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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함열읍

와야마을

구술일: 2012년 8월 17일
구술자: 성명알수없음·남
면담자: 하정일,장윤준,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새로 채록된 내용
- 와야 : 기와를 굽는 곳이라 와야라는 말이 있고, 마을의 형상이 기와모양이여서 와야라고도 한다고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오미점 : 오미점이라는 곳에 주점이 있었는데, 다섯군대가 있어서 오미점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웅포나 강경같은 곳에서 통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했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 여우 전설 : 여우가 웅포 뒤로 가면 마을에 흉사가 생기고, 앞으로 가면 길사(吉事)가 생긴다.
- 정씨 효자문 : 정씨 할아버지께서 어머니의 3년상을 치하해 효자문을 세워줬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잘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 중 피를 돌아가실려고 하는 부모님께 먹여서 생명을 연장시켜 효자소리를 들은 것은 보았다고 한다.

문헌 내용

임진왜란 때 진주정씨(晋州鄭氏)가 피난와서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현재도 그 자손들의 집단이다. ‘와야’는 ‘외야’의 전음(轉音)이고 ‘외얏말’은 홀로 떨어진 외따른 마을이란 뜻이다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 할머니1 (성함은 적지 못함)
A2 : 할머니2
A3 : 할머니3
A4 : 할머니4
A5 : 할머니5
A6 : 할아버지1
A7 : 정진오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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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어째서 와야입니까?

A1 : 못들었지. 어째서 와야인가. 와얏동네로 시집만 왔지 어떻게 와야가 되었는지는.

A2 : 그게 외얏마을인디. 옛날 어른들은 아는가 왜 외얏말인가.

A1 : 돌아가신 어른들이나 알을랑가 우리는 뭐 아나.

A2 : 긍게 다송리가 여려 부랙이거든요. 와야마을 상마 소지 대지 그렇게 다송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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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미신이나 여우이야기, 전설 같은 것들이 있습니까?

A3 : 그 전에는 여수가 있기는 있었어. 거시기 울아버지 XX네 오라버지가 XX살잖여? 어디 어디 갔다 오다가 여수 내려가꼬 매봉산을 가는디 꺽구 다리다가 방죽이 있었어 방죽이. 거기다 갔다가 그이를 집어넣었어.

A2 : 그리고 술먹으면 길이 환항게 여우가 돌려가꼬 가는거여. 길이 환하게. 그러면 훤헌 데만 따라가잖여. 옛날 얘기. 그 전에 이야기가 여우가 웅포 뒤로 가면 사램이 죽고 뒤에서 앞으로 오면 이바지 떡 먹여준다고 그런 게 있어. 이바지가 그 전에는 장개가고 시집가믄 이바지가 있었잖여. 떡도 있고.

B3 : 이야기좀 자세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A2 : 여우가 앞으로 가면 이바지가 들어오고 뒤로 울고 들어가면 사램이 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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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엔 정씨 어른이 많습니다. 또 앞에 효자문 비석이 있는데 그게 사연 같은 게 있습니까?

A1 : 그 손을 째가지고 피를 떨어트리면 며칠을 더 살으신 양반들이 있다드만. 그런 양반들 효자문을 세워주더만. 그러게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랬다는디 효자문 세울라면은 큰시숙 어른이 다 없어가지고 못세우고 집안은 세웠잖아. 우리 집안은 시숙이 다 돈을 써버려서 못세우고, XX집안은 저기다 세웠잖아. 옛날에는 개인이 세웠는가베. 지금은 그런 일이 없잖아요. 부모님 돌아가셔도 그냥 뭐 피빼가꼬서나는 떨어트리고 그런 일은 없잖아요. 옛날에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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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도 집큼이 이야기가 있습니까?

A1 : 있었지. 옛날에나 있었나. 우리 어려서나 있었나 지금은 그런 얘기 없지.

A3 : 나 어려서 우리집이 이렇게 이렇게 커. 이렇게 큰디 부엌 뒤에가 장작문으로 있는디 장작을 누리고 소XX로 우를 덮어두거든. 근디 새까만게 옆에서 봉게 또아리를 치고 있대 구렁이가. 아 얼매나 당초 안가고 있어 어른들은 오월 단오날이라고 어디 가고 없는디 우리 언니하고 나하고 둘이 있는디. 그랬더니 저녁에는 처마 이리 들어갔어. 이리. 그렁게 동네 아줌마들이 흰죽을 그래서 그릇에 싸서 눠주라 그러대. 그래서 흰 죽을 끓여서난 우리 오빠가 술을 거나하게 먹었더니 그렁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눠줬어. 눠줬는디 저녁에 또 저뭉게 뭐했던 양반들이 와서 밥을 가질러 간다. 그 때는 부엌이 캄캄하잖여 불도 없고. 아 근데 막 XX나무 가서 굴뚝이 XX나무. 아 뻔덕뻔덕해서 거가 있네. 아 그래가꼬는 그냥 그때부터는 나도 크면서 거기만 들어가면 거기만 쳐다봤지. 그래서 너주라 해서 너줬어.

A2 : 그게 떨어지면 안좋다 그러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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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엔 또 다른 미신 같은 것이 있었습니까?

A3 : 거 애들도 아프면 점쟁이한테 가서 빗어. 빗으면 또 낫어 신기하게. 점쟁이가 저녁 와서 밥 위에서 나무새랑 해서 빌거든.

A5 : 아 난 그것도 그렇지만은 맨 아플 때 됫밥에다 쌀을 이렇게 해가꼬.

A3 :아 잔반도 많이 맥였어. 그러면 쌀이 찌렁찌렁혀. 쥐가 한쪽 파먹은 것 같이 이렇게 돼. 됫밥이. 됫밥을 해서 이렇게 싸가꼬 하거든. 찔렁찔렁해서 끌러보면은 쥐가 파먹은 것 처럼 이렇게 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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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이 왜 와야마을입니까?

A6 : 여기가 기와와자여 이렇게. 기와 와자여. 그 전에 기와를 구웠다 그려. 외얏은 와야를 외얏마을이라 그려. 긍게 나도 그 저 와야를 어떻게 그렇게 불렀겄었지. 내가 봉게는. 그 전에는 시대엔 하여튼 농사만 짓고 살았지 뭐 별 것 없었고. 긍게 말을 듣기로는 왜 기와를 그 전에 개와를 구워서 여기 제실이 있거든 여기 정씨들 제실이 있어. 여 도로 이쪽으로 들어오기 반대쪽으로. 거기가 제실이여. 거기 제실 개와를 올렸다 그러거든. 그런 얘기는 내가 들었어. 그런 얘기는 내가 들은 것 같어. 인자 우리 어려서는 뭐 그저 그냥 뭐 농사짓고 가마니 짜고 뭐 뭐 배 짜고 뭐 삼베 짜고 뭐 이런 것도 허고 모시 짜고 그런 것도 하고 그랬지 근데 그냥 우리 어려서 그 저 이게 지금 이게 미나리 깡이여. 미나리 깡. 먹는 미나리. 미나리를 메워서 그렇지 여그가 우물이거든 우물. 우물에서 내려오는 물. 물을 미나리를 가꾸고 돗자리 짜는 그걸 뭐라 하지 그거를. 그거를 인자 미나리 비고서 그거 깔거든. 심거든. 아이고 나이드니 그것도 잊어버렸네. 하여튼 그걸로 돗자리 짜. 말려서. 그런 일도 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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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물은 많이 있었습니까?

A6 : 이게가 우물인디 여그가. 동네 하나 있었어. 그 전에. 그랬다가 인제 저 아래도 하나 팠고 저 우 위쪽도 하나 팠고 저쪽에도 파고 그랬지. 그 전에는 여그 하나 까지곤 질어다 먹었지. 그렇게 생활을 했어. 그렇게 하고 인자 육이오 때 육이오 여기서 전쟁을 했거든. 그래서 인제 날짜는 모르지 내가. 날짜는 모르는디 그 때가 두벌 맬 때던가 그렇게 될 꺼야 그러니까 우리가 한 서른 명 그 뭐 해가지고 두벌 매 할 땐디. 막 저녁밥을 먹을라고 인제 먹을 사람도 있고 일찍헌 사람은 집에서 일 보고 씻고 인제 늦게 온 사람은 미처 못먹고 그런 사람도 있고. 근데 총소리가 나가꼬 저기 제실서. 도로서. 그래서 인제 총을 쏘고서 인제 아군들이여 그게. 왜 그랬는고니 요기 요 집인디 일꾼이 있었어 머심이. 근데 저 쪽에 농사 지었어. 근데 삽을 지고 으슥으로 옹게 삽을 들고서 인자 도망을 갔단 말여. 말하자믄 군인들이 그냥 내려옹게 무서웅게 부락으로 인자 저녁먹으로 올 판인디. 근데 이 삽을 총으로 알았등가봐. 그래가지고 막 그 사람 잡을라고 우리 막 총을 쏘가면서 들와가지고 굉장했지 그 때. 찾아내라고. 그래가지고 부락사람들 산에다 끌코 가가지고 찾아내라고. 총쏠라고 그런일도 있었고. 그래서 그 날 저녁이 인자 열 두시 되면은 총소리가 날 것이다 인제 해가지고 인자 다 난 우리 이제 뜨거우니까. 더우니까 온돌방인게 덥지 뜨겁지 인제 못자고 저쪽 우에 친척집에 가서 놀다 거기서 잤는데. 마당에서 놀다가 아 양 열두시가 되니까 총소리가 나네. 긍게 저-그 용왕이나 강경서 인제 총소리가 막 나는거여. 그래서 방으로 들어갔었지. 그래서 우리 동네가 이렇게 들어갔잖여. 그래서 포위해가꼬서는 여기서 전쟁했어. 긍게 그 때에 충남 숭녕하고 패전병이지 이제 우리 아군 패전병이지. 군인허고 합세가 됐었어. 그래서 저쪽 군산서부터 요롷게 해서 여그 여그다가 진을 친거야. 여그가 다송리라고 해서 솔이 많여. 지금 개간해서 그러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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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와야마을이 어떻게 처음에 생성이 되었습니까?

A7 : 여그담. 여그서 참 여쪽으로 가면 우리 다송산인데 우리 정씨네 땅인데 그 솔밭 속에서 지레라는 동네가 있었어. 지레가 있셨는디 거그가 먼저 생겼어요. 거그가 인가는 여그서 한방XX단지가 들어와가지고 거기가 동네가 없어져버리고 여그 여 한 부락인데 거그가 한 한 두 세 한 네 가구 됐다 세 가구 됐다 들어설 때. 그러고서 우리 정씨네가 거기서 농사를 지었더래요. 그래가지고서는 여기 와야라는 동네가 와야라는 이름이 뭐냐면은 우리 와야가 기와처럼 이렇게 생겼다고 해서 기와 와자를 붙여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때부터 와야 부락이라는 것이 형성이 됐는디 그 때만 해더라도 우리네 정씨네 씨족 관련된 것만 살았지 그리고 딴 분이라면 첩분관계로 정씨네 외손이나 되는 분들이나 여가 살아 계시고 그래 놔서. 저그 저 오미점이라는 데 같으면 전설이 뭐가 있었을텐데. 그리고 또 여짝 와서는 그릇도 옹기그릇도 구워서 이렇게 해가지고. 그 우리 예전에 정씨들이 아니고 딴 사람들이 와서 도기같은거 굽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반민에 해당하는 그런거였잖여. 그 사람을이 해놨고. 그래가꼬는 그때부터 여그가 솔찬히 컸어요. 지금도 크지만. 함열 남부에서는 와야부락이라고 하면 상당히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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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저쪽에 효자문은 어떤 사연이 있는 것입니까?

A7 : 그 할아버지가 효자에요. 국가에서 내린 거요. 그 삼년이라는 것을 그 자기 어머니 돌아가신 디 거기서 채비를 하고서난 거기서 같이 보냈어요. 그래서 국가에서 알아가지고 이분은 효자라고 칭호를 내려가지고 효자문을 세웠대요 석판을. 그렁게 그렇죠. 이조시대. 우리가 소와 팔년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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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오미점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A7 : 그건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요. 오미점이라는 것만 알지. 그 사방 울타리에 열십자로 되어 있는디 옛날에 거기 가서 주점이 있었어요. 주점이 다섯 군데가 있시가꼬 그래가지고 오미점이라고 해서. 저저저 거기서 팔봉이랄지 거기 분들이 여기 이 웅포라면은 항구가 있잖여. 쪼그마한. 거기에 거기에 통래허고 이 익산에서 강경이랄지 댕기는 이 길이 거가 돼있고. 긍게 거서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았어. 그리고 큰 전설이 여가 없어요. 여 옛날. 정씨네 양반이라고 해서. 옛날에 일허로 갈라면 저기 산꼴자기 진데서 농사 지으러 가는디 옛날에 상투 꽂고 갓 쓰고 도포 입고서나 가서는 소나무에서나 걸어 놓고 일허고 그걸 입고 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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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또 재미난 이야기 뭐 없겠습니까?

A7 : 우리 XX이 옛날에 나보다 여덟살 우에인데. 기차. 철도 운전하는 데가 기양골이라는 데 있어. 거기 다는데 여기 나왔는디 뭔 희미꾸러한 사람인 거 같으고 아닌 것도 같으고. 우리 형님 굉장히 대담한 양반이었으. 뭐 약간 무서운 건 있었다곤 하는데. 돌팍으로 막 거시기 해가지고 재겨버린게 돌팍이 돌팍이 맞아버링게 불빛이 나오고 아 그래가꼬 또 한참가면 나오고 나오고 했다 그러데. 나 그런 얘긴 한 번 들어봤네. 그리고 여기서 저 한번 가자면 큰 솔밭 있어. XX네 산이라는. 그때서 요새처럼 막 비가 쏟아지고 그 땐디 거기 솔밭 가운데서 누가 하하하 하고 손빰치고 손빰 치고 긍게 이 양반이 그냥그냥 자기 XX하러나 가시지 아무래도 이상하지 쫒아가 보니 번개치는 대로 이렇게 해서 가보니 그 정신병자 여자가 거기서 혼자 이렇게 벼락치면 손빠닥 치고 웃어샀고 그러드라고. 그래서 행길다 끄셔다 놓고 막 집에다 찾아가라고 그러고. 그런거 자세힌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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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외얏말이 이해가 안가는데 외얏말이 무슨 뜻입니까?

A7 : 와야를 외얏말 외얏말이라고도 허고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기본 언어가 없응게 외얏말이라등가 허기도 허고 와얏말이라고도 허고 그러지 외얏말이라고 허는 사람이 있싱게 외얏말이라고 알지. 거시기 그래가지고서는 딴이름 있어가지고 그런건 아니여.

비고

면담장소 : 와야마을 경로당
면담시간 : 오후 2시
내용 : 지명 유래 및 민담과 전설에 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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