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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용동면

화실마을

구술일: 2013년 2월 20일
구술자: 김복수(1942년생)·남, 이종문(1942년생)·남, 이영수(1948년생)·남, 이장재(1933년생)·남, 김옥희(1924년생)·남, 김동복(1938년생)·남, 이종복(1942년생)·남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1) 마을유래담 :
- 화실마을 : 광두원, 광덕원. 고을 원님이 지나가다 쉬었단 마을.
- 봉화산 : 봉화는 함열에서 강경으로 이어진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매화 혈 : 마을의 전체적 모습이 매화 모양이었기에 붙여진 이름.
- 공좌상과 좌상 : 칠석날 공좌상과 좌상이라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행실이 바르지 못한 젊은이들을 꾸짖었다고 함.
- 공동묘지와 상여 : 화실리 공동묘지에 상여집이 있는데 귀신 소리가 들렸다고 함.
- 집큼이 이야기 1 : 집큼이를 먹고 흉사가 생겼다는 민담.
- 집큼이 이야기 2: 농사를 짓다가 구렁이가 나와 죽였는데 흉사가 생겼다는 민담.


3) 민속 :
- 샘과 술멕이 : 마을 샘은 5개였으며, 술멕이는 칠월칠석날 하였음.


4) 철도 :
- 철도 : 철도 개설 당시 용안 주민들의 반대를 했다고 함.

문헌 내용

화실(花實․원화실)․광돈(光敦)․밀머리․질마금제․구석뜸․밭가운데 : ‘광돈’은 광두원(廣頭院)이 있던 곳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광두원산의 봉수(烽燧)는 서편으로는 함열현 소방산(所防山) 봉화와 통하고, 북편으로는 은진현 강경산 봉화로 연결된다 하였는데 광돈은 바로 그 밑의 마을이다. 그러므로 ‘광두원→광둔→광돈’이다.‘밀머리’는 우측으로 산이 길게 뻗었는데 그 산의 형상이 벌과 같으며 마을이 그 머리 부분에 위치하여 ‘밀벌머리’라고 하던 것이 ‘밀머리’가 되었다고 한다.‘질마금재’는 그 지형이 질마(길마)와 같아서 ‘질마재’라고도 하고 또 길이 등성이가져 막힌 듯 보임으로 ‘질막음재’라고도 하였다.‘밭가운데’는 처음 여러 밭 가운데에 4가호가 살고 있어 생긴 이름.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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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김복수 (72세) - 1942년
A2 : 이종문 (72세) - 1942년
A3 : 이영수 (66세) - 1948년
A4 : 이장재 (81세) - 1933년
A5 : 김옥희 (90세) - 1924년
A6 : 김동복 (76세) - 1938년
A7 : 이종복 (72세) - 1942년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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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화실이라는 뜻이 무슨 뜻입니까?

A7 : 화실이기 이전에 광두원이지요 여게. 광돈이 여가 그렇게 광두원이 줄인 말이 광돈이에요. 여기가 왜 광두원이라는 말이 생겼냐면 옛날에 원님이 그걸 내 자세히를 모르것어요. 여러서도 내가 여기서 났는데. 인제 지나가다가 쉬어 가시는 그런 길목이었다 여가. 지금 여 우리 밭 있는데가 내가 옛날에. 내가 어려서부터 밭을 짓고 있습니다만 기왓장이 나왔어요. 긍게 건물이 있었다 이 말입니다. 긍게 원님이 지나가다가 쉬어 가시는 길이다. 근데 그 때 무슨 정사를 살피시다가 지나가다가 인자 쉬어가기도 허고 무슨 일을 허셨는가는 내가 자세히 모르것어요. 자세히 몰르것는데 인자 지나가다가 쉬어가시는 길이라고 해가지고 인자 내가 여기 집을 짓다 보니까 옛날에 돌도 나왔었고. 무덤처럼 그런 것도 나왔었고. 지금도 얼매 전까지만 해도 기왓장이 나왔어요.

A6 : 말을 여기다가 매놨디야.

A7 : 아 긍게 말 타고 다녔으니까 말 식사도 해놓고. 말 밥도 주고 말을 타고 다녔으니까. 그래서 여가 창고가 있었던 자리 같아요. 말 밥도 주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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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화실이란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A6 : 여기 냇가시 이게 거시기리야. 매화 혈이리야. 매화 혈. 매화 꽃 피잖여. 긍게 여기가 매화고. 글고 길마금재가 아니라 질마재. 그 저 어른들이 우리 사랑방에서 시아버지랑 놀을 적에 나도 들은 풍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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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 : 그리고 여 앞에 뾰쪽한 산이 봉화산이에요. 왜 봉화산이라고 했느냐면은 옛날에 봉화불을 올렸었어요. 옛날에 에? 불을? 나라에 뭔 일 있으면 올렸잖아요. 그래서 이름이 봉화산이에요 지금도.

B3 : 그럼 여기 봉화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A7 : 그러면 그 다음 받은디가 강경 동우재인가? 거기 식당 있는 데. 거기 가면 광두원이라는 비슷한 이름이 거기 있어요. 광두원에서 불을 올려서 저기서 받았다. 저기 있어요.

A1 : 여기에 보면은 지금 저쪽에 가면은 XX 23년에 그 광교 증수비가 있어. 학생들 아마 탁본뜨러 와봤을 거여. 이 강가에. 근디 영조때라고 그러드라구? 근디 이 지명이 유래가 우리 족보에 보면은 우리 10대조가 여 동네 가운데 계신데 바로 이 산에. 여기는 용안 광덕원으로 돼 있어. 넓을 광자 큰 덕자.

B3 : 그 유래가 있습니까?

A1 : 그러니까 그 문헌에서 찾아봐야지. 우리는 몰르지. 그리고 따른 내력은 옛날에 익산시가 통합되기 전에 익산군. 그리고 군에 가면 군지라 해서 이 우리 동네 지금 내력이. 우리는 지금 젊은 세대라 잘 몰라 내력을. 거기 보면은 자세하게 나와 있어. 지금 시에 가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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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혹시 우리 마을에 좋은 자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A1 : 그런건 지금까지 우리가 못 들었고. 여기에 바로 이 경로당 밑에가 옛날 그 파말마가 말을 교체해서 그 통신원들이 말을 교체해서 타고 가고 그랬데. 그래서 여기가 관행로의 수경지였던 것 같애. 에 이쪽 뒤로 조선 뭐여 일제 시대 그 측량 당시에 길이 있었어. 저쪽에 함열에서 오는 길이. 그래서 그 길을 그 길이 인자 강을 건너야 되는데 거기에 다리를 놓으면은 떠내려가고 그러니까 다리를 자주 고친 모양이여. 그래서 돈을 내고 헌 사람들 명단을 해가지고 광교 증수비라고 해가지고 세워 놓은 것이 있어. 그 저 도청에서 와가지고 엊그제도 다 청소하고 사진 찍고 그러고 있는데 그 비 주변을. 그 여기가 어떤 사람 말 들으면 과거에 큰 의료기관이 있었다는 그런 얘기도 있고 그려. 그래서 내가 이 족보를 우리 족보를 가져옹게 우리 10대조가 계신데 우리 10대조보다 더 전에 묻힌 분들은 그런 내용이 없어. 그래서 내가 이것만 가지고 왔는데 여기가 용안현 광덕원을 되어 있어. 여가 용안현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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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은 집성촌입니까? 혹시 아니라면 무슨 성이 제일 많습니까?

A1 : 아니 집성촌은 없어. 전주이씨 전주이씨가 저쪽 이웃 마을에 저기서 집성촌이 있는디 거기서 이거를 허는 분들이고. 우리는 10대조가 여기에 와 계신대 우리 자손들은 논산 양촌에 살다가 여산으로 5대조가 내려와가지고 거기서 우리만 한 집만 모여 살고 있어 10대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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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 근처에 오래된 나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A1 : 나무. 그 연화동에 느티나무. 500년 넘게.

B3 : 혹시 그런 나무에 대한 이야기나 사연도 있습니까?

A2 : 거 가면 기록이 있어. 정자나무.

A1 : 그게 보호수여. 그러니까 가면 알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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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아까 우리 마을이 매화혈이라 그랬습니다. 더 자세히 좀 들려주십시오.

A1 : 이 산이 이 혈이 매리야. 매 형상을 닮았다 그래서. 그리고 저 앞에 쪼그만 산이 있어. 거기는 콩이래. 아아. 벌머리여 벌머리 밀두봉. 이 산 형상 자체가 이 쪽으로 나가서 보면은 벌 형태여. 벌. 그래서 벌 밀자 밀두봉이라 그려.

A2 : 밀봉산이라 그려 밀봉산.

A1 : 거기서 밀머리. 벌 밀자. 인자 벌 밀자여. 밀 머리여. 머리는 우리말이고. 밀머리라고 했는데 거기서 돌을 수로공사한다고 돌을 채취를 했는데 지하철 서울 지하철 초기에 계단 속도 들어가고 그랬어. 근데 너무 강해서 용도가 폐기되고 그랬는데 거기서 돌을 채취헐 때 생때같은 대학생 둘이 죽었어. 한 놈은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대니다가 여기 아주머니 큰 아들 그 분이 죽었고. 하나는 유도대학 댕기다가 군대가가지고 군대서 사고나가지고 저쪽 아주머니 아들이 죽었어. 그 뒤로 공사를 중단 했지. 그리고 일절 앞으로도 거기는 허가가 안날꺼여. 동네서 동의를 안허니까.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났으니까.

A2 : 그게 그 꿀밀잔디. 밀머리라 그려. 벌 머리라 해서 그냥 밀머리라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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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강은 있었습니까?

A1 : 아 저쪽 뒤에 낭산천이라 있어. 아 뭔천이지 지금은 다른 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더라고. 지금 강폭이 70메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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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매화혈이라는 것은 어디를 보고 매화혈이라 하는 것입니까?

A1 : 아 여기가 창문 열어보면 내 10대조가 계신다고. 근데 그 예정조에 좌의정을 그 김국광 할아버지의 6대 손이거든? 16대조여. 근데 그 6대손이 여그 와 계셔. 근디 이 동네에서는 가장 오래된 묘거든. 그래서 거기 보니까 거기가 광덕원으로 되어 있어. 그래서 넓을 광자 큰 덕자 들 원자 해서 그랬는데 그 광덕원에 대해서 에 문헌을 한 번 찾어보시고.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1637년도에 돌아가셨거든. 그러면 그 때가 임진왜란 끝나고 얼마 후일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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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이 그러면 행정상 화실마을이라 불리던데 그 이름은 언제부터 생겼습니까?

A1 : 아 일제때 만들어졌어. 광두원이라는 이름은 뭐 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다 그러는디 우리는 잘 모르고. 우리가 그냥 부르는 건 광돈이라 불렀으요. 그 돈자는 무슨 돈자지?

A2 : 두터울 돈자지.

A1 : 그래서 내가 족보를 가져옹게 여기 보면은 광덕원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가지고 여기가. 여기를 보면은 용안 광덕원으로 되어 있다고. 내 10대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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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샘은 몇 개가 있었습니까?

A1 : 네 네 개. 다섯 개. 밀머리까지. 밀머리까지 다섯 개여.

B2 : 샘이 다섯 개나 있으면 우리 마을은 물이 부족해서 힘드시진 않으셨겠습니다.

A6 : 아여. 부족했죠.

A1 : 농사질 때는 부족했지. 식수만.

B2 : 그럼 천수답 마을이었습니까?

A1 : 그렇지 다 천수답이지. 비올때까지 기다려야대.

A2 : 여 농지 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저 들판에 넓거든요 들이. 그 때는 물이 없으니까 가물면 못 심고 있는거야 그냥. 그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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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절은 있었습니까?

A1 : 없어. 사찰은 없었고. 여기 경로당 밑에가 과거에 저 중간 그 파발마들이 말을 교체 타고 댕기고 그랬다고 그려. 그래서 관행로가 있었는데 함열서. 그래서 관리들이 하룻 밤 지나가다가 유허고 가고 그랬다는 거여.

A2 : 아 그렁게 옛날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은 여 동네로 일케 원님이 다리로 건너 댕겼다는 그 말을 했했어.

A1 : 그래서 여기를 이 현재 앉아 있는 자리를 공판재라 그려.

B2 : 그게 무슨 뜻입니까?

A1 : 몰르지. 여기가 인제 밑에 파발마가 교체해 갔다고 해서 공판재로만 알고 있지.

A2 : 지금 저 하천쪽으로 가면은 옛날에 다리. 건너다니는 다리 증수비가 있어. 그 비석이. 개울쪽에서 건져냈다고 그려. 건져내가지고 비석 자리에다가 꽂애놨는데 거기를 읽어보면은 지금부터 한 230년 전 얘기여. 한 물이 져가지고 다리가 유실대써. 그래서 돈을 내가지고 거기다가 다리를 또 놨단 말여. 그 내력이 저기 가면 있다니까. 비문에 적혀 있어.

A1 : 그래서 그 비석 이름이 광교 증수비 라고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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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봉수대가 있습니다.

A1 : 저기 봉화산. 근데 연화봉이라고 그러지. 그 저쪽 밑에 동네가 연화동이여. 연화동이라 그러는데 여기서 봉수를 올리면 강경 채운산에서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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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옛날에 우리 마을의 의료기관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A1 : 그러니까 그거는 근거가 없는 말인데. 우리 족보에는 광덕원이라는 것을 보면 넓은 광자 큰 덕자 원자인데 근데 그 전에 원자가 붙으면 의료 기관 같은 게 있었다고. 근데 어떤 면장이 한 번 와가지고 옛날에 큰 의료 시설이 있었다는 얘기만 살짝 하고 가더라고. 그런 터 같은 것은 읎지. 읎고. 광덕원에 대해서 문화원을 좀 찾어 보라고.

A2 : 하여튼 옛날 군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어. 화실에 대해서. 나도 옛날에 익산 군청에 있을 때 읽어봤는데. 여기 뭐 길마재니 내력이 다 나와 있어.

B2 : 길마재 말입니까?

A2 : 여 바로 앞에 앞에. 여기 동네 몇 가구 보고 길마재라 그려. 이 동네에서는 쉽게 길막음재라 그려. 옛날 이름은 길마재리야. 길마재.

B2 : 그 뜻이 무엇입니까?

A2 : 뜸 이름이야 뜸.

A1 : 한 동네에 이 지역 밭 가운데 저쪽은 매래. 구석뜸 여기 공판재 그랬어.

A2 : 저기 길막음재.

B2 : 다시 한 번 이야기 해주십시오.

A1 : 매래. 길막음재. 구석뜸. 공판재. 밭가운데. 밀머리. 그 길막음재라는 데가 옛날 명칭이 길마재야 길마재. 그 내력이 나와 있드라고 그 군지에 읽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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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은 시장을 어디로 다녔습니까?

A1 : 주로 전에는 강경이 생활권이여 강경. 근디 인자 함열로 많이 가고 시내버스가 댕기고 어쩌고 그러니까. 강경이 주 생활권이었어 과거에는. 강경으로 많이 갔지. 그리고 물건 값이 함열보다 강경값이 쪼금 쌌어. 그러니까 강경으로 다니는거여.

B3 : 그럼 걸어가셨습니까?

A1 : 많이 걸어 댕겼지. 나도 저 초등학교 때 쌀 한 말 짊어 지고 지리부도 사러 강경까지 갔으니까. 길은 철도 말고 따로 길이 있어. 팔키로거든 강경이 여기서? 걸어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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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공동묘지나 상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A1 : 있었어. 저 쪽에 공동묘지가 있거든? 화실리 공동묘지. 거기 상여집이 있었어. 근데 그 상여를 쓰다가 무겁고 그러니까 다 흔 것 되고 그러니까 그 뒤로는 상여집에서 다 갔다 쓰고.

B3 : 그럼 굉장히 무섭고 귀신 얘기도 있겠습니다.

A1 : 있지. 그 뭐 저녁 때 되면 애들 왁자지껄 노는 소리도 나고 그런 말도 있고 그랬어. 근디 이전에 옻 올르면은 그 공동묘지 가서 관조각 같은거 불 피워 놓고 연기 쐬고 그랬지. 낫으라고. 허허.

B2 : 그럼 귀신 이야기는 못 들어보셨습니까?

A1 : 그건 못 들어 봤어.

B3 : 그럼 여우에 홀렸다거나 하는 이야긴 못 들어보셨습니까?

A5 : 그 옛날이 애들이 죽으면은 애들이 죽으면은 죄다 소나무에 갖다 올려 놨었대. 옛날 옛날에. 그 홍역허다가 홍역허다가 인자 애기들이 많이 죽잖여. 그러면은 애장을 소나무 위에다가 올려 놨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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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술먹이 같은 잔치는 언제 하셨습니까?

A2 : 대개 칠석날 많이 했지.

A5 : 해마다 했지 뭐. 한 3,4일 했지.

A2 : 그 때는 술 떨어질때꺼지 하는거여.

A5 : 호박 잎에다가 돼지 싸서 노나주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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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다른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니 젊은 청년들이 잘못하면 벌을 주었다고도 들어봤습니다.

A2 : 아 우리도 했죠. 대략 언제 하는고니 저 칠월 칠석 술맥이 헐 때 그 사람이 저 잘못했다던지 불량한 짓을 했다고 하면은 그 저 옛날에는 공좌상 좌상이 있어. 공좌상이 최고 높은 자리고 그 다음이 좌상. 그 사람들이 불러다 놓고 막 인자 혼내는거여.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난리나. 옛날에는 혔다고.

B2 : 그러면 매도 치시고 그러셨습니까?

A2 : 그런 건 모르겠어요. 우리는 매치는 것은 못 봤어. 때리는 것은 못 봤고 말로. 꾸짖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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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구렁이 얘기는 없었습니까?

A6 : 연화에서 그 배밭 산 파다가 죄 졌다는 말은 못 들어보셨어요?

B2 : 그게 무엇입니까?

A6 : 옛날에 새마을 사업을 했잖아. 그 때 자기네 집이지? 자기네 집이 배 밭 밑인디 파다가 그 뱀을 나왔데요. 그래서 그걸 잡아다가 드셨대. 그래서 그 걸로 그래쌌는지는 모르지만 돌아가셨어.

A4 : 연화마을에 이문섭씨라고 그 아주 독실헌 그 모범적인 새마을 지도자가 있었어요. 근데 이 분이 헌신적으로 봉사적으로 부락일을 도맡아 왔어요. 그래가지고 그 자기 집 뒤 뒤안. 뒤안에서 흙을 파다가 길을 만드는 거에요. 그런데 흙을 그 동네 분들 말하자믄 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와서 하니까 한 30여명 되지요. 그런데 흙이 며칠 째 이렇게 했죠. 여러날 했습니다. 근데 거기서 구렁이가 나왔다고 전했어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구랭이를 인자 대부분 구랭이 같은 것이 보약이 된다 해가지고 한국 사람들이 삶아서 먹는 그런 특성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분도 역시 구렁이가 보약이 되고 또 좋은 구렁이니까 그것을 달여 먹은 거에요. 근데 장마가 진 거에요. 비가 며칠이 와요. 그리고 그 집 뒤가 대밭인데 아주 꽉 쩔어가지고 아주 단단하게 그 저 그 뭣인가 돼 있는 땅이거든요. 그 밑은 바위고. 근데 그게 말하자면은 장마 때 그 산이 수십톤 될꺼에요. 그 놈이 미끄러져 나온거에요. 거기에 압사된 거에요. 그 지도자가. 그래서 거기서 말하자면은 그 흙에 깔려가지고 세상을 떴고. 그래가지고 익산시청에서 모범적인 새마을 지도자니까 그 비가 지금 뒤에 경로당에 있습니다. 연화동. 비가 경로당에 있어요. 한 때 그 참 독실한 지도자였다 그렇게 얘기를 허고 있고. 군에서도 얘기가 됐어요. 그래서 군에서 기념비를 세워다 줬어요.

B2 : 구렁이를 잡아 먹어서 그렇다는 얘기군요?

A4 : 그런 것도 관련성이 말하자믄 있다. 그렇게 대부분 짐승을 함부로 잡으면 그렇다 그런 얘기가 있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전해오는 이야기가 고양이가 이걸 뭣인가 때려 잡으면은 손해를 본다 그런 얘기도 있고 그래요. 옛날 이 동네 한 분 살던 분이 있는데 그 분이 고양이를 때리니까 그게 갑자기 죽어버렸다는 거에요. 그 뒤에 어떤 딸이 죽었다던, 아들이 죽었다든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XX댁 이야기라고. 그 뒤로 고양이를 함부로 잡지 않는다. 그런 얘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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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혹시 어르신께서는 봉화대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아는 얘기가 있습니까?

A4 : 이 봉대지기가 여기에 있었던 거 같아요. 말하자믄 이 연화마을에 살았을 거에요. 봉대지기라 해가지고 그 분이 봉화불이 사건이 나가지고 올라오게 되면은 함열에서 불이 올르믄 그걸 받아가지고 채운산에 전달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봉대논이라고 한 4000평이 있었어요. 그래서 150년 전인가. 강완길씨 할아버지가 지셨어. 그래서 봉대지기가 봉대를 올리면서 국가에서 준 농지를 경작해서 먹고 사는 제도가 있었던 것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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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철도를 지으실 적의 사건이나 이야기는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A4 : 철도는 원래가 일본 사람들이 용안으로 나아가게 되어있었단 말이야. 용안으로. 이 난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에요.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긴데 그게 용안으로 나가야 되는데 용안으로 또 가게 되있고 한데. 용안 사람들이 잘 살고 또 거기가 이 또 거기가 좀 똑똑허고 한 분이 많기 때문에 기찻길리 글로 나가게 되면 용안이 망한다. 그래가지고 밀어붙여서 이쪽으로 철도가 났다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겨가지고 이 용동쪽으로 해가지고 철도가 밀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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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할머님께서는 재밌는 이야기 뭐 알고 계신가요? 구렁이나 귀신이야기 좀 들려주십시오.

A5 : 저 외숙모가 그랬어. XX이라나 누구라나. 남자가 그 논 일을 강게 구렁이가 큰 놈이 나왔드리야. 그래서 그 놈을 섯도막 내서 죽였드리야. 여기 저 학동 사람이라고 하데. 옛날에. 그렁게 간게 또 한 마리가 있드리야. 그래서 그 놈도 죽였드리야. 근디 애를 낳았는디 뭔 이 배가 구렁이 같으드리야. 구러이. 그래서 한 달에 싯이 다 죽었드리야. 그래서 XX네가 밤 낮 그 소리 했어. 구렁이 함부러 허지 말라고. 여기 여기 학동서 긍게 한 옛날이지 그런 얘기도 외숙모가 밤낮 그랬어. 어디 비얌 죽이지 말라고. 한달에 애기 셋 다 죽었디야.

비고

면담장소 : 용동 화실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0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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