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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함열읍

노인대학2

구술일: 2012년 8월 14일
구술자: 김종오(1922년생)·남, 임수웅(1931년생)·남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지명 유래담
기차이야기
민담
1) 지명 유래담 :
- 동지메 : 옛날엔 태목산이라 한다. 그게 어느 왕의 태를 이 산에 묻어놨기 때문에 태목산이라 했다고 한다.
- 독산 흙산 : 두 장수가 독산에선 독을 던지고 흙산에선 흙을 던졌다고 한다.

2) 철도 이야기 :
- 함열의 생성 : 원래는 함라로 갈 철도가 양반들의 반대로 함열로 왔다고 한다.
- 철도의 이야기 : 성냥을 팔려고 철도를 타고 가다가 흘리는 바람에 성냥끼리 불이 붙어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 함열의 형상 : 조리식이라고 한다. 복조리 같은 형상. 그래서 부자를 되면 돈을 모으면 떠나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복조리에 부가 쌓이면 옆으로 넘쳐 떨어지기 때문이다.
- 박헌영 : 박헌영과 같이 공산당 운동했던 사람이자 돈을 대줬던 사람이 함라에 살았는데, 그 분은 북한에 가서도 돈이 많아 암살당하지 않았다고 구술채록 되었다.

4) 기타 :
- 담옥 농장 : 담옥이라는 일본인이 담옥농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해방 후 일본으로 도일 했다고 전해진다.

문헌 내용

함열 와리 : 1914년 와리․정동․미륵리․동지리․삼양리의 전 지역과 동삼면(東三面)의 두라리(豆羅里), 용안군 남면에 속했던 안대동(安大洞) 일부로 구성됨. 본시 ‘지와말, 지와골’이라 했는데 그것은 기와를 굽던 곳이었으므로 생긴 이름이다. 1979년 7월 10일 익산 군청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익산시사』

동주사(東柱寺)
◦ 소재지 : 익산시 함열읍 와리
대한불교 조계종 제 17교구 금산사 말사인 동주사는 전하는 바에 의하면 1930년경 어느 비구승에 의하여 창건되어 함열의 중심사찰이었다고 하는데, 이후 거의 폐찰되었다가 1958년 화엄신앙을 독실하게 가지고 있는 이경법 비구니에 의하여 중창되어 화엄신행의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찰의 가장 큰 특징은 화엄경 신앙의 포교에 적극적이라는 점으로, 법당안의 불단 위에는 화엄경 필사본이 모셔져 있어서 신도에게 화엄경을 수지독송하도록 권하고 있다.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 김종오(91)-1922
A2 : 임수웅(81)-1931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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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동지메가 왜 동지메입니까?

A1 : 함열 동지메 이렇게 동지란 것이 함열 생긴지로 XX싸코 이 부락이 저 동지라고 있었었어. 그래가꼬 원 동지산은 용안면에 갔어. 용안면 동지산리가 있어. 근데 이 산이 있잖여. 이게 동지 산인지 그 산이라고 하나 우리 동네로 했었는디 왜 그러냐면 남부지방. 거기가 함열 철길 있잖여. 거기가 동지 산이여.

A2 : 긍게 함열 동지 용안 동지 동지가 두 개여 현재로 지금.

A1 : 긍게 여기는 동지부락이고 동지리는 용안면이 있고.

A2: 그리고 동지산이 동지산이 아니라 태목산이여. 왜그냐면 어느 왕이 태를 놔서 이 동네 여기다가 태를 묻었대. 우리 친정 아부지한테 들었어. 태는 애기 낳으면 그 태를 깔고 앉아서나 그렇게 애기가 크거든. 근디 낳으면 그것도 낳아. 근디 낳으면은 그 태를 우리 친정 아부지한테 들었는데 이 태를 동지 태목산이다 묻었대. 그래서 태목산인디 지금 동지산으로 변했대. 왕이 누군지는 모르고 우리 친정아부지한테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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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근디 내가 볼 때는 함열이란 것이 어떻게 생겼냐는 것이 어쨌냐믄 본래는 여가 함라면 함라면 가면 함열이라고 있어. 근디 이 철도를 낼 적에 낼 첨인디 그 함라 용안 동지면 있었는디 거그까장 가가꼬 함라로 갈 참인데 함라 사람들이 말여 아 그라안해도 그냥 과거 시험보러 갈 적에 사람들 전부 여기 와서 일주일씩 묵고 가는데 도둑놈들만 많이 키운다고 놓은 것이 놓으러 왔어. 여기로 왔어.

B2 : 그래서 양반들이 도둑들까봐 함라로 못 내게 했다는 것입니까?

A2 : 에에. 에. 상것들이 소리난다고.

A1 : 그래가지고 여기 와서 철도 내는데 그 때 철도 같은 것을 낼 적에 그 때는 참 어려서 빤스 하나 입고 댕겼건디. 참 뭐 허고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해야서는 동지부락이 함열 시작이 되야부렸어.
B2 : 그렇게 함열이 시작했군요.

A1 : 그래가서 거가 왜 그러냐면 철도 함바라고 있잖여. 거기서 일하면서 밥 먹는 사람들. 거기서 인자 거기서 일하면서 밥먹고 크고 그랬는데 나중에 함열에다 철도를 내면서 보니까 함라서 안만낭게 함열이란 데가 해가지고 애초 시작이 거기서 동지라는 데서 건널목작 냉겨내. 그래가지고 애초에 거기서 허다 이 길을 내려다 하니까 함열을, 산 땜에 못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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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함열의 형세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A2 : 옛날에 옛날에 함열에서 돈을 벌으면 조리식이래. 쌀 이렇게 이렇게 한 줌이면 딱 붙잖아. 조리 식이라 부자되면 떠야 한다. 쏟으니까. 그 쌀을 도로 엎응게. 엎으면 손해본다 이거지. 벌기는 잘 버는데 쏟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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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옛날 유명한 사람은 없습니까?

A1 : 박헌영이가 공산당 이 저 누구랑 했는디 누구냐면 함라 김XX이 아들. 함라 김XX이 아들. 박헌영이는 거기서 살해당했지만 거시기는 안 죽었었어. 이 공산당 애초에 할 적에 김해중이라고 그 분이 돈 있으면 박헌영이 비서했었어. 그래서 돈을. 박헌영이가 공산당 그거 해가꼬. 그 운동 한 것은 김해중이라는 사람이 돈을 다 대가지고서난 그래서 이북서라도 박헌영이는 사형당했지만 해중이는 사형 안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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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철도 생길 적이 함열은 어떤 동네였습니까?

A1 : 에? 아 긍게 철도 생길적에 아무것도 없었다니까. 아무것도 없고 나 사는 동지라는 데가 성당서 오는 길이 있고 용안서 오는 길이 있는데 거가 왜 그러냐면 전라도 남도 사람들 길이 전부다 우리 동네로 있었어.

B2 : 함열에 철도가 생기고서 일어난 이야기 같은게 있습니까?

A2 : 그렇지 철도 생기고 좋아졌지. 내가 그 옆에서 사는데 바로 철도 옆이 시방도 거가 살어. 일곱 여덟살 때부터 사는데 그 전에 성냥 성냥을 한 거시기를 짊어지고 서울로 가다가 저 탈 것이 없응게 차 거시기를 잡고 가다가 우리 그 차 옆에 우리집 돌아가면서 떨어졌어. 떨어져서 성냥에 불이 났어. 솔직히 불나면 어떡허것어. 그래가꼬 죽었어. 말하자면 성냥이 성냥끼리 부딪히니까 그걸 내가 봤어.

B3 : 독산 흙산 전설에 대해서 들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A1 : 긍게 독산 흙산이 싸우는디 싸울 적에 독산에선 독을 던지고 흙산에선 흙을 던져가지고 그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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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후 오후 1시 2차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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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신익희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 있습니까?

A1 : 그 신익희씨가 참 거시기 해가꼬 그 때 대통령 헐 적에 이승만씨하고 못살겠다 갈아보자 나온 데가 신익희씨 대통령 나왔었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신익희씨때문에 나온 말이여. 신익희씨가 그래도 거시기 해가꼬서난 암살당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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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일본인은 우리 마을에 누가 있었습니까?

A1 : 담옥이라고 허믄 다 알어. 긍게 담옥씨는 일본서도 10대 재벌이여. 그래서 담옥농장이라고 있었어. 논이. 담옥이 사위가 이름은 모르는데 여길 왔다갔다 쌀을 해가지고 그랬지. 그래서 우리가 그래가꼬 담옥 살던데를 갔었어. 갔더니 담옥이 앉았던 의자가 있어. 거기를 뜯어가꼬 뭔가 했더니 시계. 회중시계. 회중시계 안이를 봉게 담옥이 사진이 있었어.

B2 : 해방 뒤에 그 농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A1 : 그래가꼬 담옥이한테 사우가 있었는데 다 일본으로 도망가버리고 다 정부땅이 됐지.

비고

면담장소 : 함열읍 노인대학
면담시간 : 오전 11시, 오후 1시.
내용 : 지명유래, 기차이야기 및 민담 등에 대한 조사

구술 사진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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