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김상중(82)-1930년
B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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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마을 내력과 전설, 민담, 민속에 대해 아시는 대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 여기가 광산 김씨 집성촌인디 그때 당시(병자호란, 1636년)에 그 우리 인자 심씨 할머니가, 그 할아버지는 그 병자호란에 돌아가시고 인자 홀랑 어머니 한 분 남았었는디 한 댓 살 먹은 어린아이가 오 자, 복 자 그 할아버지라고 그 할아버지를 인자 업고 결국은 피난 온 것이 이 골짝으로 온 거여, 그 양반이, 우리 할머니가. 근디 그 양반은 병자호란 땐 게 인자 거시기는 찾어보먼 몇 년돈가 나올 거 아녀. 그때 당시에 오신 양반이여. 그러니까 지금 나허고는 11대조 할머니고 오 자, 복 자 그 할아버지는 10대조 할아버지니까. 10대조 할아버지가 진소라고 허는 디도 인자 송천리 가운데 하난데, 송천리의 진소마을인데 진소, 송천이 광산 김씨 집성촌이여. 그 양반 손들이여. 그래서 이 마을이 제일 첫 번에…, 그 양반이 이렇게 제일 첫 번에 오신 것 같어. 다른 성들은 여그 저 조씨라고 있었는데 내가 그리서 조씨 그 저 족보를 가져와 봐라, 느 할아버지가 먼저 왔나, 우리 할아버지가 먼저 왔나허고. 족보 보먼 알거든. 그랬더니 그 족보도 없어. 그래서 결국은 그 조씨, 저 창령 조씬디 그 조씨네들은 몰르겠어. 그 다음에 다른 뭐 기우제라든가 이런 것은 없었고, 저 함라산 밑에 산제당이라고 허는 게 있었어, 우리가 어렸을 때 이렇게 보먼. 산에 제사를 지낸다고 그래서 산제당이여. 그먼 일 년에 정월보름날인가를 날짜를 해서 늘 산신제를 지내드라고. 깨끗이 목욕허고 어찌고 그리가지고. 산신이 돌보야 산다고 해가지고 그때 당시에는 그런 관념이, 사람들이 인자 덜 깨쳐서 인자 그런 식으로 생각허고 그냥. 우리 송천은 산신, 여그 저 함라산 산신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산다고. 그러고 그 양반이 복 주고 거시기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했던 거여, 그전에. 그래서 산제당에 일 년에 한 번씩 그 제사를 지내고 그랬어. 그러고 기우제나 뭐 그런 것 같은 것은 하도 가물고 어찌고 그러먼은 산신제를 거그다가 말허자먼은 정성들이고. 인자 그런 식으로 그렇게 헌 거여.
B : 진소마을은 왜 진소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 : 진소는 에…, 참빗 진 잔가 될 거여. 긍게 쉽게 얘기허자먼 그 마을은, 진소마을은 어떻게 생겼는고니 이렇게 지금 동쪽에서 서쪽으로 요렇게 질게(길게) 말허자먼 그 등셍이가 있었는데 등셍이 저짝으도 동네가 몇 호 살고 이짝으로도 몇 호 있어. 긍게 그래서 진소. 참빗이라고 있잖아, 머리 빗는 참빗. 긍게 거그가, 그게 소 자가 참빗 소 잔가 참빗 진이 진짠가를 내가 그걸 잘 몰르겄네. 긍게 참빗이라고 허는 그 뜻이여. 긍게 진소가 그려. 그래서 옛날 으른들이 참빗은 이렇게 머리를 허먼(빗으면) 늘 때가 그 우에가 찌잖어. 이렇게 그먼 여그가 가운데가 거시기(참빗 중앙의 넓적한 대쪽)가 있고 양쪽에는 빗이여. 그먼 이놈 잡고 이렇게 혔싸먼 이 가운데로 때가 이렇게 밀리는 거여. 그래서 옛날부터 그 진소는 그 등셍이에 사는 사람이 잘 산다고 이렇게 얘기를 했어. 그 등 젤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산다는 얘기여. 근디 아닌 게 아니라 그 동네 보먼은 그 우에 사람들이 죄다 잘 살았었어.
B : 진소마을이 참빗을 닮았습니까?
A : 그런 게 마을이 참빗, 쉽게 얘기허자먼은 등셍이가 이렇게 졌어. 야차막한 저런 우리 저 앞에 산 같이. 요렇게 생겼는디 이짝으서도 집이 있고, 이짝은 말허자먼 남쪽이고 저짝은 북쪽이여. 긍게 말허자먼은 동네가 그려서 그 진소라고, 그려서 그렇게 지었는 게벼.
B : 형태가 그래서―.
A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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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진소처럼 송천도 지형이 뭘 닮았습니까?
A : 송천은 다른 것은 없었고, 유명한 시암이 하나 있었지. 샘이 지금은 없어졌는데. 긍게 지금 그 샘터가 어딘고니 저그 저 블루베리 하얀 천막 쳐 논 디 거기 있잖여. 거그가 샘터여, 옛날에. 송천샘이라고 허먼 유명했어. 긍게 기미년 흉년에도 이 송천 앞에 그 시암물을 닿는 농사는 다 잘 먹었다 그 말이여. 그런 정도로 그 샘물이 사시상철, 겨울에는 따숩고. 겨울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빨래를 지금과 같이 개인이 뭐 세탁기다 허는 게 아니고 그 샘 빨래터가 있었어, 이 동네. 그러먼 시암인데 무신 뭐 막 땅속에 막 노깡 몇 개 묻어서 그 시암이 아니고 바가지시암이단 말여, 바가지시암. 근디 거기도 노깡 하나만 이렇게 혀가지고 바가지시암이고 저 밑으로는 그 막 빨래터, 넙찍허게. 근데 겨울에는 손 하나 시렵지도 않여. 겨울에 그냥 거그서 빨래를 해도. 그러고 아무리 추워도 얼지를 않고. 물이 따수니까. 지하수인 게. 그랬었어. 그런 샘이, 유명한 샘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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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골짜기를 부르는 지명 같은 건 없습니까?
A : 골은 태봉골이라고, 여그 저그 저 거시기 있잖여, 태봉산 뭐 검정콩국순가 뭔가 허는 그 집 있잖여. 거그 보먼 간판이 태봉골가든이라고 혔든가 뭐라고 식당이라고 혔나. 그렇게 되는 것 같드만. 그게 인자 태목골이라고 그랬는데, 태목골인디 거그가 그 지금 식당에 뒷산이 뾰쪽헌 산이 하나 있어. 그것이 태봉산이여. 클 태 자, 봉우리 봉 자. 그리서 태봉산이거든,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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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지금 웅포 소재지에 가면은 덕양정이라고 거그가 바로 그 저 금강 그 우에. 인자 덕양정에 있는 간판은 사실은 그게…, 거그가 쪼그만헌 팔각정으로 이렇게 지었어. 그 저 금강변에. 팔각정에 붙인 간판이 덕양정이여, 그게. 덕양정이라고 허는 것은 인자 큰 덕 자, 사양 양 자, 정자 정 자 이렇게 쓰는디 그게 사실은 그게 그 간판이 그 간판이 아니었다 그거여.
B : 그게 무슨 말입니까?
A : 그 간판은 내가 어렸을 때, 핵교 댕길 때 지금 웅포 보건소 있지? 보건소 자리에 쉽게 얘기허자먼 덕양정이 있었어. 덕양정은 그게 뭐냐먼은 거그가 활 쏘는 디여. 활 쏘는 그 정을 덕양정이라고 헌 거여. 근디 지금 덕양정이라고 허는 간판을 거그다 붙여놨거든. 그것은 본래의 그 거시기가 아니여. 말허자먼 그냥 붙일 것이 없어서 거그다 붙였나 어쨌나.
B : 원래는 활 쏘는 데에 붙어있던 간판이 지금은 엉뚱한 곳에 붙어있다―.
A : 응, 그렇지. 그게 덕양정이라고 허는 그 간판이 애초에 활 쏘는 그 거시기였었어. 그러고 그 덕양정이라고 허는 그 글씨도 그 여그 웅포에 명필이 하나 있었어. 그 양반이 서호정인가…. 내가 인자 거시기는 몰르는디, 여그 저 구렁목이라고 허는 동네, 입점리 구렁목에 서정호라고 있어, 서정호. 서정호 할아버지여. 서정호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명필이었어. 그 양반이 쓴 글씨여, 덕양정도.
B : 그분이 명필로 유명한 분이셨습니까?
A : 그런데 그 양반이 시골에 있었고 벼슬도 못허고. 그래서 이름이 나지를 못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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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여그가 광산 김씨 집성촌이라고 혔는데 효자문이 세 개를 받었어. 광산 김씨가. 긍게 여그 부락에 둘 있고 진소부락에 하나 있고.
B : 어떻게 해서 효자문을 받았다고 합니까?
A : 여그 송천리 효자는 칠, 팔 년 동안을 자기 부모님을 방에서 모셨는디, 내외간이, 그 며느리도 쉽게 얘기허자먼 그렇게 아들과 같이 효를 했고. 그러고 그렇게 해서 돌아가셨을 때 손가락을 잘라서 일분이라도 더 연명을 허시라고 입에다 넣어드리고. 그렇게 해서 효행문 거시기를 받었어. 그러고 그 양반 아들도 효자를 혔어. 그래갔고 드물어. 이세효행문이여, 여그가.
B : 진소 효자는 어떻게 효자문을 받았다고 합니까?
A : 진소에 그 효행문은 살아계셨을 때에도 효를 했는데 돌아가신 후로도 그 묘 앞에다가 움막을 치고 삼 년 동안을 거기에서 기거를 했어. 삭망이라고 아침에 밥 혀서 올리고. 거기에서 그 움막자리가 지금도 있어, 거그 가먼,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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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머그메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응, 머그메 있어. 머그메가 그게 거시기여. 머그메라고 허는 디가 그게 골프장이 다 되얐어. 그게 고라당인디. 거그가 긴 고라당이 있었어. 그게 바로 금강허고 이렇게 연결됐는디. 거그가 지금 다 인자 뭐 골프장 돼버렸어. 다 메꿔가지고.
B : 머그메는 왜 머그메입니까?
A : 긍게 거그를 머그메라고 허는 것을 한문으로 묵지동이라고 그러거든? 그 먹 묵 자. 묵지동이라고 허먼 못 지 자여. 거그가 묵지동이여. 머그메를 한문으로 쓰먼 묵지동이라고 그려. 긍게 거그가 검은 못이 있어서 그랬나? 긍게 거그가 묵지동이여.
B : 머그메가 함라산에 있습니까?
A : 함라산 밑이여.
B : 실제로 연못은 못 보시고요?
A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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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제너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제너머는 여그 우리 집의 이 뒤에 산이여. 산 바로 너머가 제너머여. 그래서 이 동네에서 거그를 제너머라고 그랬어. 이 제가 있응게. 이 제너머에 집이 한 가구가 있었어. 지금도 살지만 그때도 한 집이여. 근디 그것은 인자 산막집이여, 이게. 산 쳐다보고, 묘 깎어주고 허는 우리 광산 김씨 인자 산막집인데, 집이 있으니까 거그를 지칭을 헐 때 그냥 제너머라고 헌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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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숭림사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숭림사는 오래된 절이고. 숭림사는 고려 때 맨들어진 절이라 오래됐고, 그 다음에 성불사라고 허는 절이 있었어. 긍게 말허자먼은 부처님을 이룬다. 그게 저 도를 닦는 사람들이 저 성불이라고 허드만, 거시기 저 승려 생활을 허먼서. 근디 성불사라는 절이 지금은 인자 거시기도 없지. 그게 어디가 있었는고니 화산이라고 허는 산이 있어.
B : 어디 면에 있는 산입니까?
A : 그것도 웅포면이여. 그러먼 저그 저 숭림산정 있잖아? 여그 숭림산정에서 보먼 바로 거그는 인자 저 숭림사고, 숭림사 이 좌측으로 이렇게 뵈는 큰 덩치 산이 있어. 근디 거그가 성불사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고니 금강을 향해서 거그가 있었어. 나도 거그 절터를 한 번 갔었어, 어렸을 때. 근데 그때도 성불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게 성불사 절터라고 허드라고. 긍게 아닌 게 아니라 절터드라고. 거그 흔적이 있었어. 그 성불사라고 허는 절이 있었다고 허는 것은 확실혀.
B : 망한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셨습니까?
A : 아니 그런 것은 난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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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웅포를 옛날에는 곰개라고 불렀는데, 왜 곰개라고 불렀는지 들어보셨습니까?
A : 곰개는 곰 웅 자, 개 포 자여. 그래서 곰개여. 말허자먼 곰 웅 자를 곰, 제일 첫 번에 곰, 개 포 자를 개, 그래서 곰개. 한자의 첫 자를 따서 곰개.
B : 그 마을이 곰하고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A : 거그 지금 덕양정 붙인 거그가 무신 뭐 곰바위라고 허든가? 뭐라고 거시기 허는 그런 얘기를 한 번 내가 들은 것도 같어.
B : 곰개에 곰바위가 있다고 합니까?
A : 응. 그전에 거그가 저 금강환하고 행운환이 댕길 때 거그가 그 말허자먼 나루터여. 거그가 바위가 이렇게 있으야 배가 접헐 수 있잖여. 그런 게 접허야 배허고 그 거시기를 발판을 놓아야 거시기가 되잖여. 그래서 그런 바위 같은 거, 돌출부에다 잇는 그게 배턱이 되는 거여. 그러고 또 이 곰개웅포가 옛날에는 그 서해바다에서 잡는 고깃배들 있잖아. 지금은 전부 기계화 돼가지고 그러지만은 그때는 한 10톤이나 15톤 되는 그 목선이여 말허자먼. 사람이 한 칠, 팔 명 타가지고 거그 가서 그 막 바다에 가가지고 그물 쳐서 이렇게 잡어. 그때는 인자 쉽게 얘기허자먼 사리 때 잡어가지고 조금에 와. 조금에 말허자먼 팔러 나오는 거여, 육지로. 육지로 나오는데 인자 여그는 군산을 거쳐서 오잖여. 인자 군산보다는 여까지 오먼 더 쪼꼼 한 푼이라도 더 받는다 해서 인자 이렇게, 이 곰개 그 웅포가 배가 지금 내가 생각혀보먼은 한 70년대 중반까지 배가 많이 들어왔어.
B : 그럼 웅포에 객주집도 많았겠네요.
A : 그렇지. 그때만허드래도 객주라고 있어. 그 배가 객주를 찾어가는 거여. 그러먼 객주는 장사꾼들을 몰아놔. 그러먼 인자 배가 딱 들어오먼 거그서 흥정시켜서 팔어주고 허는 거야.
B : 지금의 공판장과 비슷하네요.
A : 그렇지. 그렇게 해가지고 그 인자 옛날이나 지금은 뭐 쪼꼼 다르겠지만, 옛날에는 배 가진 사람들이 객주들이 돈을 주야혀. 보름동안 나가서 먹을 것 다 챙겨주고 뭐 술 같은 거 다 챙겨주고. 이렇게 해서 그 거시기도 상당히 들어가는 거여. 그먼 인자 그렇게 되먼 그 사람들이 인자 와서 고기를 인자 주고. 그런 식으로 객주들이 그렇게 했어.
B : 부자로 유명했던 객주가 있습니까?
A : 객주는 유양숙이라고, 돈 많이 벌은 유양숙씨라고 있어. 근디 유양숙씨는 죽고 그 아들도 죽고 인자 손자들이 살어. 근디 내가 어렸을 때 유양숙씨가 다 살었었어. 근디 유양숙이 허먼은 돈할아버지여. 이 근방에 충청도 일대에 그냥 그 양반 거시기 안 깔린 돈이 없었어. 그렇게 돈이 많았어. 그것이 객주에서 버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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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용과 관련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저그 저 함라산 용시암이라고 허는 시암이 있었어. 그게 그 머그메라고 허는 그 골목 젤 우에. 젤 위에 함라산 바로 밑에 거그가 용시암이여. 근디 그 용시암 터가 지금도 있어.
B : 어르신께선 용시암에 대해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A : 거그서 용이 올라갔다고 그래서 그 용시암이라고 그렇게 허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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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신촌은 거그를 다리목이라고 그맀어. 다리목은 지금 농협 있는 디가 그게 신촌이거든? 근데 그 동네에서 저 고창으로 가는 버스 댕기는 거기에, 그 농협에서나 한 칠, 팔백 매타 가먼 송천서 내려가는 개울이, 금강으로 내려가는 개울이 거 다리가 있어. 그먼 그게 지금이야 다 콘크리로 했지만, 그때는 나무로 다리를 놨어. 긍게 그걸 거그가 다리가 있응게 다리목이라고 헌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