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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성당면

성당마을

구술일: 2013년 2월 27일
구술자: 안상일(1953년생)·남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마을유래담 :
- 성당마을 : 별신제를 비롯하여 모시는 당이 있어서 성당.

2) 전설 및 민담 :
- 별신제 : 풍어와 안전, 순항을 기원하는 행사.
- 황룡산 : 바로 뒷산이며, 당집산으로 부르기도 함.
- 당산나무 : 백제 시대 말기 도승이 와서 쉬는 도중 심었다고 함.
- 용의 혈 : 마을의 주산. 용머리처럼 생겼으며, 황룡산과 청룡산이 있음.
- 나당연합군의 전투지 : 나당연합군을 막은 곳이 성당이라고 함.
- 당산제 : 아들이 없던 주민이 당산제를 지낸 뒤 아들을 얻었다고 함. 그 이후 당산제를 지냄.
- 이완용의 친척과 윤증 선생 : 마을에 명당이 있는데, 윤증 선생이 와도 주지 않았던 묫자리를 이완용의 친척이 와 제발 묫자리를 달라고 빌기에 주었다고 함.
- 동학 : 동학도들은 가장 먼저 성당의 창고를 풀어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고 함.
- 남궁찬 묘 : 성당의 명당 중 하나.
- 비석거리 : 비석거리가 있었으나, 동학군이 파괴함.


3) 민속 :
- 시장 : 성당이 시장이 있었을 적엔 그 시장을 이용했지만 다른 것을 사기 위해서는 다른 장을 이용했다고 함.

문헌 내용

성당(聖堂․聖浦․승댕이) : ‘성당, 성포’는 조선 고종 때까지 10개 군현의 세곡(稅穀)을 조운(漕運)하던 포구로 일찍부터 이루어진 한자명.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 안상일 (61)-1953년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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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성당 마을에 대해서 소개 좀 해주십시오.

A1 : 지금 그 여기 성당창이 있었다는 거 알죠? 우리 나라 아홉 개 창지 중에 가장 큰 창지가 여기 성당창이에요. 에 저 이게 조곡. 조곡을 여기서 금산 진산 고산 남원 운봉 또 저 용담. 진안 용담. 익산. 말하자면 이게 그 함열 창지여. 여기 보면은 자세한 것이 나와 있어. 여그 이 마을 때문에 이 문화 책을 낸 거여. 저 1875년도에 조곡에 갈 때 여기에 대한 역사가 이 여하튼 다 나와 있어요. 여기가 중종 때 지금 여기가 효종 때라 하는데 원 것이 중종 7년으로 말하자믄 그 창이 저 웅포 고창에서 일로 옮겨 왔단 말이에요. 성당 포구로 와가지고 (잠시 전화 받음) 예 그렇게 역사상 되어 있고. 그래서 1895년도에 폐창 되었어요 여기가. 폐창되고 그 저 창을 하다 보니까 조운선이 1000석을 싣는 배가 12척을 운행했단 말이에요. 여그서 말하자믄 관흥창. 서울. 한양 관흥창까지 간거야. 긍게 중앙 집산지 창이여. 옛날에는 공무원 월급을 거기에서 준거여. 관흥창에서. 한양 관흥창. 그러다보니까 배가 조운을 허는 데에 좋은 바람이 불어서 옛날에는 기곗배가 아니고 돛단배이기 때문에. 그래서 상당 포구 당산 별신제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수 백년간 모셔 오고 한 20년 맥이 끊긴 것을 우리가 재현 해서 작년이 저 14일 당산 별신제를 또 우리가 제현을 했어요. 11월 21일 날. 그런데 우리가 정월 옛날에는 음력 정월 보름날 모셨어. 그런데 요즘엔 사람도 읎고 그 추울 때잖아. 저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정월 보름 날 모셨다고. 모셔오던 것이 어촌 그 창이랑 폐창되고 배가 많이 들왔던 마을이에요 우리 마을이. 군산 강경 못지 않게 배가 들와서 저 상권이 여기서 많이 이뤄진 데여.

B3 : 그럼 옛날에는 시장을 어르신들이 우리 마을 장터만 이용하셨습니까?

A1 : 아니 외지 사람들이 많이 오고. 지금 여기 1960년 대만 해도 논산 훈련도 뭐 소금이고 무수말랭이고 저 배가 여그 와서 군대 트럭이 여그서 실어 갔다고. 그 뒤로는 각개장 강경장 함열장 장보러들 다녔지. 그래도 다른 장을 가긴 갔지. 왜 갔는고니 여기서는 주로 생선을 많이 싣고 가고 젓갈. 그렇게 하고 요 근래 와서 지금 우리 마을은 저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는 유일한 곳이고 익산제가. 문화원하고 합니다. 주관은 문화원서 하고 주최는 우리 저 성당포구 별신제 보존위서 주최를 하고 주관은 문화원서 해서 같이 해요. 문화원장이 직접 와서 같이 직접 허고 한다고.

B3 : 당산제는 어떤 제사입니까?

A1 : 우리 마을 번영도 허고 말하자믄 배가 여그서 출발해서 한양까지 가는데 25일 26일 걸렸다고. 그러면은 여그 보믄 알지만 순풍당이라는 디가 있었고. 에 산꼭대기에. 저그 황룡산에 순풍당이 있어서 순풍당에서 말하자믄 당제를 거기서도 모시고. 말 그대로 순할 순자 바람 풍자. 순헌 바람이 불어야 배가 잘 갈거 아녀. 그래서 당산제를 그 좋은 운반과 마을 풍년과 풍어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당산제를 모셨다 그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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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황룡산은 어디에 있는 산입니까?

A1 : 여기 여기 이 앞에. 황룡산이라고도 하고 또 우리가 거시기 쉽게 당집산이라 그래. 순풍산이 있어서 당집산.

B3 : 용에 관한 얘기가 있어서 황룡산입니까?

A1 : 여하튼 산 이름이 황룡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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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성당은 무슨 의미입니까?

A1 : 여기는 성스러울 성에 집 단자야. 여기 오신 우리 할아버님이 저 은성당이여. 숨을 은에 성스러울 성자 해서 성당으로 마을 이름이 그렇게 된 걸로 보고 있고. 그리고 이제 현이 깨지고 저 일제 시대 때는 면사무소가 있던 마을이에요 여기가. 옛날에는 함열면 여기가 북이리. 성당 이쪽이 북이리. 함열현 북이리였어. 북이리. 저쪽은 원광대학교 있는 디가 북일. 거기가 함열현 북일리여. 그래서 북일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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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굉장히 크고 좋은 나무가 있다 들었습니다.

A1 : 여기 천년 당산나무가 있어. 그 유래는 전설적인 얘기지만 백제 시대 때 도승 한분이 백제가 멸망 해서 여기 와서 그 기거헐 때 신은 나무다 인제 천년 느티나무. 천년 은행나무니까. 고사에 의하면은 그렇게 전해져 내려오는 거여. 지금은 천연기념무로 지정하자는 것을 않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허면은 500미터 이내는 개발하게 못허게 돼 있잖여. 그래서 은행나무만 저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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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성당면이 어떤 동물의 혈을 닮았다는 말은 들어보셨습니까?

A1 : 저 강에서 보면은 강가의 절벽 있는 산이 용 머리같이 생겼어. 강에서 보면 용 날개만첨 생겨가지고 한쪽 이 쪽에서는 청룡산. 한쪽은 황룡산 그렇단 말야. 용을 닮고 지금 용 꼬리에 해당되는 데가 여기 당산나무가 서 있는 디가 당산나무라 이 말이여. 그러니까 용은 꼬리가 힘을 쓴 대. 그래서 저 멀리서 저 건너가서 보면은 여그 강에서 딱 보면은 용 머리허고 용 뿔허고 이렇게 용 몸뚱이만첨 돼 있어. 그래서 한 쪽은 청룡산. 한 쪽은 황룡산 그려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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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전설같은 건 있습니까?

A1 : 옛날에는 저 나당 연합군이 갈 때 활을 쌌다는거여. 청룡산에서. 활을 쐈던디가 여기다. 이게 보면은 성천옹수(?)가 수군은 나당연합군은 막으러 하는디가 여기여. 여기서 저지를 해라. 그런디 이미 김유신이 계백장군이 죽고 황산벌로 해서 먼저 함락시켰잖여 사비성을. 그래서 저기 가면은 인제 그 저 유장군 충청도 임천 그 저 성운상선에 사당이 있고 하잖아. 그 저 우리 사적 제 5혼가 될꺼여 성운산성. 성이 여기서 보면. 여기서 보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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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당산제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는 뭐가 있습니까?

A1 : 이게 제일 먼저 당산제를 모신 것은 우리 안씨들이 모셨다는 거여 기록상. 왜 그런고니 그 때 인제 순흥 안씨가 연산군 때 사초 사건에 의해서 우리가 여그로 온 데여 후손이. 그래서 이 그 후손이 없어서 당산제를 모시고서는 후손을 봤다. 그래서 당산제를 모셔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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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또 무엇이 있습니까?

A1 : 그러니까 말하자믄 이 나무는 백제 말기에 그 뭐 도승 한 분이 이렇게 심었다. 나무를. 여기 요양 말하자믄 부상을 입어가지고 여그 와서 요양을 허다가 심은 나무다. 인제 그렇게 전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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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명당은 있습니까?

A1 : 아 여기 저 또 이완용 이완용이 작은 아버지 산소가 여가 있잖여. 우리나라 최대 명당이라 혀서. 아 명당이니까 그 때 동네 사람들한테 그 조선 말기 이완용이네 식구면 최곤대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동네 주민들한테 무릎꿇고 묫자리 돌라고 빌었다 그 말이여. 옛날에 거기가 말하자믄 우리가 사백년 동안 조곡을 받을 적에 창고 자리여. 쌀을 쌓아 놨던 창고. 그 후손들은 요 근래는 안오는데 여기에는 살다시피 했어. 한 분이. 그럼 마을에 행사 있으면 술도 내고 시계도 갖다 걸어주고.

B3 : 그런데 이완용은 좋지 않은 인물이 아닙니까.

A1 : 그런데 그 집 식구들은 그 매국 거시기 명단에 빠졌드라고. 그래서 마을 뒷산이 그 사람들 땅이야 등기상. 바로 여기 대나무 밭 있고 한디. 2400평이 그 사람들 땅으로 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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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금강이 가까우면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 같습니다.

A1 : 우리 앞이 강으로 말하자믄 의자왕도 저 당나라로 끌려 갈 때 열로 간 것이고. 동학난이 1894년도에 났잖아. 여 동학난 일으켜서 동학이 젤 먼저 어디로 왔겄어. 여기로 왔잖아. 창고를 허물었어. 창고에서 곡식 다 내서 말하자믄 서울로 싣고 갈 조곡. 쌀 내서 없는 사람들 나눠주고 그리고 옛날 비석거리라고 옛날에 비석이 많이 쭉 인제. 높은 사람들이 왔다 가잖아. 지금 비석 하나 남은 것은 민경호라고 민비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민경호지. 지금으로는 국세청장을 한거야. 민경호가 여기 왔다 간 마을이여. 높은 사람이 왔다 가면 비석 세워 줬잖아. 민경호 비석이 여기 있다니까. 그렇게 혀고 동학도들이 비석들을 어떻게 했겄어. 파기했겠지. 파기한 걸 어떻게 했냐 이말여. 그걸 논에 물코 옛날. 물코같은 데다 몇 개 나왔어. 몇 개. 땅속에서 비석이. 한 40개가 저 해방 전에 2,30년 전만 해도 말하자믄 조선 말기 때는 동학난이 나기 전까지는 비석길 잎구에다가 한 40개가 서 있었단 말야. 그 비석이 다 없어졌잖아. 없어지고 땅 속에서 도로 나와. 그럼 용안 현감이 언제 왔다 하면 비석을 세워줬잖여. 불망비. 선정비. 무슨 비. 그런 비가 나온다고 지금도. 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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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런데 이완용 작은 아버지면 기세가 엄청났었을 텐데 마을 주민들한테 묘를 달라고 부탁한 것이 재밌습니다.

A1 : 그러지. 그런데 왜 줬냐 하면은 이것은 확실한 얘기여. 저 윤증선생 노생병가면 노암사원이 있잖여. 윤증선생 고택이 유명하지 선교장 다음으로 유명혀. 그 윤증선생 거시기 산소를 여가 명당이라고 여기로 모시고 오다가 주민들이 배가 여기 닿는 데에. 우리 주민들이 다 고조할아버지 때의 얘기여. 여자들은 막 돌을 갖고 산탱이로 가서 배에 닿는 데를 집어 던징게 배가 침몰허게 생깅게 도망간거야. 가가지고 저 남포 똘이 남포 있을 때 거기 가서 말하자믄 유골을 양반묘라고 한거야. 그 앞 동네 있는디 파묘해서. 그래서 글로 모시고 가고. 이 사람들은 이리오너라 양반들이라고 행세하고 늬들이 뭐냐 행세한게 우리 주민들이 반대해서 못허고. 그 세도가. 조선 말에 이완용이 후손들 무릎 꿇고 와서 빌응게 아 저놈들 양반놈들 하는 윤가보담 이 놈들이 낫다. 그래서 묘를 쓰게 됐다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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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중국 사람들이 시기한 명당도 성당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A1 : 그게 남궁찬. 여기서 4키로 가면은 길 가에 서 있어. 저 남궁찬 묘 석상. 그 말하자면 대사헌을 했는데 남궁찬이 대사헌을 했어. 조선 때. 그 유명한 사람이야. 그 석상을 중국서 만들어 온 석상이야. 그래서 지방 기념물로 되어 있어. 그리고 두동. 기역자 교회 알지. 거기도 있고.

비고

면담장소 : 성당 성당마을 성당포구 금강체험장
면담시간 : 2013년 2월 27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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