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서판석(81)-1931년
B1 : 박태건
B2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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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익산군이 17개 면이었었어요. 거기에서도 용안면이 최고 커요. 용안면은 무주군보단 경기 면적이 쪼끔 크고 진안군보단 쪼끔 적어요. 전체, 그 진안군 전체보단. 긍게 무주군 전체보단 용안면이 말하자먼 경기 면적이 쪼꼼 많어요. 400장본가 많어요. 긍게 우리 용안면이 내가 재직 당시에 그 행정 거시기를 일람표를 보면은 4350평보요, 용안면 하나가. 근디 무주군이 4000정보 밖에 안 되거든, 전체가. 그리서 용안면이 그렇게 크고 그 다음이는 오산, 춘포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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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용안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A :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말허자먼 이조 500년 전에 윤종(?) 때에 용안이 일개 군으로, 용안골이요. 옛날 군, 말허자먼 옛날에는 용안골, 여산골, 금마골, 저 함라골로 혀서 네 개 골이 있어요. 긍게 그게 군이여, 지금으로 말허먼. 근디 용안면은 지금 현재 행정구역이 네 개 면으로 지금 부르는 건 그때 네 개 면으로 그대로 했어요. 동면, 북면, 남면 여그가 남면이에요, 지금. 저희 사는 구역이 남면. 그리고 현례. 아까 조사혔다는 디(중신, 용두, 자라, 성치, 법성) 거기 불른 디가 전부 현례. 그렇게 해서 네 개 면으로 이조 때 말허자먼 용안골이 그대로 내려왔어요, 지금도. 이 용안면 면사무소에서도 출장을 갈 적이 직원들이 어디 부락을 간다는 것이 아니라 북면, 남면 그렇게 말허자먼 이 동네 하나의 경기 면적이 성당면 전체보다도 많아요. 이 부락 하나가. 송산부락이. 익산군으로 있을 적이 용안면이, 아니 용안면이 제일 크지만 부락도 여기 송산부락이 행정구역상으로 최고 커요, 호 수가. 근데 옛날에는 송산이 말허자먼 곰굴이요. 곰 웅 자, 골 동 자, 웅동이여, 웅동. 이름이 웅동인디 그 웅동이 어디가 있냐먼 여기 바로 오다보먼은 여기 동네 쪼고만헌 동네 있죠? 그게 원부락 시초요. 송산부락 시초가 거기서 시초가 됐어요. 그게 정종 때 거기 장씨라는 사람이 말허자먼 동네를 일으켜가지고 거그서 말허자먼 장씨가 인동 장씨가 젤 먼저 들어와가지고 그 웅동이라는 동네를 맨글었어요. 근디 곰이 많아서 곰 웅 자를 넣은 것이 아니라 그때는 지금 여기 아까 용안 향교 이 전서에도 나와 있는데 이 동네가 뺑 둘러 전부 쪼고만썩헌 야산으로 돼있어요. 지가 어릴 적이만 봐도 전부 임야예요. 임야로 뺑 둘러있고 동네는 가운데 가서 쪼꼬만허게 있었다 그 말이여. 긍게 그냥 꽉 쩔어 있어요. 그리서 일한 합방되고 외놈들이 송산 행적구역을, 동네 이름을 송산이라고 허자, 여기 향교 책에도 나와 있어요. 그리서 송산이로 그 일한 합방되고서 말허자먼 일본놈들이 행정구역을 개편헐 적이 송산으로 지명을 해가지고서 그렇게 고쳐서 송산이라고 그렇게 돼있어요. 그른디 인자 웅동까지 말허자먼 전부가 송산이지 그게. 여그가 이 큰 동네가 송산, 거기는 웅동 그냥 그대로 그냥 옛날 이름으로 말허자먼 옛날에 이조 때 맨글은 이름 그대로 지금 쓰고 있어요.
B1 : 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웅동이라고 불렀을까요?
A : 그 노인들한티 얘기를 들어보먼 왜 어째서 곰 웅 자를 넣어가지고 웅동이라고 동네를 맨글었냐, 이상하지 않냐고, 무슨 짐승이 있었다든지 그게 아니라 짐승은, 곰은 구경도 못허고 야산이 전부 소나무가 꽉 쩔어있어서 그래서 곰이 살 수는 있었다. 그래서 곰이라는 게 말허자먼 짐승 중에서도 큰 짐승 아니에요? 그런 게 인자 이왕이면은 그 짐승을 따서 동네 이름을 짓는디 곰 웅 자를 느서 곰은 귀허니까, 짐승 중에서도 귀허고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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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안국민학교가 2012년으로 100주년을 맞음.)
B1 : 주로 어떤 곳에다 학교를 지었습니까?
A : 산이죠. 산을 허물어가지고 말허자먼 쪼금 용안면은 산이 야산 밖에는 없으니까 지금 향교 자리, 용안 향교 있는 그 부근이 쪼금 야산인디 거기가 야찹고 그러니까, 평야지니까 거그다가 향교도 짓고 학교도 짓고. 그리서 거그가 소재지가 됐어요.
B1 : 학교까지 지은 것을 보면 아주 좋은 자리일 텐데요.
A : 거기 장관이 와서 춤춘 디요. 용안국민학교가.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군사혁명 때 보먼 박, 그 사람이 박씨들 종친회 회장을 혔는디 그게 내무부장관을 혔거든. 그 사람이 여기 용안국민학교 터가 좋다고 해서 여기를 인자 말허자먼 그때 정부에서 가급적이면 이렇게 새마을운동도 허면서 국민들 단합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행사를 많이 했어요. 그래가지고 용안은 행사를 허는디 내무부장관이 직접 왔어요. 서울에서. 여기 용안국민학교가 크고 골인 게. 그리서 거그 와서 내무부장관이 춤추고 그러고 가서 장관이 와서 놀다간 디라고 용안국민학교가 그전부터 그렇게 유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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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 마을에는 어떤 지명들이 있습니까?
A :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야촌이라고 허는 동네가 하나 있었어요. 이 송산리 부락 저기 재빼기 여기 동산 올라가서 보먼은 내가 한 일곱 살이나 여섯 살 먹었을 때 보았어, 그것을. 내가 실제 보고서 살은 것을 보았다고. 그리서 인자 들 야 자, 야촌이여. 두 가호를 저 논이 멀으니까 옛날에. 거기서 움막 같이 이렇게 혀가지고서 거그서 살은 동네 이름이 야촌이여. 들 야 자, 마을 촌 자. 그렇게 자기네들 두 집이 살드만. 그른디 내가 지금 그때 나이가 일곱 살인가 먹었을 적인디 거기를 여기서 용안 소재지 가기만 혀요, 멀기가. 이 송산부락 땅인디 말허자먼 면적이. 긍게 젤 끄트머리지, 들판 끄트머리. 긍게 여그서 살라먼은 나락 같은 거 다 운반허야 하고 지게로 운반해야 한다 그 말이지. 긍게 멀으니까 거그다 쪼꼬만허게 말허자먼 움막 같이 집을 지었드라고요. 근 80년 전에 내가 그걸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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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용안 그 산줄기 끄트머리가 용두라는 용 용 자, 머리 두 자. 긍게 영락없이 용이 이렇게 조옥 이렇게 지드란허게 늘어서가지고 말허자먼 머리, 머리가 그 제일 금강 끄트머리 가서 거그 가서 있어요, 산이. 긍게 그게 조옥허니 이렇게 용 같이 뻗어서 말허자먼 그 무학산 그 94미터 되는 그 산이 말허자먼 젤 큰 산인디 그게 말허자먼 가운데여. 사람으로 말허먼 배. 배다 그거여. 그리서 용안이 그렇게 조용허고 말허자먼 하느님이 돌봤는지 그건 몰르지만 용안이 조용허다.
B1 : 물난리 같은 것도 없었습니까?
A : 예. 여기 같이 수리 시설이 잘 된 디가 없어요. 근디 인자 나 어릴 적이 지금으로부터 한 80년 전에는 금강뚝이 그게 다목이라는 사람이 일본놈이 와서 그걸 쌓았는디 뚝이 야차니까 금강물이 많으먼 그놈이 넘쳤단 말이에요. 그래가지고 여그가 바다가 됐어요. 내가 그걸 봤어, 어릴 적에 본 일이 있어요. 용안 이 큰 들이 일시적으로 바다가 되야버렸어. 그 금강물이 전부 이 야찬 데로 내려오니까. 뚝이 야차서.
B1 :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A : 5.16 해서 말허자먼 3미턴가 더 돋았지.
B1 : 그전에도 물난리가 났을 텐데, 물난리 나지 말라고 제사 같을 걸 지내지는 않았습니까?
A : 왜요, 아까 얘기헌 그 머리 두 자 허는 젤 첫 번 동네 금강허고 붙었거든, 그 동네가. 용두마을이라는 디서 인자 제일 가차니까 금강이 말허자먼 금강 거기서만 물이 있는 게 아니라 충청북도서부텀 금강물이 내려오잖아요. 그러먼 인자 장마 지먼은 예를 들어서 홍수가 나고 그런다 그 말이여. 그런 때에 몇 년간에 한 번씩 그렇게 비가 많이 오먼은 홍수가 돼가지고서 이 용안들이 하얀 해가지고 바다가 되야버려요. 그리서 용안, 함열. 여그가 함열이거든, 지금. 함열읍 있는 디. 용안면이 꺼진다고 그런 전설이 있어요.
B1 : 용안면이 꺼진다―.
A : 용안, 함열이 말허자먼 언젠가는 꺼진다. 그것이 지금 말허자먼 홍수가 그렇게 대홍수가 나먼은 물이 지니까. 그것보고서 그걸 옛날 노인양반들이 말허자먼 용안, 함열이 꺼진다 그 소리가 그걸 홍수가 나먼은 그렇게 물이 지니까 용안면이 꺼진다. 그래가지고 이사간 사람이 있어요.
(용안, 함열이 꺼진다는 이야기는 외정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함. 하지만 전설은 아니고 종교적인 예언 같은 것이라고 함. 위의 이사 갔다는 사람도 실제로는 그 종교를 믿고 있었으며, 이사 후에는 사당을 지어 제사도 지냈다고 함. 제사 때 빈 것은 용안, 함열이 꺼지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물난리를 막기 위한 제사와도 일맥상통하지 않냐고 말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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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머리하고 용배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 용의 몸 중에서 어디가 좋고 어디가 좋지 않다고 합니까?
A : 말허자먼 그 94미터, 젤 높은 산, 그게 말허자먼 제일 가운데 배다 그거여, 말허자먼 용배. 거기서 이렇게 숨을 쉬는 대로 일어난다고 혀가지고 숨이 이렇게 쉬면은 이게 말허자먼 일어난다, 일어날 기 자, 기운 기 자. 그런 게 말허자먼 그렇게 혀서 복 받어가지고서 그 무학산 밑이가 지금 뭐 향교니 학교니 지서니 관공서가 전부 거그 가서 족 있어요. 그 밑이 가서. 그래서 그게 말허자먼 용의 한가운덴 게 배지요.
B1 : 그럼 용꼬리는 어떻습니까?
A : 용꼬리는 저 끄트머린디 저기 용산리라고 허는 디가 있어요. 젤 끄트머린디 거기서 장군 하나 났어. 말허자먼 그 용 끄트머리 동네에서 육군 소장 하나가 생겼당게.
B1 : 육군 소장이 나온 거하고 용꼬리하고 관련이 있습니까?
A : 긍게 그렇다고 봐야지. 지금 으른들은 다 그렇게 얘기허고.
B1 : 용의 몸 중에서 좋지 않은 곳은 없습니까?
A : 다 괜찮아요. 거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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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그 용으로 이렇게 지드란허게 있는 동네가 앞뒤로 이렇게 다 있다 그 말이죠. 산 밑이 가서는 다 부락이 있잖아요? 이 고도리라고 높을 고 자, 승 도 자, 오얏 이 자, 고도리. 삼승이 젤 먼저 용안고을에 와서 주둔했다. 그서 이름이 고도리요. 고씨, 도씨, 이씨. 그렇게 삼승이 젤 먼저 와서 터를 잡어가지고 용 있는 디 동네를 그렇게 조성을 해서 그렇게 맨글었다. 그래가지고 고도리라고 그래요, 여기 용안 골 보고.
B1 : 도씨입니까?
A : 도씨. 도가라고 도손천 선생, 삿대 맨길은 도손천 선생 있죠? 그 양반이 저 배 삿대를 맨글은 그 양반 산소가 여그가 있어, 지금 용안.
B1 : 배 삿대를 만든 것이 그 당시에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겁니까?
A : 세계에서 젤 먼저 삿대를 맨길은 사람이 도손천 선생 아니요. 배를 운전허는 거. 말허자먼 이리저리 트는 거. 삿대도 없이 잘도 간다, 그 동요, 노래도 있잖아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도손천 선생이 맨길었다 그 말이요. 지금 역사를 보먼은.
B1 : 그 삿대가 처음 만들어진 게 언제입니까?
A : 그게 세조, 세조왕 때. …아니, 세조가 아니여.
B1 : 기억나지 않으시면 저희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 : 여기 저 아까 용꼬리 있다고 그러잖아요? 거기서 살어. 거기가 있어.
B1 : 도순천 선생의 묘가 용산리에 있습니까?
A : 묘가 거기 있어. 원래 여기 사람이요 그게, 말허자먼 도순천 선생이.
B1 : 고씨나 이씨는 특별한 게 없습니까?
A : 에―, 그른디 그 삼승이 젤 먼저 와서 용안골을 맨길었다, 주둔했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젤 먼저 왔다 그거예요. 동네 형성을 헌 것이 용 그 말허자먼 꼬리서부텀 대가리까지 있는 밑이는 전부 말허자먼 동네, 마을이 되얐다 그 말이요. 앞뒤로. 그러니까 그게 그 사람들이 제일 먼저 용안골에 들어와가지고 삼승이 들어왔다고 그리서 고도리예요. 용안골은 고도리다, 이렇게 돼있어요. 그리서 고씨는 제주 고씨, 도씨는 성주 도씨, 이씨는 용안 이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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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바로 옆 마을은 뭐라고 부릅니까?
A : 입산. 거기가 도손천 선생 말허자먼 고향이여, 그게. 저 입산이라는 디가. 바로 여께여. 주유소에서 한 50미터 정도 가먼은, 함열 쪽으로 이렇게 가먼은 그게 입산이라고 있는데.
B2 : 거기를 옛날부터 입산이라고 불렀습니까?
A : 아니, 그냥 말허자먼 그 동네가 삿갓 같이 생겼다고 그래서 삿갓 입 자, 입산이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그렇게 지었어.
B2 : 마을 지형이 삿갓을 닮으면 뭐가 좋다고 합니까?
A : 근디 뭐 좋은 것은 몰라도 인자 그 거그가 쪼꼬만허니 야산이 있는디 그 동네가. 전부 산, 여기마냥 뺑 둘러있는디 오룡골이라는 다섯 오 자, 용 용 자, 오룡골이라고 허는 디가 있어요. 그런디 용안국민학교가 용안면이 크니까 학교를 4개를 맨길었어요. 일개 면에 학교 하나도 없는 디가 있는디 용안은 4개여, 학교가. 외정 때부텀 2개 있고 2개는 8.15 해방 되고서 지었는디….
B2 : 오룡골하고 학교하고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A : 오룡골이라고 허는 디는 이 송산이 많이 가담된 디여. 거기가 지역이. 긍게 다섯 용이 여기서 올라갔다 그거여. 전설이 그렇게 돼있는디 용이 말허자먼 다섯 마리가 올라갔다, 승천을 했다. 근디 그것이 이 송산 동네를 가지고 얘기를 했다는 것이거든. 그리서 말허자먼 서기관이 다섯이나 생긴 것 아니냐.
B2 : 오룡골 덕분에 서기관이 다섯이나 나왔다―.
A : 어, 그 말대로. 긍게 전설이지만 그렇게 이 동네를 따서 그게 말허자먼 오룡골이라고 지었다는 거여.
B2 : 오룡골이 어디 있습니까?
A : 근디 그것을 인자 오룡골이라는 얘기가 어떻게 해서 나왔냐먼은 초등학교를 짓는디 질 디가 없으니까 긍게 그 산이 오룡골이라는 게 말허자먼 국유지요. 일본놈 땅이다 그 말이여. 그런 게 인자 돈이 안 들게 생겼응게 거기다가 짓자. 그리서 거기 터를 다듬고 짓는디 별것이 다 나왔어, 좌우간. 뭐 쪼꼬만썩헌 그 묘에서 그릇 같은 거 도자기 같은 것이 인자 나오고, 늘짝, 시체를 넣는 늘 있잖아요, 옛날에는. 지금도 늘로 허지만은. 늘 두께가 한 요 정도(20센티 이상)가 되야. 그른디 그것이 그거 하나만 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 벌이요.
B1 : 관 속에 또 관이 있고요―.
A : 관이 있고, 세 개가 들어있어. 그런 산소를 처음 봤어. 다 그렇게 생겼더라고. 오룡골 거기 판 디는.
B1 : 학자들도 오고 그랬습니까?
A : 학자들은 안 왔지만 인자 문화원, 여기 인자 익산군 문화원에서 와가지고 인자 상당히 이 무신 귀족들 죽어가지고서 쓴 묘 같다고.
B1 : 관 두께가 얼마나 됐습니까?
A : 요 정도(20센티 이상) 돼요, 하나가. 한 장으로 돼있어. 한 장으로 돼있응게 얼매나 큰 나무로 혔겄어요. 세 개가 들었응게. 하여튼 이런 보통 사람 산소는 아닌 것 같여.
B1 : 그런 묘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거죠?
A : 그렇죠. 집단적으로 있었응게, 거그가.
B1 : 부장품들도 있었습니까?
A : 그른디 그거 인자 예를 들어서 그 죽은 사람의 살어서 쓰던 도구 같은 거예요, 전부. 뭐 술잔이니 무슨 밥그릇이니 그런 거시기가 많이 나오드라고. 딴 것은 뭐 없고.
B1 : 그런 묘가 오룡골에서 나온 거죠?
A : 예, 그렇죠. 긍게 이름이 오룡골이요. 그래서 인자 그 우리 선조들이 얘기허기를 여기서 틀림없이 인자 학교할래 지었으니까 틀림없이 여그서 훌륭헌 사람이 다섯 나올 것이다 그런디 그 전에 짓고 얼마 안 돼서 여기 이 동네만 유독 그렇게 서기관이 다섯이 나왔단 말여.
B2 : 그 오룡골에 지었다는 학교 이름이 뭡니까?
A : 용남국민학교. 용안면, 용안골 남쪽에 있다고 그래서 용남국민학교라고 그렇게 명칭을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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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자명사라는 절이 있거든요, 여그가.
B1 : 자명사 창건설화 들어보셨습니까?
A : 그게 자명사라고 허는 것은 여기 지금 그 사람이 엊그저께 죽었는디, 죽은 지가 지금 한 두 달 정도 되는디 그 사람 아부지 이름이 자명이여. 근디 홍기상이라고 그분이 5.16 후에 그 지방자치제를 실시해가지고 야당으로 해서 그 출마해가지고 면장이 되얐어요, 홍기상이라고 허는 사람이. 근디 그분 어머니가, 어머니 인자 내외간이지. 신랑 이름이 자명이여. 근디 그 절이 지금이 자명사지 옛날에는 자명사가 아니란 말이여, 그게.
B1 : 옛날에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A : 긍게 예전에 뭐라고 혔던가는 나 몰르겄어. 근디 이 사람이 지금 사람이니까. 홍기상이가 지금 나보다 한 살 더 먹고 그 아버지가 자명인디 그 양반이 그 절을 열심히 내외간이 말허자먼 요 교회로 말허자먼 집사 같이 그렇게 막 그냥 무신 좋은 날이고 나쁜 날이고 그렇게 댕겼다는 거요, 그분이. 그리서 그 주지가 거기 왔을 적이, 거기 딴 인자 어떤 주지가 왔는지는 몰르지만은 그 주지가 이름을 바꿨디야. 당신 이름이 이름도 좋거니와 이 말허자먼 절을 위해서 그렇게 헌신을 허니까 당신 이름으로 자명사라고 그렇게 붙이야겄다. 그렇게 해서 고쳤다는 거여, 자명사라고. 그 양반 이름이 자명이거든. 홍자명이.
B1 : 그때가 언제입니까?
A : 긍게 그 양반 살었을 적인 게, 지금 살었으먼은 그 양반이 한 백, 백이십 정도 되얐거든. 이십은 쪼꼼 더 되얐겄네.
B1 : 그럼 해방되고 나서 그 자명사로 이름을 고쳤을까요?
A : 아니지. 해방 전에. 일한 합방 말기쯤 될 거여. 말기쯤 되겄어. 그 양반 나이를 생각해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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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목련암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그건 못 들었어요. 목련암은 있으먼 여기 칠목리라고 여기 거그가 지금 저 쓰레기장 됐는디, 군에서 쓰레기장 맨길었는디 거그가 방죽이 있었어요. 유명한 방죽이 하나 있었어.
B1 : 방죽 이름이 뭐였습니까?
A : 칠목리방죽이라고 그러죠. 칠목리, 그게 동네 이름이 칠목리요. 긍게 칠목리방죽이라고 그려, 거기 보고. 근디 그것이 엣날에 외정 때 일본사람들이 농사 지어먹는디 쪼꼬만썩허게 맨길은 그 말허자먼 토강리라고 혀가지고서 그거 연못이 많았어요. 근디 그것이 다 미어지고 수리시설이 완전히 되니까 필요가 없단 말이여. 그것 찌깐헌 거 맨길어서 그것 가지고는 필요 없응게 거그다 그냥 답, 방죽을 쪼꼬만썩허게 있는 거 다 미어가지고서 그냥 논밭으로 씨어먹고 다 그렇게 돼있어요. 근디 지금까지도 있응게, 그 방죽이 지금 보먼. 그건 외놈들이 맨길은 것이 아니라 옛날에 그게 산 이렇게 똥그란 헌 산 밑이 가서 상당히 커요. 그서 그 칠목리방죽이 내가 볼 적이는 하여튼 이조 때부텀 생긴 걸로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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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내가 상당히 커서도 뭐 보름날 같은 날, 뭐 초사흗날 같은 날 뭐 다리도 놓고 뭐 어찌고 그러더니 일절 싹 없어져버리대. 그전이는 이렇게 질 건너는 이렇게 꼬랑이 있으먼 꼬랑에다가 다리도 놓아주고 대개 정월보름날, 초사흗날 뭐 그런 때 꼭 그런 걸 동네에서 (놓았는데.)
B1 : 다리를 돌로 놨습니까?
A : 아녀. 그냥 이렇게, 똘이 이렇게 쪼꼬만썩허게 물 내려가는 똘이 있으먼은 이렇게 짚으로 이렇게 벽돌 같이 이렇게 맨길어가지고 거그다 흙을 넣고 양쪽이가 안 허물어지게 이렇게 건너댕기기 좋게 그렇게 허고 옛날에는, 지금인 게 인자 수도가 다 돼있지만 옛날에는 여자들이, 아낙네들이 이렇게 이고 댕겼잖아요. 긍게 그 꼬랑을 넓으먼 못 뛴다 그 말이여. 저 물 이고서. 지게도 그렇고. 못 건너댕긴다고. 긍게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이렇게 요만헌 걸로 뭘로 이렇게 짚으로 맨길어가지고 거그다 흙 담어서 말허자먼 양쪽에다 하나씩 놔.
(도랑 폭이 넓으면 건너다니기가 힘드니까 폭을 좁히기 위해 도랑 양쪽 끝에 흙을 담은 짚덩이를 놓아두었다는 이야기. 이 마을뿐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도 같은 민속이 있었다고 함. 5.16 이전까지도 이 같은 민속이 지속되었음.)
B2 : 그렇게 다리 놓는 것을 뭐라고 부릅니까?
A : 보름다리라고 그러대. 보름에 놓는다고 보름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