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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함열읍

금성마을

구술일: 2012년 8월 13일
구술자: 소재문(1963년생)·남, 소만섭(1931년생)·남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지명 유래
전설 민담
민속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말랑산 : 금성마을 근처에 있는 산이다.
- 둥그레 방죽 : 큰 방죽과 작은 방죽이 있었는데 둥그레 방죽은 큰 방죽을 의미한다. 커다란 원형을 이루고 있어서 둥그레 방죽이라 한다. 현재 쓰레기 매립지이다.
- 진등 : 흙산 옆에 있는 마을명칭.
- 윗장터와 아랫장터 : 함열중학교를 기준으로 위쪽이 윗장터, 아래쪽이 아랫장터라고 불렀다. 윗장터에는 일본사람들의 상점이 많았다.
- 고라실 : 농사가 잘 되는 논을 뜻한다. 고랑에 물이 많아서 고라실이라 불렀다.
- 자라마을 : 용암에 있는 마을로 마을 형태가 자라를 닮아 자라마을이라고 불렀다.

2) 전설 및 민담 :
- 돌산과 흙산에 얽힌 전설 : 양쪽 산에서 싸움이 벌어짐. 싸울 때 돌과 흙을 던져가며 싸웠는데 돌산에선 흙을 던지고 흙산에선 돌을 던져 지금의 돌산과 흙산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 호랑이한테 물려갔다 살아 돌아온 이야기 : 진등에 살던 서당 선생의 아들이 호랑이한테 물려갔다. 소식을 듣고 쫓아간 마을 사람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 철도 이야기 : 원래 함라로 기찻길을 내려 했다. 그랬던 것이 함라 유지들의 반대로 무산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양반들이 사는 마을이기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반대 했다고 한다.
- 도깨비 이야기 : 겨울에 방죽 얼음 위로 오리만한 것들이 떼로 뭉쳐 다녔다. 그것이 도깨비이다. 또 빗자루에 피가 묻으면 도깨비가 된다고 전해진다.
- 공출 : 일제 강점기에 공출을 거부하면 엄동설한에 이십 일씩 감옥에 갇히거나 매를 맞는 일도 많았다. 땅에 묻어둔 쌀까지 찾아냈다고 한다.


3) 민속 :
- 돌산 씨름대회 : 매년 돌산에서 씨름대회가 벌어졌다. 석산 개발 이전까지 지속됨.
- 대보름 달짚 태우기 : 짚을 원뿔 모양으로 세워놓고 불을 붙였다. 소원을 적어 볕짚 사이에 꽂아 넣어 태우기도 했다. 짚을 태우면서 풍물을 쳤다고 한다.
- 무제 :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마을마다 무제를 드리는 장소가 다르며 금성 같은 경우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지냈다고 한다.

문헌 내용

금성(金城) : 전에는 ‘금성장터․걸망터․걸망장터’라고도 했다. ‘금성’은 본시 ‘검성(劍城)’으로 썼는데 그것은 그 지형이 칼처럼 생겼고, 또 풍수설에 보검출갑형(寶劍出匣形)이라 하여 이루어진 명칭이라 전한다. 걸망장터는 전에는 그곳이 시장이었는데 걸망장수 즉 보따리를 메고 다니는 보따리 장수가 많이 모인다 해서 생긴 이름.
- 익산시사 -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소재문. 1963년.
A2 소만섭. 1931년.

B1 이동혁.
B2 박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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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 여기 마을 모습이 어땠습니까?

A1 : 우리가 한 여섯 일곱 살 때는요 초가도 오래된 집이 많았었어요. 커가면서 집을 다 부시고 다 새로 인자 벽돌집을 짓고 쓰래트 짓고 했는데 그때는 진짜 오래된 집이 많았어요 흙벽돌로. 그 제가 또 알기로는 오래 전에 여기가 함열읍 장터였다고 그런 얘기도 있었는데. 여기가 동네 중심지였고 함열 역전 쪽으로는 허허벌판였다고 그러더라고요. 한두 가구 있고 여기가 중심지였다고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지금은 인자 저기 와리 시장 된지가 오래 됐죠. 우리 동네도 그쪽으로 인자 시장 보러 다니니까.

B2 : 어렸을 때부터 그쪽으로 다니셨습니까?

A1 : 예에. 우리 어렸을 때요. 긍게 선조 때부터는 여그서 그 장이 섰다고 그런 말씀들을 많이 들었어요 우리 어렸을 땐.

B2 : 예전부터 금성마을이었습니까?

A1 : 원래는 걸망장터였었는데요 긍게 우리가 어렸을 때요 그 함열 면장님이 동네를 금성마을로 지어줬다고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B2 : 왜 걸망장터였습니까?

A1 : 제가 알기로는 옛날 그 등에 뭐 지고 그걸 걸망이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걸망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걸망장터라고 그런 유래가 내려온 것 같애요.

B1 : 그 보따리장수들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 왔었습니까?

A1 : 인자 인근 면이나 지금으로 따지면 인근 면에서 인자 장보러 일로(이쪽으로) 많이 온 거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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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렸을 때는 어디서 많이 노셨습니까?

A1 : 그 말랑산이라고 있었어요. 근디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그 산이 좀 높았어요. 아주 높은 게 아니라 이런 산치고는 그 소위 말 많이 물었다고 혀가지고 말랑산이라고. 도로가 나있었어요. 그 산 쪽으로 그 말랑산 옆에 도로가 신작로라고 허죠. 한 넓이 2미터 정도 되나. 인자 모래 좀 깔려있고 자갈 좀 깔려있고 그런 길이 있었어요.

B2 : 강경 가는 길입니까?

A1 : 예. 긍게 저기 용안까지.

(이장님 아버지께서 오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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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옛날에는 여기 마을 모습이 어땠습니까?

A2 : 긍게 그전에는요 하늘만 뺀했어요. 이런 솔이 기냥 콱― 지서가지고 저 저녁 때 되면 어디 애기들은 바까티 내놓도 못허고 하늘만 빤했어요. 그전에 그 고가 담집이라고 있잖요. 고거 다섯 채 빼끼 없었쇼.

B2 : 장터였으면 넓은 공터가 있지 않았습니까?

A2 : 저그는 저 한 1미터 되는 도로가 있었거든요?

A1 : 말랑산 쪽으로… 용안면 쪽으로.

A2 : 거그가 거기 그 큰 맷똥처럼 막 이렇게 생기고 그 뒤가 도로가 있는디 거그서 그 장을 섰다고 허드라고요.

B2 : 그러면 어르신도 그 장 선 걸 못 보셨습니까?

A2 : 못 봤시요.

B2 : 말랑산은 왜 말랑산이라고 불렀습니까?

A2 : 말랑산이라고 그 장터 보고서 여기 우리 사는 사람들은 말랑산이라고 불렀어요.

A1 : 근데 지금은 그 산이 없어졌어요. 도로 나고 사차선도로 나는 바람에 그 산이 없어졌어요.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까지 그 산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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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다른 지명들은 또 뭐가 있었습니까?

A1 : 옛날에 방죽이 있었어요.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지금은 인자 익산시 쓰레기장이고 다 메워져가지고 우에까지 쌓여가지고 지금은 다 없어졌죠.

B2 : 그 방죽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둥그레 방죽이라고. 그 큰 방죽 작은 방죽, 작은 방죽도 있었어요. 근데 큰 방죽을 둥그레 방죽이라고 불렀어요.

B2 : 원형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렀습니까?

A2 : 예. 원형 비슷허게.

A1 : 말로는 한 백마지기가 넘는다고 그랬거든요. 굉장히 컸어요. 가이로만 돌라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지금은 쓰레기장 매립 다 싸가지고 지금은 인자 흔적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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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흑산하고 독산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1 : 흑산허고 돌산허고 쌈혀가지고 서로 뭐 돌이 됐다고 뭐 그런 얘기…. 흑산허고 돌산허고 싸워가지고 인자 흑산이 돌산 되고 그런 얘기 들었어요.

A2 : 독산이라고 허는 디는 그 질 막 꼭대기가 막 운동장 같텨요. 넓은 디 거그서 해마다 추석 때는 씨름대회를 했어요.

B2 : 함열읍 사람들이 다 와서 하는 겁니까?

A2 : 아니죠. 이 근방 낭산면 여그 저 웅포 함열 황등 그 모여가지고 그 매년 허는 게요. 씨름대회를 크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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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대보름날에는 달짚 태우기도 하고 그랬습니까?

A2 : 예 그렇죠.

B2 : 뭘 태웠습니까?

A2 : 그때는 주로 저기 뭐여 이렇게 막 뾰족허게 지어놓고 겉이다 마른 나무 놓고 막 태우고 그맀죠. 제사 같은 건 안 지내고.

B2 : 누가 태웠습니까?

A2 : 옛날부터 그렇게 허던 주례가 있어서 그런가 누가 아니라 그 부락에서 주도혀갔고 그렇게 혔는게비데요. 소원 같은 것도 써가지고 새내끼 그 새배기에다 넣어놓고 그르고서는 거기다 불 질르고 풍물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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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여기에 여우나 다른 짐승들도 많이 있었습니까?

A2 : 그런 건 있었죠. 여우같은 거. 여그 저 진등이라는 디는….

A1 : 흑산 바로 옆에 진등이라는 마을이 있어요. 그 레미콘 회사 옆에.

A2 : 그 뒤인디 그 서당 선생 아들인가를 호랭이가 물어가가지고 그때 서당이도 댕기다가 중판 미고 그리서 어떻게 살렸어요 그 아들이 살았었어요. 어떻게 했는가 하여튼 물려가다가 동네 사람들이 인자 불 키고 어떻게 혀갔고 그래갔고 살았었어요. 그때가 오래 되죠. 한… 제가 한 열두 살이나 그 정도 됐을 거예요. 그러니까 일정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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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때 부모님 담배 심부름을 곧잘 하셨다고 함. 담배 가게에선 일본말을 써야하는데 제대로 말하지 못했을 때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고 함.)

B2 : 그 담배를 어디로 사러가셨습니까?

A2 : 그 저 일본놈 승으로 조기라고 여그 여 윗장터.

B2 : 어디가 윗장터고 어디가 아랫장터입니까?

A2 : 함열중핵교 있잖요. 고 밑이가 아랫장터 그 위는 인제 윗장터 그맀어요.

B2 : 일본사람들의 상점이 그 윗장터에 많았었습니까?

A2 : 예 윗장터에가 많았어요.

B2 : 아랫장터에선 뭘 많이 팔았었습니까?

A2 : 아랫장터는 인제 시장이죠. 5일마다 한 번썩 허는 시장. 윗장터는 인자 별로 장이 안 스고 아랫장터에서만 시장이 섰었어요. 그리고 인자 그 위는 인자 농사 짓는 일본놈들만 많이 인자 주택을 짓고. 조선사람 논을 착취를 했나 혀갔고 그 좋은 논만 많이 지어가지고 그렇게 논 짓고.

B2 : 일본사람들이 여기서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까?

A2 : 많이 지었는디 인자 돈으로 짓죠. 사람들 사가지고. 그러고 인자 기냥 소작으로 내놓고 인자 가을에 얼매씩 걷어서 가고. 장사하는 사람은 불과 한 댓집, 그 사탕이라고 있잖요 그 다음에 담배장수, 일본 물품 뭐 그런 거 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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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함열역 생겼을 때 모습이 어땠습니까?

A2 : 생겼을 때 지금이나 똑같아요. 아주 그때 옛날 촌이라 시장이라고 5일마다 한번 스는디 사람도 별로 모이도 않고. 촌에서 뭐 채소 같은 거 혀갔고. 사람이 많이 모이들 않았어요 장은 섰어도. 여기 장이 그리 옮겼다고 허드랑게. 걸망장터에 있던 장이 함열 거그로.

B1 : 철도 만들 때 무슨 사고 같은 게 있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보셨습니까?

A2 : 저 여그 함라라고 허는 디가 부자가 많이 살잖요. 그리 인자 기찻길이 나게 돼있는디 그 돈 있고 인자 유지급이지 인자 한국사람으로 허면. 그 함라면 사람들이 그리 시끄럽고 그런다고 그리 철로가 못 나게 요그가 이리로 인자 나가게.

A1 : 함열혀서 익산으로. 그 양반들이요 시끄럽다고 그 함라로 철길을 못 들어오게 막았대요. 그래서 용안에서 함열로 혀서 황등에서 익산으로 빠졌다고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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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읍내로 나가서 놀거나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A2 : 그전이는 써커스나 영화 들어오면 그거 구경 가고 약장사 오면 약장사가 주로 많이 왔어요. 지금은 인자 그런 게 없드라고. 약장사 막 큰 홀 크게 쳐놓고 돈 받고 들으가고. 씨름대회도 저 함열서 주로 많이 허고 그랬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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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도깨비 이야기 들어보신 거 있으십니까?

A2 : 도깨비가 그전이 말 들으먼은 이렇게 저 방죽이 이렇게 썩 가먼요 그 얼음 위로 인자 그 뭐시 오리만 썩 허게 생기가지고 막 사람 멀리 떨어져 갔고 막 그놈이 이렇게 막 한 떼로 몰려갔고 막 돌아 댕긴다고 수십 마리가. 긍게 이런 사람은 인자 겨울이가 뭔 오리가 얼음 위로 다니나. 긍게 그게 말허자먼 그 나중에 말 들은 게 도깨비가 그랬다고 허드랑게. 근디 그 오래 쓴 그 빗자루 있잖요. 그것이 그때 말에는 그 자루나 어디가 피가 묻으면, 사람 피가 묻으먼은 그것이 둔갑을 혀갔고 그렇게 수백 마리씩 수천 마리씩 이렇게 돼갔고 그 사람을 그렇게 홀린다고.

B2 : 그걸 직접 보셨습니까?

A2 : 예 봤어요. 저기 저 낭산면허고 함열 그 고라실이라고 거기는 나락만 비면 물을 다음해 농사짓기 위해서 거기가 굉장히 넓어요 막. 물을 잡으믄 그 외갓집 우리, 내 외갓집이 거그 살거든요. 긍게 뭐 동네사람들이 그러드라 저 시방 물이 잽혔는디 그 위로 얼음이 얼어갔고 도깨비가 시방 막 오리가 돼갔고 막 수십 마리씩 이렇게 돌고 댕긴다고. 외갓집 뒷동네 올라가서 사람 여럿이서 본 게 사실 뵈요. 막 스케이트 타는 것처럼 오리만 썩 헌 것이 막 돌아 댕기는 거여.

B2 : 고라실은 왜 고라실입니까?

A2 : 왜 그냐면 그것은 인자 나락이 잘 되요. 이 부락물이 인자 비오면 빠져 들어가 가지고 그 거름물이 인자 빠져 들어가거든요. 그것은 비료 약간만 줘도 난리나. 잘 되요. 여기 여기도 논이 있지만 잘 되가. 이 부락에서 그 거름물이 막 비오면 내려가 가지고 비 많이 되면 넘쳐서 못 먹어. 그래서 고라실이요.

B2 : 고랑에 물이 많아서 고라실입니까?

A2 : 예. 물이 많이 막 묻혀(?)가지고 거름물이 거그가 저장이 된 게 벼가 잘 될 수배끼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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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 근처에 용이나 자라하고 관련된 지명은 없습니까?

A1 : 용암에 자라마을은 있는가 알고 있어요. 우에서 보면은 그 마을 모양이 형태가 자라처럼 생겼다 그래가지고 자라마을이라고 저도 들었어요. 듣기만 했죠. 그 자라마을 있어요 용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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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물이 부족했으면 무제도 지내셨습니까?

A2 : 그런 건 있었죠. 비가 하도 안 오면 인자.

B1 : 어디서 무제를 지내셨습니까?

A2 : 그것은 인자 큰 나무 오래된 나무 옆에 가서. 근디 지금은 없죠 싹 비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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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 오면서 보니까 도로 왼쪽에 높은 산이 하나 있던데 그 산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동지산이라고. 근디 왜 동지산인지 그 유래는 잘 몰라요.

A2 : 그 밑이 동네가 동지메요 부락이름이.

A1 : 그래서 동지산이라고 부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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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르신 어렸을 때는 뭐하고 노셨습니까?

A2 : 그전에는 그 저 막 이런 데다가 그 위장을 허고 그때는 요대 허리다 둘르고 총 막대기총 맨들어갔고 막 쌈허는 시늉 그걸 주로 많이 했지. 그걸 이런 디 보릿밭티 그런 디서 많이 했지. 보리 인자 패기 전에 그걸 주로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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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이야기나 산적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지만 모르겠다고 대답하심.)

A2 : …그전이 도박을 많이 혔어요. 여그 시악(?) 모시는 묘가 있는디 그 솔이 막 이런 디 꽉 찬 게 어디 앉을 디가 없고 그 묘 옆으로는 공간이 있잖요. 거그서 막 낮에도 막 수십 명씩 와서 도박을 주로 많이 했시요. 하여튼 수십 명씩 매일 거그서 도박을 혔어요. 도박이 매일 있어요. 그 시악(?) 모시는 묫동 그 본래가 높거든요.

B2 : 일본사람들도 같이 했습니까?

A2 : 빈촌에서는 못 허고 돈 있는 놈들이 여그가 비석지고 헌 게 여기로 모여든 거죠. 그때는 그냥 도망허기가 좋은 게 그래서 거그서 주로 많이 했는가 보대. 도박 여기 어려서 참 여기 심했어요.

B2 : 도박하던 사람들이 누굴 보고 도망쳤습니까?

A2 : 그때 그 제정 땐 게요 경찰들 일본놈 순사, 누가 밀고 허먼 와서 잡는게비드라고. 긍게 막 그 벌판인 게 도망갈 기회는 있잖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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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일정 때는 어땠습니까?

A2 : 그게 그 일본놈 땅을 주로 농사를 짓는디 그때는 인자 공출이라는 게 있어요. 그거 인자 농사 지어갔고 일본 땅을 지고 인자 일본놈이 달란 데 주고 나머지기 인자 먹고 살아할 거 아니요. 근디 막 그 나락 내라고 허는디 낼 수가 없지. 그러면 가두고 막 두드려 패고 막 그리갔고 기냥 그 엄동설한에 그 막 차디찬 감방에 가서 한 이십 일씩 견디고. 그 막 매 맞고 나온 사람도 있어요.

B2 : 함열 지소가 어디 있었습니까?

A2 : 중핵교 여기 중핵교 옆에가 있었거든요. 근디 그때 막 매도 무지허게 맞고 안 내믄. 그러고 막 그 고림장(?) 캐는 그 섯대질이 허는 게 있거든요. 그걸 막 그 짚 부근에 찔러봐요. 나락을 묻었나 안 묻었나. 그래갔고 막 묻은 사람도 있었지. 있으면은 그 놈 막 구딩이 파가지고 싹 가지가고. 그때는 긍게 농사지어도 밥을 제대로 먹들 못혔어. 다 뺐어간 게.

B2 : 일본사람들 물러가고는 어땠습니까?

A2 : 일본놈 물러가고는 인자 그 짓던 농사는 그 염부(?)상으로 넣기로, 그렇게 계약을 허고 인자 자기 땅을 맹글었지. 인자 그때 20년인가 15년인가 그 땅값을 백섬이먼 인자 십년이면 한 해 얼매씩 분할해갔고 갚으면 인자 개인 땅이 됐었어요.

비고

면담장소 : 함열면 와리 금성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13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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