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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함열읍

방교마을

구술일: 2012년 8월 15일
구술자: 황순생(1938년생)·남, 황순식(1935년생)·남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방아다리라고 불렀다. 물레방아돌이 있었던 동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상마 : 걸인이 상마에서 상을 차려서 먹었다고 전해진다
- 용지리: 용이 올라간 자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초마골: 옛 군대의 요지로 써 군대의 말의 풀을 먹이 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다송리: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 웃서당: 인민군과 국군이 싸우던 곳이다.

3) 전설 및 민담
- 도깨비 불: 반딧불 보다는 큰 불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 귀신: 전쟁터에서 죽은 귀신들이 비가 오기전에 소리를 질렀다고 전해진다.
- 용지 동네의 도깨비: 용지 동네사람들이 팔월 열여섯날 캄캄할 때 도깨비가 들판에 나타나서 모여서 구경을 했다고 한다.


4) 민속
- 독산: 함열 전체 처녀 총각들이 독산에서 공개맞선을 했다.

문헌 내용

1830년 경 우주황씨(紆州黃氏)가 살기 시작했다 한다. 마을 이름은 지형이 삼각형으로 생겨 디딜방와의 다리(공잇대)와 같다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방아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거의 두 내나 두길이 하나로 합해진 곳, 또는 들이 위는 좁고 밑은 넓어진 곳, 또는 지형이 삼각형으로 된 곳 등과 같이 그 지형이 디딜방아의 발로 밟는 부분과 같은 곳이니 익산군내의 오산면, 황등면, 낭산면의 방아다리도 그렇고, 정읍군 북면의 ‘방아다리’, 진안군 마령면, 충북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와 상평리, 충북 괴산군 증평면 사곡리에 있는 ‘방아다리’도 또한 그렇다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황순생(75) 1938년
A2 황순식(78) 1935년


B1 박태건
B2 이동혁
B3 이호형



● ● ●

A1: 방아다리의 유래가 이 앞에가 방아다리라는 동네가 이 앞에 있는데 거기에서 물레방아식으로 방아가 있어서 그 디딤돌이 방아 돌이 있어가지고 방아다리다.

B2: 어르신은 어디 마을에 사십니까?

A1: 나는 인자 살기는 서울 살지만 여그가 고향이니까 나 여기서 자랐지 자라가지고 그렇게 되어있고 내가 아는 디는 인자 ‘박전지’는 어느 걸인이 밥을 얻어 먹을려고 오다가 지나가다가 ‘박전지’에서 바가지에다가 밥을 얻어가지고 ‘상마’이라는 동네가 또 있어요 ‘상마’라는 데서 인자 상을 차려서 거그서 먹었다 그런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어요 그리고 ‘용지리’라는 디는 거기에서 용이 올라가서 ‘용지리’다 그렇게.

B2: 걸인이 밥을 얻어먹었다면 주변에 부자가 살았었나봐요?

A1: 부자가 살었다 고는 부자마을은 아니었고 여하튼 돌아다니면서 걸인이 방아다리를 거쳐서 ‘박전’이라는 데서 얻어가지고 ‘상마니’로 넘어가서 상을 차려서 먹었다 그런 이야기로만 들어서 ‘상마니’

B2: 어르신 어디서 자라셨나요?

A1: 요그 방아다리에서 자랐지.

B3: 방아마을.

A1: 그렇지 방아다리다 방아다리라고 하지 방교 그러니까 교자가 다리 교자를 써서 방교로 되어있다고 물레방아가 있는 그런 돌이 있었던 동네이다 그렇게만 우리가 어렸을 때 들었고 여그 지금 학교 터가 ‘초마골’이라고 하거든? ‘초마’ 풀 초자 말 마자 그 여그는 말하자면 군대 요지로써 군대 말들이 여그와서 풀을 뜯기고 뭐 군마를 가따가 풀을 제공한 그런 유래가 있어서 ‘초마골’이다 지금 내가 어렸을 때 여그가 지금은 평지가 되었지만 6.25전쟁 때는 그래서 ‘다송리’자나 많은 다자 솔 송자 솔이 빽빽 했어요 그래가꼬 6.25전쟁 교전을 여기서 했어요 여기서 했는데 저그가며는 ‘매교’라고 하는 길옆에 있는 사람이 인민군이 말하자면 척후병으로 데리꼬 그때 아군은 지금 이 솔밭에 있는데 잠복을 했어요 우리 아군이 그 인자 인민군은 저 함열 쪽에서 오고 근디 여기서 아군이 잠복하고 있는 가 아닌 가를 저 쪽 ‘매교’에 있는 그 길옆에 있는 민간인을 동원하가꼬 전초적으로 앞세웠단 말이여 그러니까 인민군은 뒤 떨어져있고 그러니까 민간인이 여그 가가지고 총알바지가 된 거여 그니까 우리 아군들은 군인인지 민간인인지를 모르고 그래가지고 인민군 3명이 그 민간인 3명을 대리고 이 고개를 넘어가는 데서 그냥 명중시켜서 인민군 3명 죽고 민간인도 3명이 죽고 그런 유래가 지금 보니까 별로 안 높았어도 우리 어렸을 때는 그게 상당히 높은 언덕이었는데 인자 온 게는 평지지 평지로 느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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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 언덕은 무엇이라고 불렀나요?

A1: ‘웃서당’이라고 그랬어 ‘웃서당’

B3: 서당이 있나요?

A1: 서당이 지금도 있지 저그도 정씨 제씨를 서당이라고도 하고.

B3: 다른 마을에서도 그 서당에서 공부했나요?

A1: 그랬지 그 전에는 모여 가꼬 그랬는디 다녀가지고 다녀서 공부를 했나 안 했나는 우리도 모르지만 그렇게 이름에 유래가 그렇게 들었지.

B2: 그 서당에서 큰 인물이 나왔다는 소리는 못 들었나요?

A1: 큰 인물은 뭐 지금 정성호씨가 큰 인물 전북대학교 전북 뭐 병원 전북대병원 원장으로 취임해서 여그 프렌카드도 받았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 우리 후배 여그 출신이여.

B2: 그것 보다 옛날에요.

A1: 옛날에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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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러면 ‘방교’마을 이야기 좀 해주세요.

A1: 아 근게 내가 아는 데로 이야기를 아까 이야기도 걸인이 얻어먹으면서 인자 방아다리에서 방아 찧는데서 인자 얻어가지고 ‘박전지’에서 바가지를 얻어가지고 거기따 밥을 얻가꼬 ‘상마니’가서 상차려서 먹고 김삿갓처럼 사라진 그런.

B3: ‘박전지’가 ‘박전’마을 이죠?

A1: 저그가 ‘박전’부락이라고.

B3: ‘박전’마을이 밭이 커서 ‘박전’이라고 하던데요.

A1: 아니 말은 밭전 자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바가지를 얻어서 그렇게 했다.

B3: 어르신 성함과 연세를 여쭈워 봐도 되겠습니까?

A1: 38년 3월27일생 황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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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 이야기)

A1: 저 ‘동지메’산이라고 지금 뭐 되었는가 모르겠 것고마는 거그가 병원이가 있었어 함열에 ‘동지메’ 위에 꼭대기에 저 일정시절에 지은 집이 있었는데 그게 병원 이었어요.

B1: 일본인 병원이었나요?

A1: 아니요 6.25전쟁 인게 그런 건 없었지마는 거기를 가니까 여그 수류탄 파편이 뾰족하게 올라오더라고 그래가지고 그걸 빼내가지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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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릴 때 그런 곳에서 많이 놀았나봐요.

A1: 아-- 놀때가 뭐있어 6.25전쟁 끝나고 탄피 같은 거 또 전쟁 때 참 군인들이 총을 맞고 죽어버렸으면 모르는디 어설피 다친거 돈으로 피를 닦아가지고 버린 거여 종이로 종이는 없지 총 맞고 그러니까 갈대 같은 그런 풀 있어 그걸로 어떻게 할 수 없고 그러니까 돈 인게 소중하게 넣었겠지 넣고 보관 했던 것을 죽어가니까 필요 없자나 그런게 그 돈으로 피를 맞은 상처를 씻어서 버린거야 이제 그런 것도 줍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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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일정시대 때 들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A1: 일정 때는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여 인자 2학년 때 해방이 되가지고 아 일본군이 무서웠지 말 타고 그러면 그 앞에서는 서있으라면 하루라도 서 있어야해 움직이면 큰일 나.

B3: 기찻길에 대한 이야기 들으신 것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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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역’ 건설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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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혹시 이 지역만의 별미가 있나요?

A1: 그런 유명세 난 건 없고 우리 어렸을 떄 가난하다고 해서 ‘풀때죽’이라는 것은 있었는데 우리가 아는 주식은 밥 쌀 그 다음에 보리 그 다음에로 밀이여.

B1: 광복 때 풍경 기억나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A1: 그런 것은 뭐 좋아한 것뿐이지 뭐 여그서 무슨 태극기를 들고 나갈 인물도 없었고 먹고 살기도 힘든 이런 처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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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어릴 때 도깨비나 여우 이야기 들으신 것 있으신지요?

A1: 그런 것은 안 들었지만 여그서 인자 전쟁을 했다고 했지 않았어? 전쟁에서 사람이 죽고 그러니까 도깨비는 못보고 도깨비 불이라고해서 막 반딧불 보다는 크지마는 왔다갔다 하는 것은 보았고 실체는 없지마는 하여튼 불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보았고 지금은 그런 것이 없지만 나 어렸을 때 비 올라고 하면 여기에서 전쟁터에서 죽은 귀신들이 막 소리를 지르는지 하여간 멀리에서 들리데로 막 뭔 부르는 소리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B1: 다른 사람도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까?

A1: 우리 어렸을 때는 그렇게 공감을 했지마는 지금 나무 다 죽어버리고 나는 그런 걸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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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이 근처에 명당자리가 있나요?

A1: 그 명당자리라는 것은 못 듣고...

B1: 그럼 주변에 있는 ‘와야’ 못이 왜 ‘와야’ 못인 줄 아시는지요?

A1: ‘와야’라고 하는 뜻은 저 ‘와야’ 동네에서 있던 사람들 한테 물어보면 나보다 자기들 들은 이야기를 알겠죠 ‘와야’ 못은 그 방죽이었어 방죽 농사 짓기 위해서.

B1: 전설 같은 것 들으신 것 있으세요?

A1: 근게 전설이야기가 걸인이 밥 얻어먹은 그런 거 밖에...

B1: 그러면 마을에서 금기시 하고 했던 것이 있나요?

A1: 여그가 기독교 신앙이 빨리 들어 왔어요 여그가 그래서 그런 것은 퇴치 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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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 이야기)


A2: 8.15 해당 때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인데 우리 집에서 태극기를 가지고 동네로 줄 서가지고 만세를 부르고서는 나가가지고는 저 함열읍까지 가서 그냥 축하하고 그런 걸 많이 그랬어요.
B1: 지금 함열 천주교 성당자리가 예전 6.25때 사람들이 죽었던 자리라는 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신지요.

A2: 6.25때 이전에 있었지요.

B1: 공산당들이 사람들 죽였다고 하던데요?

A2: 아니여 저 공산당들은 하나도 안 죽이고 갔어요 미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군인들이 우리 집까지 왔어요 우리 집까지 들어 왔어요 그래서 말 타고 이런 사람들이 군인이 되어가지고 왔더라고.

B1: 어린 사람들이?

A2: 예 그리고 사람 죽인 것은 그 사람들이 지나가고 그 여기 있는 지방 공산당들 이 민주당 들을 다 잡아가다 거기서 ‘정동’이라고 하는 데가 있어 ‘정동’마을에 주세시설을 만들었어 거기다 가두어 가지고 진행을 했지요 군인들은 죽이 덜 안았어.

B1: 그 자리가 밑에 굴이 있어서 그 굴을 메워서 성당을 지었다고 하는데요?

A2: 그건 내가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르는디 그 성당이 오래전에 세워졌는디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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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개인사 이야기)

A2: 아까 도깨비 이야기 하더만 ‘용지’동네가면 벌판이 있어 철도 길로 해가지고 그 위에로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 왜냐하면 팔월 열여섯 날 캄캄할 때 있자나 도깨비가 그 들판에 나타난다고.

B1: 그 이야기 언제 들으셨나요?

A2: 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리 구경도하고 도깨비 볼라고 나가기도 하고 그랬죠 근디 요세는 없어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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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디라고요?

A2: ‘용지리’ 그 동네가면 그 이야가기 나올 꺼여 그리고 팔월 열여섯 날 되면 여그 ‘독산’이라고 그 ‘독산’이 없어졌지마는 이 함열 전체가 그냥 남녀가 그로 다 모여 거기서 노래도 하고 연애하고 즐거움도 받고 그러지.

B1: 언제부터 그 모임이 없어졌나요?

A2: ‘독산’이 돌로 개발이 되면서 한 15년이나 되었겠구만 그것도 자세한 이야기를 하며는 아쉬운 풍습이 없어진 것이여 개발로 인해서 처녀 총각 볼려면 그때서 이 지역에 처녀 총각이 그리 다 오는 거여 여기서 한 10리 넘죠 그래도 갔어.

B3: 어르신 거기에서 ‘연애바위’라고 보셨나요?

A2: ‘연애바위’가 있는 가는 몰라도 거기서 연애가 이루어지고 그런 대화가 이루어지고 말하자면 건들고 이런 것들이 오고가면서 있고 그랬어.

B1: 횃불도 키고 가고 그랬습니까?

A2: 횃불은 하지 않고 좋은 옷 입고 낮에.

B1: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갔겠네요?

A2: 그렇치 처녀 총각.

B1: 어린이나 어르신들은 어디서 많이 놀았나요?

A2: 그런 장소는 없었어.

B1: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었나봐요.

A2: 예 옛날에는 많았죠 ‘독산’에 그 유래는 이 지역은 다 알거야 아마 ‘독산’에 모였다는 그 유래는 아마 내가 인자 80대인데 80대 전 후에서는 다 알아 너도 갔냐?‘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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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아-- 갔지 여그 ‘황등산’은 상당히 컸는디 다 파먹고서는

B1: ‘독산’을 ‘황등산’이라고 했나요?

A1: 아니 ‘황등산’은 여기 있어 ‘황등산’은 유명하자녀.

A2: 아니여, ‘독산’이 허물어지면서 그 놀이가 흩어진 것은 좀 아쉬운 이 지역에 말하자면 그런 느낌을 다 가지고 있었어.

B1: 일정시대 때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A2: 일정시대는 그런 것은..

A1: 일정시대는 모르고 공산당 되가지고는 회의 참석 안하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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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아 공산당.

A1: 맨-날 회의여 맨날 매일 회의여.

B1: 그럼 어디서 회의를 했나요?

A2: 과동교회요.

A1: 교회도 교회고 예전 같은 경우에는 모여서 인민군 노래 가르켜 내가 한 번 해볼까? “양 백전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그렇게..

A2: 하하 그 다음 혀봐.

A1: 그게 이북의 애국가여.

B1: 교회에서 인민재판도 하고 그랬나요?

A1: 인민재판까지는 모르겠는데 징치면 북치면 여자가 나오고 꾕가리 치면 같이 나오고 그런 걸로 암호를 했어요.

B1: 옛날에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지요?

A2: 그런 말은 못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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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렸을 때부터 고구마 밭이 많았나요?

A2: 많았죠.

B1: 고구마 순 김치 같은 것도 어려서 계속 해 드시고 그랬나요?

A2: 그래요.

B1: 또 고구마 가지고 어떤 것을 해 드셨나요?

A2: 그런 것을 모두 팔아먹었지 뭐 또 소주 만드는 데로 전부 넣었지 전분 만드는 데로 넣었지 그걸 2차사원으로 만드는 기술이 없었어.

B1: 그럼 일정시대 때부터 그 주조장으로 많이 보냈습니까?

A2: 네 많이 보냈죠.

B1: 그럼 그 용도로 고구마를 키웠네요.

A2: 네.

B1: 어르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비고

면담장소 : 다송초등학교 운동장 동문 모임 행사장
면담시간 : 2012년 8월 15일 10시 50분
내용 : 함열과 다송리의 주변 지명유래 및 전설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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