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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웅포면

송천마을

구술일: 2013년 7월 12일
구술자: 김상중(1930년생)·남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마을유래담 :
- 송천마을 : 병자호란 당시 난리를 피해 내려온 광산 김씨가 마을 터를 잡았다.
- 진소마을 : 송천마을과 마찬가지로 광산 김씨 집성촌. ‘진소’란 ‘참빗’의 한자식 표현. 마을에 참빗을 닮은 산등성이가 있어 ‘진소’라 이름 붙인 것은 아닌지 추측.
- 송천샘 : 근동에서 아주 유명한 샘이었다고 함. 겨울에도 물이 따뜻했으며, 기미년 흉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함.
- 태봉산 : 현재 태봉골가든 뒷산.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음.
- 머그메 : 현재 골프장 자리를 ‘머그메’라고 부름. 먹 묵 자에 못 지 자를 써서 ‘묵지동’이라고도 함. 실제로 그곳에 연못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음.
- 제너머 : 마을 뒷산 너머에 산막이 한 채 있으므로 그곳을 ‘제너머’라 함.
- 성불사 : ‘숭림사’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산에 절이 있었다고 함. 지금은 터만 남아있음.
- 곰바위 : 웅포 나루터에 있었다는 바위.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고, 한창 배가 다닐 당시 배턱으로서 사용했다고 함.
- 다리목 : 신촌마을을 옛날에는 ‘다리목’이라 부름. 마을 옆에 다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진소마을의 명당 : 진소마을에 동에서 서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가 하나 있는데, 옛날부터 그 산등성이 위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살았다고 함. 이는 그 지형이 ‘참빗’을 닮은 것과 관련이 있는데, 참빗을 쓰다보면 빗살에 낀 때가 중앙의 대쪽에 쌓이므로 그러한 이유에서 산등성이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살았던 것이라고 함. (참빗의 대쪽이 산등성이에 해당.)
- 웅포 덕양정 : 웅포 팔각정 위에 붙어있는 ‘덕양정’이란 간판이 사실은 다른 곳에 붙어있던 간판이라고 함. 지금 웅포보건소 자리에 활을 쏘던 정자가 있었는데 본래 ‘덕양정’이란 간판은 그곳에 붙어있던 간판이었음. 간판의 글씨를 ‘서호정’이란 분께서 쓰셨는데, 크게 이름 있는 분은 아니셨어도 근동에서는 명필로 소문난 분이셨다고 함.
- 효자문 : 광산 김씨가 받은 효자문이 세 개가 있는데, 그중 두 개가 송천마을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진소마을에 있다고 함.
- 어부와 객주 : 70년대 중반까지 웅포로 고깃배가 많이 들어왔는데, 이때 어부가 싣고 온 고기를 객주가 대신 팔아주었다고 함. 어부는 객주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고, 객주는 어부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팔아 이윤을 남김. ‘유양숙’이라는 분이 특히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함.
- 용샘 : 함라산 밑에 있는 샘으로 용이 그 샘에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음.


3) 민속 :
- 산신제 : 정월보름 마을사람들이 함라산 산제당에 가서 제사를 지냄. 산신에게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복을 빌었음.

문헌 내용

송천(松川)․머그메․숭림사․웃골․아랫골․개울건너․재너머 : 송천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냇가에 소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 : 김상중(82)-1930년

B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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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마을 내력과 전설, 민담, 민속에 대해 아시는 대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 여기가 광산 김씨 집성촌인디 그때 당시(병자호란, 1636년)에 그 우리 인자 심씨 할머니가, 그 할아버지는 그 병자호란에 돌아가시고 인자 홀랑 어머니 한 분 남았었는디 한 댓 살 먹은 어린아이가 오 자, 복 자 그 할아버지라고 그 할아버지를 인자 업고 결국은 피난 온 것이 이 골짝으로 온 거여, 그 양반이, 우리 할머니가. 근디 그 양반은 병자호란 땐 게 인자 거시기는 찾어보먼 몇 년돈가 나올 거 아녀. 그때 당시에 오신 양반이여. 그러니까 지금 나허고는 11대조 할머니고 오 자, 복 자 그 할아버지는 10대조 할아버지니까. 10대조 할아버지가 진소라고 허는 디도 인자 송천리 가운데 하난데, 송천리의 진소마을인데 진소, 송천이 광산 김씨 집성촌이여. 그 양반 손들이여. 그래서 이 마을이 제일 첫 번에…, 그 양반이 이렇게 제일 첫 번에 오신 것 같어. 다른 성들은 여그 저 조씨라고 있었는데 내가 그리서 조씨 그 저 족보를 가져와 봐라, 느 할아버지가 먼저 왔나, 우리 할아버지가 먼저 왔나허고. 족보 보먼 알거든. 그랬더니 그 족보도 없어. 그래서 결국은 그 조씨, 저 창령 조씬디 그 조씨네들은 몰르겠어. 그 다음에 다른 뭐 기우제라든가 이런 것은 없었고, 저 함라산 밑에 산제당이라고 허는 게 있었어, 우리가 어렸을 때 이렇게 보먼. 산에 제사를 지낸다고 그래서 산제당이여. 그먼 일 년에 정월보름날인가를 날짜를 해서 늘 산신제를 지내드라고. 깨끗이 목욕허고 어찌고 그리가지고. 산신이 돌보야 산다고 해가지고 그때 당시에는 그런 관념이, 사람들이 인자 덜 깨쳐서 인자 그런 식으로 생각허고 그냥. 우리 송천은 산신, 여그 저 함라산 산신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산다고. 그러고 그 양반이 복 주고 거시기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했던 거여, 그전에. 그래서 산제당에 일 년에 한 번씩 그 제사를 지내고 그랬어. 그러고 기우제나 뭐 그런 것 같은 것은 하도 가물고 어찌고 그러먼은 산신제를 거그다가 말허자먼은 정성들이고. 인자 그런 식으로 그렇게 헌 거여.

B : 진소마을은 왜 진소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 : 진소는 에…, 참빗 진 잔가 될 거여. 긍게 쉽게 얘기허자먼 그 마을은, 진소마을은 어떻게 생겼는고니 이렇게 지금 동쪽에서 서쪽으로 요렇게 질게(길게) 말허자먼 그 등셍이가 있었는데 등셍이 저짝으도 동네가 몇 호 살고 이짝으로도 몇 호 있어. 긍게 그래서 진소. 참빗이라고 있잖아, 머리 빗는 참빗. 긍게 거그가, 그게 소 자가 참빗 소 잔가 참빗 진이 진짠가를 내가 그걸 잘 몰르겄네. 긍게 참빗이라고 허는 그 뜻이여. 긍게 진소가 그려. 그래서 옛날 으른들이 참빗은 이렇게 머리를 허먼(빗으면) 늘 때가 그 우에가 찌잖어. 이렇게 그먼 여그가 가운데가 거시기(참빗 중앙의 넓적한 대쪽)가 있고 양쪽에는 빗이여. 그먼 이놈 잡고 이렇게 혔싸먼 이 가운데로 때가 이렇게 밀리는 거여. 그래서 옛날부터 그 진소는 그 등셍이에 사는 사람이 잘 산다고 이렇게 얘기를 했어. 그 등 젤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산다는 얘기여. 근디 아닌 게 아니라 그 동네 보먼은 그 우에 사람들이 죄다 잘 살았었어.

B : 진소마을이 참빗을 닮았습니까?

A : 그런 게 마을이 참빗, 쉽게 얘기허자먼은 등셍이가 이렇게 졌어. 야차막한 저런 우리 저 앞에 산 같이. 요렇게 생겼는디 이짝으서도 집이 있고, 이짝은 말허자먼 남쪽이고 저짝은 북쪽이여. 긍게 말허자먼은 동네가 그려서 그 진소라고, 그려서 그렇게 지었는 게벼.

B : 형태가 그래서―.

A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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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진소처럼 송천도 지형이 뭘 닮았습니까?

A : 송천은 다른 것은 없었고, 유명한 시암이 하나 있었지. 샘이 지금은 없어졌는데. 긍게 지금 그 샘터가 어딘고니 저그 저 블루베리 하얀 천막 쳐 논 디 거기 있잖여. 거그가 샘터여, 옛날에. 송천샘이라고 허먼 유명했어. 긍게 기미년 흉년에도 이 송천 앞에 그 시암물을 닿는 농사는 다 잘 먹었다 그 말이여. 그런 정도로 그 샘물이 사시상철, 겨울에는 따숩고. 겨울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빨래를 지금과 같이 개인이 뭐 세탁기다 허는 게 아니고 그 샘 빨래터가 있었어, 이 동네. 그러먼 시암인데 무신 뭐 막 땅속에 막 노깡 몇 개 묻어서 그 시암이 아니고 바가지시암이단 말여, 바가지시암. 근디 거기도 노깡 하나만 이렇게 혀가지고 바가지시암이고 저 밑으로는 그 막 빨래터, 넙찍허게. 근데 겨울에는 손 하나 시렵지도 않여. 겨울에 그냥 거그서 빨래를 해도. 그러고 아무리 추워도 얼지를 않고. 물이 따수니까. 지하수인 게. 그랬었어. 그런 샘이, 유명한 샘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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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골짜기를 부르는 지명 같은 건 없습니까?

A : 골은 태봉골이라고, 여그 저그 저 거시기 있잖여, 태봉산 뭐 검정콩국순가 뭔가 허는 그 집 있잖여. 거그 보먼 간판이 태봉골가든이라고 혔든가 뭐라고 식당이라고 혔나. 그렇게 되는 것 같드만. 그게 인자 태목골이라고 그랬는데, 태목골인디 거그가 그 지금 식당에 뒷산이 뾰쪽헌 산이 하나 있어. 그것이 태봉산이여. 클 태 자, 봉우리 봉 자. 그리서 태봉산이거든,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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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지금 웅포 소재지에 가면은 덕양정이라고 거그가 바로 그 저 금강 그 우에. 인자 덕양정에 있는 간판은 사실은 그게…, 거그가 쪼그만헌 팔각정으로 이렇게 지었어. 그 저 금강변에. 팔각정에 붙인 간판이 덕양정이여, 그게. 덕양정이라고 허는 것은 인자 큰 덕 자, 사양 양 자, 정자 정 자 이렇게 쓰는디 그게 사실은 그게 그 간판이 그 간판이 아니었다 그거여.

B : 그게 무슨 말입니까?

A : 그 간판은 내가 어렸을 때, 핵교 댕길 때 지금 웅포 보건소 있지? 보건소 자리에 쉽게 얘기허자먼 덕양정이 있었어. 덕양정은 그게 뭐냐먼은 거그가 활 쏘는 디여. 활 쏘는 그 정을 덕양정이라고 헌 거여. 근디 지금 덕양정이라고 허는 간판을 거그다 붙여놨거든. 그것은 본래의 그 거시기가 아니여. 말허자먼 그냥 붙일 것이 없어서 거그다 붙였나 어쨌나.

B : 원래는 활 쏘는 데에 붙어있던 간판이 지금은 엉뚱한 곳에 붙어있다―.

A : 응, 그렇지. 그게 덕양정이라고 허는 그 간판이 애초에 활 쏘는 그 거시기였었어. 그러고 그 덕양정이라고 허는 그 글씨도 그 여그 웅포에 명필이 하나 있었어. 그 양반이 서호정인가…. 내가 인자 거시기는 몰르는디, 여그 저 구렁목이라고 허는 동네, 입점리 구렁목에 서정호라고 있어, 서정호. 서정호 할아버지여. 서정호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명필이었어. 그 양반이 쓴 글씨여, 덕양정도.

B : 그분이 명필로 유명한 분이셨습니까?

A : 그런데 그 양반이 시골에 있었고 벼슬도 못허고. 그래서 이름이 나지를 못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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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여그가 광산 김씨 집성촌이라고 혔는데 효자문이 세 개를 받었어. 광산 김씨가. 긍게 여그 부락에 둘 있고 진소부락에 하나 있고.

B : 어떻게 해서 효자문을 받았다고 합니까?

A : 여그 송천리 효자는 칠, 팔 년 동안을 자기 부모님을 방에서 모셨는디, 내외간이, 그 며느리도 쉽게 얘기허자먼 그렇게 아들과 같이 효를 했고. 그러고 그렇게 해서 돌아가셨을 때 손가락을 잘라서 일분이라도 더 연명을 허시라고 입에다 넣어드리고. 그렇게 해서 효행문 거시기를 받었어. 그러고 그 양반 아들도 효자를 혔어. 그래갔고 드물어. 이세효행문이여, 여그가.

B : 진소 효자는 어떻게 효자문을 받았다고 합니까?

A : 진소에 그 효행문은 살아계셨을 때에도 효를 했는데 돌아가신 후로도 그 묘 앞에다가 움막을 치고 삼 년 동안을 거기에서 기거를 했어. 삭망이라고 아침에 밥 혀서 올리고. 거기에서 그 움막자리가 지금도 있어, 거그 가먼,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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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머그메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응, 머그메 있어. 머그메가 그게 거시기여. 머그메라고 허는 디가 그게 골프장이 다 되얐어. 그게 고라당인디. 거그가 긴 고라당이 있었어. 그게 바로 금강허고 이렇게 연결됐는디. 거그가 지금 다 인자 뭐 골프장 돼버렸어. 다 메꿔가지고.

B : 머그메는 왜 머그메입니까?

A : 긍게 거그를 머그메라고 허는 것을 한문으로 묵지동이라고 그러거든? 그 먹 묵 자. 묵지동이라고 허먼 못 지 자여. 거그가 묵지동이여. 머그메를 한문으로 쓰먼 묵지동이라고 그려. 긍게 거그가 검은 못이 있어서 그랬나? 긍게 거그가 묵지동이여.

B : 머그메가 함라산에 있습니까?

A : 함라산 밑이여.

B : 실제로 연못은 못 보시고요?

A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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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제너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제너머는 여그 우리 집의 이 뒤에 산이여. 산 바로 너머가 제너머여. 그래서 이 동네에서 거그를 제너머라고 그랬어. 이 제가 있응게. 이 제너머에 집이 한 가구가 있었어. 지금도 살지만 그때도 한 집이여. 근디 그것은 인자 산막집이여, 이게. 산 쳐다보고, 묘 깎어주고 허는 우리 광산 김씨 인자 산막집인데, 집이 있으니까 거그를 지칭을 헐 때 그냥 제너머라고 헌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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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숭림사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숭림사는 오래된 절이고. 숭림사는 고려 때 맨들어진 절이라 오래됐고, 그 다음에 성불사라고 허는 절이 있었어. 긍게 말허자먼은 부처님을 이룬다. 그게 저 도를 닦는 사람들이 저 성불이라고 허드만, 거시기 저 승려 생활을 허먼서. 근디 성불사라는 절이 지금은 인자 거시기도 없지. 그게 어디가 있었는고니 화산이라고 허는 산이 있어.

B : 어디 면에 있는 산입니까?

A : 그것도 웅포면이여. 그러먼 저그 저 숭림산정 있잖아? 여그 숭림산정에서 보먼 바로 거그는 인자 저 숭림사고, 숭림사 이 좌측으로 이렇게 뵈는 큰 덩치 산이 있어. 근디 거그가 성불사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고니 금강을 향해서 거그가 있었어. 나도 거그 절터를 한 번 갔었어, 어렸을 때. 근데 그때도 성불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게 성불사 절터라고 허드라고. 긍게 아닌 게 아니라 절터드라고. 거그 흔적이 있었어. 그 성불사라고 허는 절이 있었다고 허는 것은 확실혀.

B : 망한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셨습니까?

A : 아니 그런 것은 난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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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웅포를 옛날에는 곰개라고 불렀는데, 왜 곰개라고 불렀는지 들어보셨습니까?

A : 곰개는 곰 웅 자, 개 포 자여. 그래서 곰개여. 말허자먼 곰 웅 자를 곰, 제일 첫 번에 곰, 개 포 자를 개, 그래서 곰개. 한자의 첫 자를 따서 곰개.

B : 그 마을이 곰하고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A : 거그 지금 덕양정 붙인 거그가 무신 뭐 곰바위라고 허든가? 뭐라고 거시기 허는 그런 얘기를 한 번 내가 들은 것도 같어.

B : 곰개에 곰바위가 있다고 합니까?

A : 응. 그전에 거그가 저 금강환하고 행운환이 댕길 때 거그가 그 말허자먼 나루터여. 거그가 바위가 이렇게 있으야 배가 접헐 수 있잖여. 그런 게 접허야 배허고 그 거시기를 발판을 놓아야 거시기가 되잖여. 그래서 그런 바위 같은 거, 돌출부에다 잇는 그게 배턱이 되는 거여. 그러고 또 이 곰개웅포가 옛날에는 그 서해바다에서 잡는 고깃배들 있잖아. 지금은 전부 기계화 돼가지고 그러지만은 그때는 한 10톤이나 15톤 되는 그 목선이여 말허자먼. 사람이 한 칠, 팔 명 타가지고 거그 가서 그 막 바다에 가가지고 그물 쳐서 이렇게 잡어. 그때는 인자 쉽게 얘기허자먼 사리 때 잡어가지고 조금에 와. 조금에 말허자먼 팔러 나오는 거여, 육지로. 육지로 나오는데 인자 여그는 군산을 거쳐서 오잖여. 인자 군산보다는 여까지 오먼 더 쪼꼼 한 푼이라도 더 받는다 해서 인자 이렇게, 이 곰개 그 웅포가 배가 지금 내가 생각혀보먼은 한 70년대 중반까지 배가 많이 들어왔어.

B : 그럼 웅포에 객주집도 많았겠네요.

A : 그렇지. 그때만허드래도 객주라고 있어. 그 배가 객주를 찾어가는 거여. 그러먼 객주는 장사꾼들을 몰아놔. 그러먼 인자 배가 딱 들어오먼 거그서 흥정시켜서 팔어주고 허는 거야.

B : 지금의 공판장과 비슷하네요.

A : 그렇지. 그렇게 해가지고 그 인자 옛날이나 지금은 뭐 쪼꼼 다르겠지만, 옛날에는 배 가진 사람들이 객주들이 돈을 주야혀. 보름동안 나가서 먹을 것 다 챙겨주고 뭐 술 같은 거 다 챙겨주고. 이렇게 해서 그 거시기도 상당히 들어가는 거여. 그먼 인자 그렇게 되먼 그 사람들이 인자 와서 고기를 인자 주고. 그런 식으로 객주들이 그렇게 했어.

B : 부자로 유명했던 객주가 있습니까?

A : 객주는 유양숙이라고, 돈 많이 벌은 유양숙씨라고 있어. 근디 유양숙씨는 죽고 그 아들도 죽고 인자 손자들이 살어. 근디 내가 어렸을 때 유양숙씨가 다 살었었어. 근디 유양숙이 허먼은 돈할아버지여. 이 근방에 충청도 일대에 그냥 그 양반 거시기 안 깔린 돈이 없었어. 그렇게 돈이 많았어. 그것이 객주에서 버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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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용과 관련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저그 저 함라산 용시암이라고 허는 시암이 있었어. 그게 그 머그메라고 허는 그 골목 젤 우에. 젤 위에 함라산 바로 밑에 거그가 용시암이여. 근디 그 용시암 터가 지금도 있어.

B : 어르신께선 용시암에 대해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A : 거그서 용이 올라갔다고 그래서 그 용시암이라고 그렇게 허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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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신촌은 거그를 다리목이라고 그맀어. 다리목은 지금 농협 있는 디가 그게 신촌이거든? 근데 그 동네에서 저 고창으로 가는 버스 댕기는 거기에, 그 농협에서나 한 칠, 팔백 매타 가먼 송천서 내려가는 개울이, 금강으로 내려가는 개울이 거 다리가 있어. 그먼 그게 지금이야 다 콘크리로 했지만, 그때는 나무로 다리를 놨어. 긍게 그걸 거그가 다리가 있응게 다리목이라고 헌 거여.

비고

면담장소 : 웅포 송천마을 김상중 자택
면담시간 : 2013년 7월 12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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