을엔 우물이 있었습니까?

A2 : 우리 마을은 여가 펄샴이 있어서 그랬지. 바가지샴. 인자 앉아서.

A1 : 우물이라고 부락에서 우물이라고 큰 샴을 해놨어.

A2 : 그때는 수도가 없고 물 하나가지고 전부 김장하고. 겨울에는 뜨건뜨건허고 여름에는 시원혀.

A1 : 막 짐나. 막 김났어 김나.

A2 : 그르고 또 여름에는 시원혀. 그리고 지내가는 사람들이 물 맛 좋다고 물이 달다고 그랬어. 여름물은 시원허고 여름에는 시안허게 얼은 놈 넣으면 다 녹아. 그래서 다 앉아서 바가지로 빨래하고.

A1 : 불과 샴 없어진지가 한 이십년밲에 안될 껄. 이 샴자리게 굉장이 컸어.

A2 : 물이 펄펄 넘어갔어. 저 미륵산서 나온다고. 물줄기가 저 미륵산서 나온다고 그랬어.

B2 : 샘의 이름이 따로 있었습니까?

A1 : 따로 없었지. 그냥 미등골 그냥 동네 우물이라고 혔지.

● ● ●

B2 : 그 미등이란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A2 : 믿음. 미등게 미등골이라고 했지. 피난민이라도 저렇게 다 오면은 쑥뿌리도 하나도 없었당게.

A1 : 사람들이 여기 피난이 와서 많이 살았다 이말이여 옛날에. 여기가 살기 좋다고 그래.

B1 : 우리 마을엔 어느 성이 제일 많았습니까?

A1 : 여기가 정씨들. 정씨들 파 있지. 나라 경주 정. 여그 다 살았었지.

A2 : 여그가 많이 살았지.

● ● ●

B2 : 그럼 우리 마을엔 천석꾼은 있었습니까?

A2 : 옛날에 강씨들이 천석꾼이었지. 여그 신동마을은 강가들이 부자 참봉이라고 다 망해가꼬. 옛날에 강참봉 강참봉.


● ● ●

B2 : 우리 마을에도 축제도 하고 그랬습니까?

A2 : 에에. 옛날에는 막 칠월칠석날에 굉장했지. 술맥이. 술맥이. 막 큰 깃대꽂고.
● ● ●

B2 : 우리 마을엔 구렁이 얘기 뭐 그런 건 없었습니까?

A3 : 그 집안이 안될라믄 그것이 나와서 그렇다대.

A2 : 대구에가 있는디 우리 XX가 장가에 큰 구랭이가 있드래야 그런다고 다 깜짝 놀라가꼬 숨겼다고 그랬디야. 우리 병원에가 있는디. 그래가고 영감 죽었잖여. 그 안좋을람 그서 나와. 집큼이.

A3 : 우리 집도 시어머니가 그렇게 죽었잖아.

A2 : 그전이 XX할매가 죽을려고 헐적이 울타리가 큰 구랭이가 그땐 짚푸락 울타리였잖여. 긍게 거가 기어댕기더라고. XX매 아퍼서. 머리 태우고 그랬어 옛날에. 어디 가라고.

A3 : 긍게 저기 우리 XX네 시어머니가 점쟁이였잖여. 아 장가가 큰 구랭이가 있드례야. 그랬더니 그르믄 죽을 끓여서 장가에다가 놔두라고 주라고 하드리야. 그래서 흰죽을 끓여서 장가에다가 놔줬더니 그거 반절을 딱 떼려먹었더라네. 그랬더니 그놈을 그 노인네도 먹으라고 허더리야. 그 놈을 먹어야 안죽는다고 그래서 그걸 XX네 할매가 먹었디야. 그래서 그 XX은 오래 살다 죽었어. 이런 사람들은 껄쩍해서 못적지. 아니 죽을망정 못먹지.

● ● ●

B2 : 우리 마을엔 도깨비 얘기나 미신같은 건 뭐 없습니까?

A2 : 옛날에 그저 이장네 아버지랑 우리 내 우에 언니랑 저기 팔봉 방죽으로 뽕 따라갔었어. 뉘여맥일라고. 그래가꼬 밤새도록 안와 비는 오는디. 그러는디 도깨비한테 홀려가꼬 밤새도록 해매다가 이튿날 서 왔드랑게.

A3 : 아 저 큰아버지같이 독허고 무서운 양반도 전주 갔다가 옛날에는 걸어오는데 저 돌박재 넘어 옹게 막 그냥 도깨비가 잡고 안놔줘서 거기서 막 밤낮 고함을 질렀더니 노점리 사람들이 낫같고 쫒아가서 거시기 허고 왔다고 하대.

A2 : 그리고 사람이 죽을라믄 까무귀가 까악 까악 하고 울고.

● ● ●

B2 : 우리 마을은 애장은 어떻게 했습니까?

A2 : 애들 죽으믄? 그 전에가 소나무가 크게 높응게 저렇게. 지푸락으로 오쟁이 맨들어서 엮어서 거기다 넣어서 솔나무 우에다 얹어놨다고 하대. 아이 옛날에 우리 시대 말고 옛날에 일본놈들 일때는.

● ● ●

B1 : 우리 마을은 춘포보다도 금마나 팔봉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시장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A2 : 이리로 갔지 이리로. 뭐 이고 걸어댕겼지. 연장이나 살라믄 걸로 갔지. 솥이나 낫.

A3 : 금마장은 읍이여 읍.

● ● ●

B2 : 우리 마을에 유래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A4 : 이동네가 옛날에 미등골이여 미등골. 여그가 기미면 숭년에 다 못먹었디야. 못먹었는디 여기 뒤에 막 수랑이 이렇게 쿨렁쿨렁 요만이나 되야. 막흔들려. 지금은 없어졌어. 근디 그래가꼬 기미면 숭년에 거기는 농사를 지어서 먹었고. 여 우물 있었거든 여 우물. 근디 이 여 이근방 우물에서 물이 흘러서 내려왔어. 내려왔는디 공단이 오면서 이 샴도 없어져버렸어. 물이 다 딸려가버려서. 그래서 여기가 미등골이여. 사람들이 믿어. 믿는다고 믿으니까 믿음골. 미듬골. 그리고 여그 여 여그 샴이 있는디 물이 항상 흘렀어. 날이고 24시간 항상 흘렀는디 공단 들어오면서 나뻐졌당게. 옛날 그 생각만 나는거여. 그래가지고 수랑이었어. 수랑.

● ● ●

B1 : 우리 마을에 대한 혈자리 이야기는 들어보신 것이 있으십니까?

A4 : 저족에 앵매(?)쪽에 가면은 산이 일케 생겼거든. 근디 인자 그게 뱸의 모가지리야. 모가진다 그걸 끊었더니 그 전설. 그 피가 흘렸다는 전설이 있대요. 저그 금마 앵무(?).

● ● ●

B2 : 그럼 우리 마을은 왜 신동이라는 이름이 있는겁니까?

A4 : 긍게 우리 아부지가 우리 동네 생긴지가 200년 되었다고 했어. 우리 클 때는 미등골. 옛날에는 미등골이 그 전에는 신동이었는디 그 저 말하자믄 기미년에 먹었응게 믿으라고 미등골이여. 그랬지 엣날엔 신동이었어.

A2 : 옛날에 우리 클 때 미등골이고 그 전에 신동으로 내내 불렀는디 도로 미등골로 되부럈어.

● ● ●

B2 : 우리 마을엔 일본 사람은 없었습니까?

A3 : 일본 사람들이 저 밥도 못해먹고 양식도 다 갖다가 가지가고 그렁께 다 수렁속에다 쳐 넣었드래야. 방죽. 방죽.

A4 : 그 논 속에다 그 논을 질라고 물을 가두는 거였어. 가둬놓는 데였어. 방죽이 있어도 논 가운데다가 그 물이 필요허믄 잠궜다가 이놈 갔따가 퍼서 붓는거여. 그래가지고 모를 심는거여.

문헌 내용

신동(信洞, 미둥굴, 원신동) : ‘신동’은 본 이름 ‘미둥굴’의 한문자 표기고, ‘미동굴’은 북편 들의 생수가 좋아 가뭄이 심해도 믿고 농사를 짓는 곳이므로 ‘믿음골→미둥굴’. ‘골’이 ‘굴’이 된 것은 모음조화 현상.‘원신동’은 신동과 구분하기 위한 것.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1) 마을유래담 :
- 원신동마을의 유래 : 미등골이란 기미년 흉년이 났을 무렵 이 지역만 물이 아주 잘 나와서 농사를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쟁시 피난처였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곳, 즉 미등골이라고 불렸다 한다.

2) 전설 및 민담 :
- 애장 : 오쟁이라는 것을 만들어 소나무 위에 얹어놓았다고 한다.
- 일본사람 : 일본사람들이 곡식을 너무 빼앗아가서 방죽에 마을사람들이 자신들이 먹을 곡식을 버렸다고 한다.

3) 민속 :
- 마을 축제 : 칠석날 술맥이와 기세배를 했다고 한다.

4. 구술 채록
A1 : 정호은 1959
A2 : 정순애 1943
A3 : 이점순 1928
A4 : 김순자 1947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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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전설같은게 있습니까?

A1 : 제가 어렸을 때 그 전설의 고향. 전설의 고향이 방송에 나왔는데 여 돌박재라고 있지 돌박재. 돌박재가 나왔었어. 내가 그건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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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을 옛날에 뭐라고 불렀습니까?

A2 : 여그가 미등골이라고 했지.

A1 : 여기가 왜 미등골이라고 허니 지금 이 부락 뒤에 있어 부락 뒤에 이공단 있는 디. 다른데는 가물어도 벼같은걸 못먹어도 하튼 여기는 먹었어. 여긴 물이 나가지고. 수랑이가 여까지 빠졌었어. 내가 여가지 빠졌었어. 그게 뭐 갈도 못허고 사람이 다 팠지. 그 미등골이라는 데만 거가 그랬어.

A2 : 여그는 미등골이라 피난처라고 했어. 피난민들이 다 와가지고 이런데서 미등골이여 믿을 수 있어서 미등골이라 피해가 없었어. 옛날부터.

B1 : 우리 마을엔 우물이 있었습니까?

A2 : 우리 마을은 여가 펄샴이 있어서 그랬지. 바가지샴. 인자 앉아서.

A1 : 우물이라고 부락에서 우물이라고 큰 샴을 해놨어.

A2 : 그때는 수도가 없고 물 하나가지고 전부 김장하고. 겨울에는 뜨건뜨건허고 여름에는 시원혀.

A1 : 막 짐나. 막 김났어 김나.

A2 : 그르고 또 여름에는 시원혀. 그리고 지내가는 사람들이 물 맛 좋다고 물이 달다고 그랬어. 여름물은 시원허고 여름에는 시안허게 얼은 놈 넣으면 다 녹아. 그래서 다 앉아서 바가지로 빨래하고.

A1 : 불과 샴 없어진지가 한 이십년밲에 안될 껄. 이 샴자리게 굉장이 컸어.

A2 : 물이 펄펄 넘어갔어. 저 미륵산서 나온다고. 물줄기가 저 미륵산서 나온다고 그랬어.

B2 : 샘의 이름이 따로 있었습니까?

A1 : 따로 없었지. 그냥 미등골 그냥 동네 우물이라고 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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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 미등이란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A2 : 믿음. 미등게 미등골이라고 했지. 피난민이라도 저렇게 다 오면은 쑥뿌리도 하나도 없었당게.

A1 : 사람들이 여기 피난이 와서 많이 살았다 이말이여 옛날에. 여기가 살기 좋다고 그래.

B1 : 우리 마을엔 어느 성이 제일 많았습니까?

A1 : 여기가 정씨들. 정씨들 파 있지. 나라 경주 정. 여그 다 살았었지.

A2 : 여그가 많이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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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우리 마을엔 천석꾼은 있었습니까?

A2 : 옛날에 강씨들이 천석꾼이었지. 여그 신동마을은 강가들이 부자 참봉이라고 다 망해가꼬. 옛날에 강참봉 강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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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도 축제도 하고 그랬습니까?

A2 : 에에. 옛날에는 막 칠월칠석날에 굉장했지. 술맥이. 술맥이. 막 큰 깃대꽂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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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엔 구렁이 얘기 뭐 그런 건 없었습니까?

A3 : 그 집안이 안될라믄 그것이 나와서 그렇다대.

A2 : 대구에가 있는디 우리 XX가 장가에 큰 구랭이가 있드래야 그런다고 다 깜짝 놀라가꼬 숨겼다고 그랬디야. 우리 병원에가 있는디. 그래가고 영감 죽었잖여. 그 안좋을람 그서 나와. 집큼이.

A3 : 우리 집도 시어머니가 그렇게 죽었잖아.

A2 : 그전이 XX할매가 죽을려고 헐적이 울타리가 큰 구랭이가 그땐 짚푸락 울타리였잖여. 긍게 거가 기어댕기더라고. XX매 아퍼서. 머리 태우고 그랬어 옛날에. 어디 가라고.

A3 : 긍게 저기 우리 XX네 시어머니가 점쟁이였잖여. 아 장가가 큰 구랭이가 있드례야. 그랬더니 그르믄 죽을 끓여서 장가에다가 놔두라고 주라고 하드리야. 그래서 흰죽을 끓여서 장가에다가 놔줬더니 그거 반절을 딱 떼려먹었더라네. 그랬더니 그놈을 그 노인네도 먹으라고 허더리야. 그 놈을 먹어야 안죽는다고 그래서 그걸 XX네 할매가 먹었디야. 그래서 그 XX은 오래 살다 죽었어. 이런 사람들은 껄쩍해서 못적지. 아니 죽을망정 못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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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엔 도깨비 얘기나 미신같은 건 뭐 없습니까?

A2 : 옛날에 그저 이장네 아버지랑 우리 내 우에 언니랑 저기 팔봉 방죽으로 뽕 따라갔었어. 뉘여맥일라고. 그래가꼬 밤새도록 안와 비는 오는디. 그러는디 도깨비한테 홀려가꼬 밤새도록 해매다가 이튿날 서 왔드랑게.

A3 : 아 저 큰아버지같이 독허고 무서운 양반도 전주 갔다가 옛날에는 걸어오는데 저 돌박재 넘어 옹게 막 그냥 도깨비가 잡고 안놔줘서 거기서 막 밤낮 고함을 질렀더니 노점리 사람들이 낫같고 쫒아가서 거시기 허고 왔다고 하대.

A2 : 그리고 사람이 죽을라믄 까무귀가 까악 까악 하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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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애장은 어떻게 했습니까?

A2 : 애들 죽으믄? 그 전에가 소나무가 크게 높응게 저렇게. 지푸락으로 오쟁이 맨들어서 엮어서 거기다 넣어서 솔나무 우에다 얹어놨다고 하대. 아이 옛날에 우리 시대 말고 옛날에 일본놈들 일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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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춘포보다도 금마나 팔봉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시장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A2 : 이리로 갔지 이리로. 뭐 이고 걸어댕겼지. 연장이나 살라믄 걸로 갔지. 솥이나 낫.

A3 : 금마장은 읍이여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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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유래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A4 : 이동네가 옛날에 미등골이여 미등골. 여그가 기미면 숭년에 다 못먹었디야. 못먹었는디 여기 뒤에 막 수랑이 이렇게 쿨렁쿨렁 요만이나 되야. 막흔들려. 지금은 없어졌어. 근디 그래가꼬 기미면 숭년에 거기는 농사를 지어서 먹었고. 여 우물 있었거든 여 우물. 근디 이 여 이근방 우물에서 물이 흘러서 내려왔어. 내려왔는디 공단이 오면서 이 샴도 없어져버렸어. 물이 다 딸려가버려서. 그래서 여기가 미등골이여. 사람들이 믿어. 믿는다고 믿으니까 믿음골. 미듬골. 그리고 여그 여 여그 샴이 있는디 물이 항상 흘렀어. 날이고 24시간 항상 흘렀는디 공단 들어오면서 나뻐졌당게. 옛날 그 생각만 나는거여. 그래가지고 수랑이었어. 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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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대한 혈자리 이야기는 들어보신 것이 있으십니까?

A4 : 저족에 앵매(?)쪽에 가면은 산이 일케 생겼거든. 근디 인자 그게 뱸의 모가지리야. 모가진다 그걸 끊었더니 그 전설. 그 피가 흘렸다는 전설이 있대요. 저그 금마 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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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우리 마을은 왜 신동이라는 이름이 있는겁니까?

A4 : 긍게 우리 아부지가 우리 동네 생긴지가 200년 되었다고 했어. 우리 클 때는 미등골. 옛날에는 미등골이 그 전에는 신동이었는디 그 저 말하자믄 기미년에 먹었응게 믿으라고 미등골이여. 그랬지 엣날엔 신동이었어.

A2 : 옛날에 우리 클 때 미등골이고 그 전에 신동으로 내내 불렀는디 도로 미등골로 되부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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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엔 일본 사람은 없었습니까?

A3 : 일본 사람들이 저 밥도 못해먹고 양식도 다 갖다가 가지가고 그렁께 다 수렁속에다 쳐 넣었드래야. 방죽. 방죽.

A4 : 그 논 속에다 그 논을 질라고 물을 가두는 거였어. 가둬놓는 데였어. 방죽이 있어도 논 가운데다가 그 물이 필요허믄 잠궜다가 이놈 갔따가 퍼서 붓는거여. 그래가지고 모를 심는거여.

비고

면담장소 : 원신동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오후 2시.
내용 : 지명유래 및 전설과 민담에 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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