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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용안면

칠목마을

구술일: 2013년 7월 6일
구술자: 전병태(1950년생)·남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1) 마을유래담 :
- 칠목마을 : 七牧. 작물이나 가축이 잘 자란다는 뜻.
- 구렁목 : 칠목마을 입구를 부르는 지명.
- 앵골 : 지금 함열여자중학교 근방을 부르는 지명.
- 마을을 부르는 지명 : 마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꺼끄름뜸’, ‘가운데뜸’, ‘안뜸’이라 부름. 마을 입구 부분(구렁목)을 가리켜 ‘꺼끄름뜸’이라 부르고, 가운데는 ‘가운데뜸’, 가장 안쪽은 ‘안뜸’이라 부름.
- 광두산 : 용동면에 있는 산으로 봉화대가 있었다고 함.
- 창리마을 : 조선시대 곡식창고가 있었다는 마을.
- 금성마을 : ‘걸망장터’라고도 함. 망태를 매고 장에 가기 때문에 걸망장터라고 부름.
- 할미바위 : 독산에 있었다는 바위. 바위의 모양이 꼭 할머니처럼 생겨 ‘할미바위’라 함.

2) 전설 및 민담 :
- 중진제 : 기미년에 만들어진 저수지. 가뭄 때 마을 주민들이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민담. 지금은 쓰레기 매립장.
- 용을 닮은 산세 : 용안면 용두마을에서부터 함라까지 산줄기가 이어짐. 용안면에 있는 ‘용두산’이 용의 머리라고 함.
- 오랑캐다리 : 용안면 창리마을 근처에 용안면과 용동면을 연결하는 다리. 당나라와 전쟁을 했다는 전설.

3) 민속 :
- 술멕이 : 모내기를 끝낸 뒤에 벌이는 마을 잔치. 우물청소를 함. 아들을 못 낳는 집안의 가장이 우물을 청소함. 또 술멕이 전에 집집마다 방문하여 장독대가 있는 곳에서 풍장을 침. 이것을 보고 터를 누른다고 함.

4) 철도 :
- 함열역 : 원래는 용안을 거쳐 함라로 기찻길이 개설 될 예정이었는데, 용안과 함라에서 반대했다고 함.

문헌 내용

칠목(七牧) : ‘칠목’이라는 이름은 본시 옷나무가 많아서 칠목(柒木)이라고도 하고 질목(길목)이므로 ‘질목→칠목’이라고도 하고, 또 지형이 북두칠성처럼 생긴 목이므로 생긴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상고할 길이 없다.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 : 전병태(62)-1950년

B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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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칠목이란 이름은 어떻게 해서 지어졌습니까?

A : 칠목이라는 게 목 자가 기를 목, 칠 목이라고 혀갔고 그 목 자를 쓴대요. 긍게 일곱 가지를 기른다―. 목 자가 칠 목이야. 양 친다고 허죠, 양을 친다고 허잖아요. 긍게 암만 뭐 농산물이 잘 된다, 이런 뜻 같아요. 일곱 가지, 그런 게 가축이니 농산물이니 이런 걸. 그런 의미 같아요. 그때 어른들도 그렇게 얘기를 했고.

B : 다른 마을과 비교해서 특별히 유명한 작물이 있습니까?

A : 뭐고 잘 돼요, 여그가. 쌀도 잘 되고 밥곡식 같은 것도 잘 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심는 것이 다 잘 돼요. 콩도 잘 되고 고구마도 잘 되고 벼도 잘 되고.

B : 농지는 여기가 넓은 편입니까?

A : 예, 논이 많아요. 밭은 적고. 논이 지금 많이 줄었는데 지금 한 50헥타 돼요.

B : 방죽은 없었습니까?

A : 뒤에 저수지가 한 이만 평짜리 저수지가 있었는디, 중진제라고. 익산시 쓰레기 매립장이 됐어요.

B : 오래된 저수지였습니까?

A : 기미년 흉년에 가뭄으로 인해서 흉년이 드니까 어른들이 그 지게로, 세숫대야로 흙을 파서 제방을 만들어서 물을 저수혔다가 이 밑에 들판을 그 물로 농사를 지었어요. 그런 게 제방을 만드는데 지게로 흙을 다 지어 날르고 여자들은 뭐 세숫대야 이런 걸로 흙을 미어 날르고 그래갔고 그 제방을 만들었었어요.

B : 왜 중진제라고 불렀습니까?

A : 그걸 모르겠어요. 지도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우리는 그냥 중거리방죽이라고 그러거든, 중거리방죽.

B : 또 어떤 지명들이 있습니까?

A : 우리 동네 입구 오다보먼 그 매실닭집 있잖아요? 거기를, 우리 동네께를 들어오는 거기 보고 구렁목이라고 그랬어요, 구렁목. 그러고 또 그 옛날에 구도로는 거기에서 저 천주교 쪽으로 이렇게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인자 직선길로 냈잖아요, 지금 함열여고 앞으로. 근데 여중학교 앞으로 길이 있었어요. 지금도 현재 남아있는데 그 여중학교께를 앵골이라고 그랬어요, 앵골. 그 함열여고, 함열여중에서 앵골 축제도 헐 거여, 5월 달에.

B : 함열여자중학교입니까?

A : 예. 긍게 함열여자중학교 앞에 그 근방 보고 앵골이라고 그랬어요, 앵골. 무슨 뜻인가는 몰르는데.

B : 구렁목은 왜 구렁목입니까?

A : 모르겠어요, 그걸. 우리 어렸을 때부터 구렁목이라고 혔으니까. 거그가 구렁목이고 그 근방 동네가 아마 마을이 한 80호 됐었어요. 근디 그 근방은 인자 꺼끄름뜸, 가운데는 가운데뜸, 이쪽은 안뜸 그렇게 혔고만.

B : 마을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있던 거네요.

A : 그러죠. 지금도 그건 허고 있어요. 안뜸이다, 가운데뜸이다, 꺼끄름뜸이다, 지금도 우리끼리 사용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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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함열역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옛날 그 외정 때 진, 나무로 진 역사가 있었는데 그게 인자 지금 신역으로 옮겨가면서 그게 다 철거가 됐지.

B : 어떤 사람들이 함열역을 많이 이용했습니까?

A : 학생들이 통학을 많이 했죠. 이리로 다니는 학생들.

B : 함열역 사람들 텃세가 심했습니까?

A : 그전에 그 양반들이라고, 용안은 현이 있었단 말이여. 긍게 기차가 용안으로 혀서 함라로 혀서 이렇게 가야 한대요. 공주로 혀서 이렇게 오야 한대. 근디 양반들이라고 못 지나가게 헌대요. 그래갔고 이 함열로 지나가게 되니까 인자 통학생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천상 함열 가서 기차를 타야하잖아요. 긍게 뭐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한수 먹고 들어간다고 허잖아요. 그래갔고 텃세가 심허지. 주변서 오는 사람들한티 텃세를 부리는 거예요.

B : 원래는 용안으로 날 예정이었습니까?

A : 그러죠. 공주, 용안, 함라 이렇게 가야하는 철도가 함라도 양반고을이고 용안도 고을이 있어가지고.

B : 여기서도 텃세를 부렸습니까?

A : 저 앞에 저 광동부락, 에― 거기 학생들도 우리 동네 앞으로 양자학원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는디 우리 동네 얘들한티 꼼짝 못했어. 지나가먼 때리니까. 그러먼 예를 들어서 거기 지나가는 학생이 15살 먹고 우리 동네 학생이 13살 먹었어도 우리 동네 13살한티 맞었어. 우리 집 앞이니까.

B : 광동부락이 어디입니까?

A : 저 앞에 산 너머요. 지금 용동면. 저 앞이 저게 광두산이라고 역사에 나와요. 봉화대가 있었어요. 그래서 봉화산이라고도 허고. 함라 그 산에서 숭림사 있는 데 또 봉화대가 있고 여기 저 광두산, 역사책 보먼 광두산으로 나와요. 광두산에 봉화대가 있고 저 계룡산에 봉화대가 있고 그렇게 해서…. 지금 여기는 흔적이 없어졌을 거예요. 봉화산이라고 허거든요, 우리는 지금 어렸을 때. 함라 거기는 지금도 있드라고.

B : 광두는 왜 광두입니까?

A : 긍게 모르겠어요,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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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용안은 왜 용안입니까?

A : 편안할 안 자, 용 용 자 혀갔고 용이 편안헌 거시기라고.

B : 용안 지형이 용을 닮았습니까?

A : 아, 용두산이 있고, 용두가 있어요. 이 함라에서부터 이렇게 용안 끝까지 가먼은 용두리라고 마을도 용두리고 산이 용머리처럼 혀갔고 앞에가 금강이여, 그게. 그래서 지금도 거기를 용두, 용두리 용두마을, 송곡마을 그러거든요. 근디 그 용머리라고 지금도 불러요, 거그를.

B : 용머리면 풍수적으로 뭐가 좋다고 합니까?

A : 아니, 뭐 특별허게 거시기는 없는데 금강 앞에서 딱 끝나요. 용머리가. 그리서 인자 그 용처럼 함라서부터 이렇게 거까지 길게 산이 뻗쳐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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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용안 그 창리라고 있는데 거기에 오랑캐다리라고 있어요, 오랑캐다리. 당나라 땐가 언젠가 여그 전쟁을 혔다더라고요. 그래갔고 저 오랑캐다리 같은 것이 있고 그러거든요. 용안서 들은 얘긴데 얼마 전까지도 그게 있었대요.

B : 어디 있는 다리입니까?

A : 그게 용동 입구일 거예요, 용안서 용동 입구. 원래 용안, 용동이 한 면이에요. 용안면이었었는데 원체 크니까 동쪽으로 나눠서 용동면으로 나눈 거여. 분면을 헌 거여.

B : 오랑캐다리가 창리마을 옆에 있습니까?

A : 들 가운데가 있어요, 그게. 용동 가서도…, 몰르겄어요, 아는 사람이 있을랑가 모르는데 크게 없을 거예요. 이쪽 용안 쪽에서 그걸 알더라고요. 창리가 옛날 그 뭐 조선시대 때 그 곡식창고 있어갔고 창리라고 해요, 창리.

B : 창리가 금강 옆입니까?

A : 예.

B : 그럼 그 곡식들을 배로 운반했었겠네요?

A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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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금성마을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걸망장터여, 그 마을이. 이렇게 망태 미고 장에 간다고 혀서 걸망장터. 옛날에는 인자 가방이 없으니까 망태를 미고 장에 가니까 걸망장터여, 거그가.

B : 함열장하고 거기하고 뭐 다른 게 있습니까?

A : 함열장은 인자 철로가 생겨서 장이 생긴 거고 그 이전에지, 훨씬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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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엣날에 이 마을이 큰 마을이었습니까?

A : 지금은 인자 사람이 백 명도 못 되는디 그때(새마을운동 당시)만 해도 오백 명이 넘었으니까.

B : 그럼 술멕이 같은 행사도 굉장히 크게 하셨겠네요.

A : 인자 술멕이를 그 저 모 심고 나서 보통 허고 칠석날 그런 때 허거든요. 얼마 전까지도 그런 걸 했어요.

B : 술멕이 순서가 어떻게 됩니까?

A : 인자 풍물 치고. 동네 돌아다니면서 풍물 치고.

B : 그냥 돌아다니기만 합니까?

A : 그러죠. 집집마다 들려서 뭘 장꽝에 가서 뭘 집터 눌러준다고 허고 뭐 그렇게 풍장도 치고 그랬죠. 그렇게 허고 칠석날 같은 경우는 또 공동우물을 다 청소를 했지, 그날. 우물 다 품어내고 그 뭐 우물 들어가서 안에 가서 청소허는 사람 들어가서 허먼 아들 난다고. 그랬지 뭐, 우리 어렸을 때 보먼.

B : 우물 청소하고 아들 낳는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A : 인자 서로 안 들어갈라고 헌 게 그랬겠지 뭐. 그때만 해도 아들이 귀헌 시대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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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여기서 독산이 가깝습니까?

A : 예. 우리 소풍 명소여, 그게. 소풍 갈라먼 독산으로 가는데 보먼 뭐 장군 발자국도 있고 막 돌, 바위에 이렇게 발자국 자리 그런 거 있었고 그랬거든. 근디 그 석산이 다 없어졌어요, 돌산이. 근디 그 뭐 전설인데 흑산도 있고 독산도 있었어, 거기에. 근디 원래는 반대로 독산이 흑산이었었고, 흑산이 독산이었었대요. 근데 서로 흙을 던지고 돌을 던지고 혀서 바뀌었대요.

B : 독산에 할미바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할미바위처럼 이렇게 하나, 뾰쪽허니 이렇게 생긴 돌이 있었어요. 바위가 이렇게 이렇게 생겼는디, 이렇게 엄지손가락처럼, 할머니처럼 하나 있었어요. 할머니 모습으로.

B : 할머니처럼 생겨서 할미바위입니까?

A : 그렇죠.

비고

면담장소 : 용안 칠목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7월 6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사진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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