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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용안면

중신마을

구술일: 2013년 3월 10일
구술자: 임용구(1927년생)·남, 조남해(1959년생)·남
면담자: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마을유래담 :
- 중신마을 : 임씨 집성촌. 고려 멸망 때 유입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
- 소펄 : 농지를 찾아 이주한 경상도 주민들의 거주지.

2) 전설 및 민담 :
- 꽃샘 : 꽃샘이란 모양이 아름다워서 꽃 같다고 꽃샘이라고 함.
- 효자 민담 : 부모님께 자신의 피를 먹였다는 효자민담.
- 무학산의 용 : 무학산. 용의 혈자리.
- 미륵산과 사자 : 미륵산이 사자 혈자리를 닮았다는 혈자리 민담.


3) 민속 :
- 시장 : 함열장이나 강경장을 이용함. 생활권은 충남이라고 볼 수 있음.
- 기우제 : 무학산에서 과거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문헌 내용

중신(中新)․구렁목(鼈谷) : ‘중신’은 조선조 때 평택임씨가 처음 살기 시작한 마을인데 용안의 중앙부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한문자 이름으로 지었다 한다.‘구렁목’은 구렁에 위치한 마을.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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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임용구(87)-1927년
A2 : 조남해(55)-1959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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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중신마을은 뜻은 무엇입니까?

A1 : 예 중신리라고 해서 특별히 특색이 있는 것은 아니고 원래가 저 용안에 골이 있습니다. 골. 말하자면 골이라고 하면은 용안이라는 골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은 교동리가 소재지인 원 골이 있었고 그 옆에가 중신리에요. 교동리라는디가 원님들이 거가서 있었고. 지금 보자면 군청. 원이 있었고. 여기는 중신리. 옆 동네인데 여기가 중신리는 용안면서 부락적으로 제일 큰 부락이에요. 부락에서. 중신리가 지금 4구로 나눠졌는데 여가 300호수가 있었어요. 지금 보태서 300호지 290, 280호 됐으니까. 애초에 여기가 이 동네가 우리 말하자믄 우리 23대조 정도 되는 분이 어떤 분이냐면 그 저 고려시대에 그 공민왕 그 거 이 영의정 지금 말하면 영의정을 허신 분의 자손이여 여가. 근디 거기서 이성계 그 분이 인제 집권허게 되니까 그 때는 3대조까지 멸망을 시켜버렸다고. 그 전 시대에는 후손이나 무슨 죄를 말하자면은 지을까봐 3대를 다 죽이고 없애버리는 저에 놓여있는디 그 중에서 인제 숨어서 숨어가지고 황해도를 해서 돛단 배. 나무 배를 타고 그냥 거처 없이 온 디가 바로 여기에요. 근데 그 때는 그 양반이 누구냐면 평원 부원군이에요. 그 분이 영의정을 허신 그 자손이 우리 아버지가 22대니까 내가 23대죠잉. 건너 온거여 이렇게. 하인으로도 오고 평택 임씨라는 걸 속여가지고. 그래서 그 분이 그 양반이 평원 부원군이라는 양반이. 이름은 견자 미자 임견미. 평원 부원군 임견미. 그 분이 인제 자손이지 아들 딸도 있고 하지만은 그 양반의 묘소. 가묘가 여깄어요. 가묘로. 바로 이 뒤에 묘소가 있어요. 그래서 자손들이 거 가서 뭐냐허면은 시제를 지내요. 무학산 바로 앞에.

B2 : 우리 마을은 집성촌입니까?

A1 : 그렇죠. 씨족 본토죠.

A2 : 우리 중신리는 임씨 집성촌이에요.

A1 : 근데 요 가짜 산소를 모셨지만은 자손들이 전국에서 다 와요. 그 때 왕군의 자손들허고 견자 미자의 자손들하고도 가깝게 지냈는디 망허다 보니까. 이성계 그 분헌테 망하다 보니까 그래서 그 분 아드님 세 분을 여기서 모시고 있어요. 견자 미자 할아버지의 세 자손분도 여기에 모시고 있다고.

B2 : 와서 평택 임씨를 숨기고 하셨다 하셨습니다.

A1 : 그렁게 그 분이 인제 우리 말하자믄 우리 아버지가 22대인데 그 때부터 우리가 알기를 더 높은 양반은 있지만은 내 위로 22, 23, 24대 고조 할아버지가 여기서 부사를 하셨어. 그래서 부사가 나왔기 때문에 양반이라는. 임씨가 양반이라는 소리여. 그래서 용안 임씨가 양반이여. 그래서 양반 행세를 한거여 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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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뭐가 있었습니까?

A1 : 그런 이름을 불르는 건 잘 모르겠는디 알라고 할 수도 없고 알아볼라고 할 것도 없는데 지금 어떻게 돼 있냐면 중신이라고 하나 크게 왜정시대때부터 불렀던 걸로 알고 있고 그 전에는 이 동네가 상신 중화 하신 중신 이렇게 네개로 나눠져 있는데 원 중신이 그 분들이 잘 설었던 디가 이 바로 넘어 동네여. 그것밖에 내가 잘 몰르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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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그럼 무섭거나 신기한 일은 있습니까?

A1 : 근디 그것은 나는 소와 12년도에 태어났으니까 소와 12년도에 나와가지고 지금 여까지 왔을 때가 지금 내가 87살이거든. 그 전에 이 고개 넘어가는 게 무섭기도 하고 좀 거기서 좀 그 때부터 나온 것이 꽃샘이라고. 냇갈도 없는디 아주 맑은 물이 흘르는. 하나 그 구락이서 한이 이 산이 이렇게 밑이 꼬라져 있는디 그 물이 사시절이 물이 나와 맑은 물이. 그서 전부 이 논에서 수도도 읎구 샘물 파서 물을 먹었는디 거기는 파도 않고 물이 흘러서 거기 빨래도 거기하면 빨래도 잘 되고.

B1 : 그럼 우리 마을에 우물은 몇 개였습니까?

A1 : 그 하나. 꽃샘. 하나 뿐인데 근데 왜정시댕게 사람은 늘어나는 디 저 그것 가꼬 안돼니까 우물을 파가꼬서 물을 품어 올리는 샘 했지만은 거기는 그것도 없이 돌 사이서 물이 흘르는 디. 뭐 목 마르면 거기 가서 먹고 그래도 아무런 질병이 걸리들 않여.

B2 : 이름은 왜 꽃샘입니까?

A1 : 산이 이짝으서 이렇게 생기고 이짝으서도 이렇게 생기고 거기서 보면은 아름답게 생겼응게 꽃샘이었겠지 뭐 꽃은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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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샘 청소는 언제 하셨습니까?

A1 : 청소를 허는 것 보담도 주위에 있는 것만 긁어내도 거기에 흘러내려가도 이끼같은 게 끼들 안 혀. 높으니까 이것이 아마 특수헌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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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임씨가 많이 살았으면 효자분도 계셨습니까?

A1 : 아 효자분도 있지. 어떤 분이 아마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고 그 분이 임 내가 저 성이라고 허든가? 임. 그 분이여 그 분이 중앙에서부터 효자 상을 받은 분인디 내가 그것도 알라 했으면 이름을 하도 잊어버렸. 임성흴꺼여 임성희.

B1 : 그 사연은 알고 계십니까?

A1 : 그 때는 약도 제대로 병원도 흔치 않고 그래서 누워 계시는 디 어떻게든지 살아계실 하면서 손을 끊어서 피를 흘러내려가지고 그 피를 자시게끔 해가지고 좀 더 오래 살게 해서 효자를 받지 않았는가. 아버지를. 그것을 향교에서 해서 중앙까지 해서 효자상을 탔어.

B2 : 효자비도 있습니까?

A1 : 그 사람 효자비는 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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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미신은 있습니까?

A1 : 아 미신같은 게 있었지만은 이 동네에서 미신을 모시고 굿을 허기는 해도 딴 외지인들은 모이다 놓고 했지 우리 동네에서 굿을 허는 분은 없었지.

B2 : 그럼 귀신 봤다는 분은 없습니까?

A1 : 어어. 그런 동네는 아녀. 여기가 어떠냐면 참 편안한 디가 왜 편안한디냐. 원이 오드라도 부락이 인심이 좋아야 허는 거 아녀? 그래서 원님이 제일 용안면이라는 디가 우리 나라 중에서 제일 원중에 제일 작어. 사람도 적고. 그래서 여기로 발령나면 지금으로 말하면 좌천. 엉엉 울어. 내가 지금 뭘 잘못했기에 용안으로 왔냐. 그래서 우는디 나갈 때는 막 울어. 막 조그맣고 형편없는지 알고 왔는디 막 그렇게 인심이 좋아. 원님을 잘 모시고 나쁜 사람이 없고. 그러니까 들어올 때는 좌천잉 게 울고 나갈 때는 인심좋고 후해서 그래서 이렇게 좋은 곳을 나가기 서운허다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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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용안은 시장을 어디로 갔습니까?

A1 : 용안은 시장이 없어. 시장은 언제부터 있냐면 구시대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왜정시대 때 함열. 함열 있고 강경 있고. 근데 여기는 그 중간이기 때문에 장이 안서지. 여기는 함열 아니면은 강경으로 갔지. 근디 함열보담도 더 교통은 똑같어. 용안서 함열가나 용안서 이리가나.

A2 : 여기는 상권이 충남이야 충남. 저 강경으로 많이 갔지.

B1 : 그럼 충청도 문화가 많이 섞인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A2 : 그 문화가 섞여 있는 건 이 말이 충청도 말을 현다고 많이 들어요. 우리는 서울 같은 가면은 충청도에서 온 것으로. 긍게 그 예전에 제가 알기로는 군산에서 서울 천안까지 시외버스가 있었어. 그래가꼬 그것이 군산에서 출발해가지고 논산을 경유해가지고 논산에서나 1번 국도나 타고 천안으로. 1번국도가 목포에서 연무대로 전주에서나 올라가잖아요 여산으로. 근데 논산에 가서 1번국도를 타고 천안까지 갔다고. 유일한 직행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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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익산군청이 함열에 있을 적엔 여기는 어땠습니까?

A1 : 많이 발전했지. 긍게 우리가 아쉬운 게 뭐냐면 지금같이 전주허고 완산하고 통합한다고 할 때 전주에서 모든 것을 많이 양보허고 농촌에 필요성 있는 것도 해주고 하니까 좀 하는 걸텐데 그것도 저것도 없이 익산하고 이리허고 익산군허고 통합을 허면은 좋다. 그래서 기냥 한 번 혔다가 반대했는디 반대해서 안됐는디 또 두 번째 허다가 함열 사람들이 자기들도 더 좋을 줄 알고 했던 것이 지금 함열 사람들이 용안 사람들이 그냥 죄 다 사람이 줄어들어. 근데 이리허고 가까운 황등 거기는 인구가 늘어나. 오산 황등은 이리시허고 인구가 늘어나. 학교다니기가 좋고 하니까. 인구가 들어나고 건물도 세워지고 그런디. 함열같은 데는 아파트는 많이 세워져도 인구는 많이 없어. 그래서 함열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 후회혀. 용안은 함열이 망하니까 여기도 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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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이장님께서는 이 근처에 특이한 마을 지명이나 그런 특이한 사건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A2 : 여기는 평야지대라 내가 들은 걸로는 저기 소펄이라고 들어봤어요? 거기는 망성면이거든? 근데 마을이 펄이라는 것은 강이라 그 지금은 인자 만들어가지고 농사도 짓고 잘 해놨는데 경상도 사람들이 거가 좀 그런 건 산이 많으니까 옛날에는 먹고 살기 힘들었잖아요. 그리고 여기는 평야지대니까 경상도 사람들이 거 허허벌판이고 갈밭이고 그러니까 거기와서나 이쪽이로 와가지고서는 하나씩 집을 짓고 그냥 무허가로 절대지 그런식으로 해가지고 생긴 마을이 소펄이라고 하드라구요. 인자 마을은 뭐라 하나 몰라도 소펄이라고 해. 거기엔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A1 : 소펄이라고 해서 얘기하는 건디 지형이 원래 금강이여 금강. 근데 금강이 어서 들어오냐면 충청북도 충주 거그서부텀 흘르는 물이 어디까지 오냐면 여기까지 오는 디가 금강이여. 여기가 하류지. 그 전에는 지형이 현재의 강경간 도로 있잖소? 도로의 이짝하고 도로 위허고 아래하고 소펄이라는디였어. 근디 뭐냐면 왜 그전이 논이 생기기 전에 거기가 바닷물이 이제 금강물이 흘렀어 거가. 내가 어렸을 때 물졌다 그러면 거기가 그냥 하얀해. 그만큼 지형이 낮다 이거여. 그래서 거기는 농사는 일년 지어야 물 한번 지면 다 베려버러니까 이 위허고 아래하고 논금이 차이가 굉장히 심했거든. 근데 지금은 어떻게 허는게 왜정 시대 때 뚝을 쌓았어. 말하자면 금강 물이 일러 흘러 못오게끔 뚝을 쌓아서 쭉 쌓였거든. 근데 그 뚝이 이짝으로 흘러 오질 못혀. 이 짝에서 비가 많이 와도 물을 다 품어내기 때문에 물이 안 져. 근데 그 전에는 펄논이다가 물이 져서 농사를 안 짓는디 사람이 인구가 늘어낭게 논을 만들어서 개인이 막 마음대로 만들었지. 그 논이 펄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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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무학산에 산제를 지냅니까?

A1 : 무학산이라는 디가 뭐냐면 옛날에 비가 안오면 그 나무를 태워서 비가 오게끔. 지우제. 지우제를 그 불 넣고 지우제를 지내고. 그리고 학이 많어 학이. 지금도 커. 무학산에 학이 있어.

B2 : 그럼 무학산에 전설은 없습니까?

A2 : 지금 무학산이 용 형태라 허드라고 그러거든. 강경에서 이쪽으로 오다 보면은 용 형태라 그래가꼬 나도 몰르는데 금마. 금마 그 저 과학고등학교 있잖어. 그 금마가 백제시대 때 거가 수도 아녀 왕궁. 긍게 수도가 지금 과학고등학교 있는 자리로 들어가면 안 망했다 하드라고. 나도 그것을 어디서 들었냐면 전주에서나 운명 철학관 하는 분이 이 산에 다니면서 묫자리를 많이 보고 다니는데 그런 사람들이 보는 형태를 알려주니까 보믄 알겠드라고. 그 양반이 금마에서 공수부대에서나 딱 정문을 지나가지고 내려재끼는 가운데 쪽으로 미륵산을 딱 보면 사자가 이렇게 딱 움츠리고 있는 그 형태가 나타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사자 음부 자리에 거기에 과학 고등학교가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지금 학생들이 거기서 계속 새끼쳐 나오고. 그렇게 얘기를 들으니까 이해가 가드라고. 그래서 가다가 보면 사자가 이렇게 있는 형태가 나타나더라고. 그리고 그 자리에 과학고등학교가 들어간거지. 무학산은 용의 머리를 닮은거지 용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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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면담장소 : 용안 중신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3월 10일 13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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