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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성당면

내난마을

구술일: 2013년 2월 28일
구술자: 김동열(1942년생)·남, 강현상(1930년생)·남, 정병수(1951년생)·남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마을유래담 :
- 내난마을 : 난초 난(蘭)와 안 내(內)를 쓰나, 과거에는 안다래 밭다래라 불렀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말의 형상 : 마을의 모습이 말의 안장, 말 엉덩이를 닮았다고 함.
- 어르매 : 지금의 오두마을로 얼현이라고도 함. 호로개는 지금의 매로 매가 물고기를 잡아 먹는 혈자리.
- 구엉마을 : 구석마을이라는 뜻이 와전되어 구엉마을이라고도 함.
- 해방과 이무기 : 해방 이전에 큰 비가 내렸을 적에 이무기가 각개로 가는 길목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물이 넘쳐서 마을 밑까지 차 올랐다고 함.
- 김씨 명당 : 마을에 사는 김씨의 어머니를 모신 명당이 있었는데 묘자리가 워낙 좋아 이장 시에 수월하였다고 함.


3) 민속 :
- 샘 : 샘이 여러 개가 있었으나 물이 좋은 것은 아니었음.
- 시장 : 함열장이 주 시장이나 각개장을 다녔음.

문헌 내용

내란(內蘭)․구억말․새터뜸․아랫말․재너머․해동메․서아시 : ‘내란’은 ‘난포’를 구분한 명칭인데 전에는 난포를 ‘薍浦’로 썼고, 또 본시 난포에 갈대가 무성했다 하니 그로써 유래된 명칭이다.‘서아시’의 ‘아시’는 ‘방향, 머리, 가(邊)’의 뜻.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 김동열 (72)-1942년
A2 : 강현상 (84)-1930년
A3 : 정병수 (61)-1951년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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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내난마을의 뜻이 무엇입니까?

A2 : 난초 난자 안 내 잔디 그 전 어른들 말 들어 보면은 유식헌 사람 말 들어보면은 안다래 밭다래 그런 유래가. 그 다래 다래가 난자가 있나.

A1 : 그것 보다도 다래 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문을 깊이 몰르니까. 무슨 말 안장. 어?

B2 : 혈이 말의 안장이라는 것입니까?

A1 : 어 그래가지고 여그 산에 가믄 일케 바웃독 일케 잘 쑤억 헌 디가 있어. 그래서 이 쪽에 집 터 있는 디 뭐 정중이네 집 터하고 뭐 저 뒷집 영도네 집터 그게 안쪽 말 디디는 디 밖에는 박씨들 묘 있는디 거가 밖에 안장 디디는 디 그래가꼬 그런 무슨 난자가 지금은 난초 난자를 써. 근디 내자가 그런 뭔 내자가 있는 게비여. 그런 건 우리가 깊이 몰르것어. 그런 것이 인자 옛날 어른들이 있이야 하는데 어렴풋이 그런 얘기를 들었었어.

B3 : 그러니까 우리 마을이 말 안장이었다는 것이겠습니다.

A1 : 응 말 안장. 말 안장 이렇게 디디는 데 있잖여? 그럼 저 쪽에 가면 도로가에 묘가 하나 있어. 그게 용살리 박씨들 묘고 이 쪽은 여기 그 전에 부자로 살던 집이 있었어. 뭐 참봉도 허고. 그 쪽이가 인자 안에 디디는 자리라고 그런 얘기를 내가 들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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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근처에 절 같은 건 있었습니까?

A1 : 이 앞이 이 저 대성사라고 옛날 절이 있었거든? 그 저 지도에도 나올 거여. 이 바로 이 저기. 그려. 화목산이라고 거기에 대성사라는 절이 있어. 그 얼마 전 우리 저 어려서 그 중이 와 있었고 그랬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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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럼 말 머리나 말 꼬리도 있습니까?

A1 : 그럼 내가 밖에 나가서 잠깐 설명을 해줄까? 나가면 잠깐 보여. (야외로 나가는 중) 여그로 올라가믄 저 바우가 있고 잘쏙 허니 이렇게 생겼었거든? 근디 이게 시방 말궁뎅이라는데고. 그리고 저 가면 높은 판이 있어. 그런 얘기가 있고. 근데 지금 여기서는 보이들 않어.

B3 : 말 머리도 있습니까?

A1 : 그건 저 안에가 있을 테지. 저 안에 폭 올라온 산이 있으니까.

B3 : 그럼 말과 관련된 전설은 있습니까?

A1 : 그런 건 모르겠어. 그런 건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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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마을 주변엔 어떤 마을들이 있습니까?

A1 : 이쪽 돌아가면 댓촌이라는 데가 있고. 그리고 이 앞에 동네가 외두라고 어르메라고. 어르메가 얼연이라고 했디야 옛날 말로 얼연. 거그 가면 뭐 풍수지리학으로 이 호로개가 물고기를 찍는 혈이 있다고 그려.

B3 : 호로개가 무엇입니까?

A1 : 호로개는 쉽게 얘기허믄 병아리 같은 것도 잡아 먹고 하는. 날 짐승. 매라고 해야지. 매를 호로개라고 그래. 매가 물고기를 먹는 혈이라고 혀가지고 얼연이라고. 그래서 가면은 도롯가에 말을 표시가 붙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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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기우제는 지냈습니까?

A1 : 기우제도 옛날에 가물었을 때 그 말랭이가 지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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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또 우리 마을의 지명은 무엇이 있습니까?

A1 : 이 동네는 쪼그만해도 우리도 잘 몰르는디 나도 인자 그 전에 다닐 때 원광대학교 교수가 이 지명에 대해서 이 좀 몇 장 쓴 것을 봤어. 이 여그서 저기를 서아시라고 그려. 그리고 여기를 아랫마을. 뭐 재너머. 또 저기 뭐 구엉마을 구석마을이라고 구엉마을이라고 하는 것 같어. 그리고 뭐 조그만해도 이거이것이 있어. 저기 저 앞에는 건넛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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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샘은 몇 개 정도 있었습니까?

A1 : 우물? 큰 우물이 에 여그가 하나 큰 놈이 있었고 저그 있었고 둘. 이 상수도가 들우기 전에 둘. 그리고 저기 밑에도 대웃샴이라고 있었고. 이 넘어도 샴이 있었고.

B2 : 샘이 많았나봅니다. 물이 짜거나 하진 않았습니까?

A1 : 그렁게 여기도 물이 글케 좋은 편은 아니였는개벼. 그리고 지리적으로 저기 저 면사무소글케 넘어가는 산이 있잖여? 군산가는 도로. 그 이쪽으로는 암반이 맥혀가꼬 지하수를 못 파.

A2 : 우리 어려서 그런 소리도 했었어. 그 전에 함열골 함열골이라고 함열군이거든. 함열골을 여그서 맹안에서 잡을라고 왔는데 산세가 좋아서. 물이 없어서. 물이 없어서 함라로 갔다는거여. 그래서 함라가 함열 읍내여. 산이 야산잉게 물이 없어가지고서 함라로 갔다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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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럼 시장은 어디로 다니셨습니까?

A1 : 그렇지 함열 시장 다녔지. 근데 각개는 다니기도 했어. 근데 강가에가 아니라 많이 다니들 안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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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용과 관련된 전설은 있습니까?

A2 : 그 전에 해방 이전에 해방 전에 비가 많이 와가지고 이 물이 들판까지 우리 논까지 찼응게 (다른 할아버지가 다시 들어가시는 중이라 잠시 중단)

B3 : 네 얘기해주십시오.

A2 : 그 때 해방 전에 물이 여까지 금강 물 각개 있는디 거기 이무기가 막어가지고서 비 많이 와가지고서 여그까지 물이 차가지고서 양 물바다가 되 버렸어.

B2 : 이무기가 막았다고 하셨습니까?

A2 : 이무기라고 그 놈이 강을 가로막았다고 그러드라구. 딱 가로막아서 비는 많이 옹게 맥혀가지고 여기까지. 강을 가로막았다고. 물이 안빠져나강게 이 논까지 싹 다 묻혔어. 저기 저 있지. 거그까지 물이 한 바다 돼 버렸어. 그게 우리 어려서 어려서 여덟살 먹어서 해방 됐거든? 815 해방? 우리 시방 여든 네 살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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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오래된 나무나 바위는 뭐가 있습니까?

A2 : 여기 이 여기 이 송정이 그 전에는 소나무나 큰 고목이 있었어. 근데 그 전에는 오래됭게 고목있었는디 그래서 이게 송정리여 송정리. 수백년 한 2백년 됐을 거여. 근디 썩어가지고 태풍에 쓰러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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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옛날에 우리 마을은 어땠습니까?

A3 : 옛날에 이 동네가 이 지역에서 이 주변에서 컸었는지는 몰라도 회관이라고 있었잖아 회관. 유독 우리 부락만. 그래서 우리 어려서 주변 사람들이 투표허로 오고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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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혹시 명당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여쭈어도 될까요.

A3 : 명당은 왜 김명수씬가.

A1 : 김명수씨네 묘가 있었어. 함라 김명수씨 부자라고 저 뒤에 소아시라고 저 대밭 뒤에 가서 김명수씨네 우리 일곱 살 먹어서 김병수씨 어머니 묘를 썼는디 해방 되고서 파갔어. 파 갔는디 근데 그걸 봉게 시체가 관까지 썩지않고. 아주 간단하게 사람이 너덧이 유골만 가지로 나가서 사람 두어데리고 나와서. 저기 XX로 갔어.

비고

면담장소 : 성당면 내난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8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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