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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웅포면

원대암마을

구술일: 2013년 7월 5일
구술자: 조남철(1931년생)·남, 주민1, 주민2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마을유래담 :
- 원대암마을 : 천년 붕새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
- 말무덤 : 말이 죽었을 때 묻던 무덤이 있다고 함.
- 칠성산 : 일곱 개의 봉우리 때문이 붙여진 이름.

2) 전설 및 민담 :
- 덕송 : ‘웅포 팔경’ 중 하나였다고 함.
- 명당자리 : ‘상제 2마을’에 명당자리가 있었다고 함.
- 도깨비 : 도깨비에 홀린 이야기.
- 물 넘어 고개 : 선견지명으로 지여진 지명.
- 금방앗간 : 채취한 금을 선별하던 곳.

3) 민속 :
- 갈기 : 갈대밭에서 나오던 게. 주로 음식으로 많이 먹었다고 함.
- 갈자리 : 대나무로 만든 돗자리와 비슷하나 갈대로 만듦.
- 기우제 :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 용고당 꼬쟁이 :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
- 힘장사 이씨 : ‘칠산리’ 사람들이 힘이 좋은 이씨를 보고 달아났다고 함.

문헌 내용

원대암(元大岩․大鵬岩)․새터․낡은터․쇠집매․동아시 : 붕암은 뒷산에 새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대붕바우’라 했다.‘쇠집매’는 본시 세 집만 살아 ‘세집매’라 하던 것이 호수(戶數)가 늘어나자 명분을 잃어 변음된 것. 현재는 20여호가 산다.‘동아시’의 ‘아시’는 ‘머리, 방향’의 뜻으로 옛말은 ‘아’다.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 박태식(83)-1931년
A2 : 원대암마을 주민1
A3 : 원대암마을 주민2

B1 : 박태건
B2 : 이동혁
B3 :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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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대붕암리’는 왜 이름이 ‘대붕암’이 되었나요?

A1 : 여그가 행정구역상으로는 ‘대붕암리’인데. 인자 마을 별로 따지자면 제일 처음 생긴 ‘원대붕암’이여 이게. 지금 마을이? 그리고 ‘대붕암’이라고 한 것은 큰 대자 새 붕자 바위 암자여. 그래서 ‘대붕암’인디? 그게 천년 붕새 마을이라고 해서 ‘대붕암’이라고 이렇게 한 거여.

B3 : 천년 붕새 마을이요?

A1 : 새가 천년을 살 수 있는 새다. 그 뜻이여 그 큰-새의 혈이 이 마을에 되어있다 이 말이여. 그래서 천년 붕새 마을로 되어있어. 이 근처에서 제일 먼저 ‘전준이씨’ 몇 대손인가 모르지만 이리 와서 정착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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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럼 어렸을 적에 큰 새에 대한 전설 들으신 것 있으신가요?

A1 : 난 사실 그런 걸 모르고,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 들은 바에 의해서 그런게. 이 마을이 뒤로 한 300미터 정도 가면 ‘금강’이여. 그리고 마을이 전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그 연안이.

B3 : 그 산을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나요?

A1 : 그 산 이름은 따로 없고. 여기 조금 나가면 그전에는 서울로 과거로 보러 갈려면 여그 와서 말을 타고 와서 나룻배가 있었거든? ‘입포리’라고? ‘충남 입포리’라고 거기가 나룻배가 있었어. 그래 가지고 말을 타고 이리 오면 여그서 이- 뭐야 쉽게 이야기해서 갈대 같은 것이 풀이 많이 있을 것 아니여? 그것을 이제 말이 와서 그걸 뜯어 맥이고 사람이 여기서 쉬고 또 건너가고 하는 터전이 있었어. 이제 그게 전부 농지가 되었지.

B3 : 어르신이 보신 적은 없는 건가요?

A1 : 그렇지 인자. 그러고 이 근방에 가면 말이여. 사고가 나서 죽은 말의 무덤도 또 있어. 그걸 ‘말무덤’이라고 하거든? 근디 그걸 우리가 본적이 없으니까 전설로 있지. 인자 여기 마을 들어오면서 조그만 골짜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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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옛날에 주막도 있었나요?

A1 : 그렇지 주막도 있었지. 근데 농지 개발하면서 다 없어졌지.

B3 : 갈대밭이 있으면 ‘갈기’라는 게도 많다고 하던데요?

A1 : 그렇지 이- 뭐야 ‘금강’, ‘군산’ 막지 않았어? 거기 막기 전에는 갈기가 엄-청 많이 나왔었어. 막 푸대로 쓸어 담고 이런 정도 였는디. 거기 둑을 막고서부터 물이 왕래를 않고 그 갈기 알을 말이여. 낳지를 못 하자녀? 물이 없으니까 그래 가지고서나 조수가 간만에 왔다 갔다 해야 거기다 알을 낳고 부화를 하는디. 그것이 없은게 이제 하나도 없어.

B3 : 그 갈기를 잡아서 어떻게 했나요?

A1 : 잡아서 팔기도 하고 젖 담아서 그걸로 김치도 담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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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마을에 오래된 돌이나 나무가 있나요?

A1 : 있지. 여그 가면 바우 밑에가 ‘고란초’가 있어. 그게 바위 옆에서 나는 식물이여. 그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있나 모르겄네.

B3 : 그 바위 이름을 뭐라고 불렀나요?

A1 : 이름? 이름이라는 것은 명명이 안 되어 있고 그냥 여기서 거그 보고, 뭐라고 하지? 다 잃어버렸네.

B3 : 혹시 그 바위 이름이 ‘부엉바위’인가요?

A1 : 거그가 부엉이 많이 살았지. 근데 그렇게는 안 불렀어. 근데 지금도 가끔 부엉이가 울었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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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또 오래된 나무가 있나요?

A1 : 저기 봄에는 여기 ‘덕송’이 막, 여기가 ‘웅포면 팔경’에 들어가는 마을이여.

B3 : 이 마을 전체를 통틀어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A1 : 이제 산 주변을 이렇게 보면, 거기 보면 나무가 쭉-보이고 크-게 면적이 크덜 않지만 그렇게 있어.

B3 : 그 산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A1 : 산 이름은 없고 ‘대붕암 뒷동산’이라고 하면 되겄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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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명당자리가 있다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A1 : 명당? 명당자리는 있다고 하는디. 여그가 아니고 ‘대붕암리’ 중에 ‘상제2 마을’이 있어. 그 말랭이가 그전부터 거그가 명당자리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 있는데 그것을 확실히는 모르지 어디가 어느 곳이 명당인지. 거기가 명당이 있-다 그랬지.

B3 : ‘황금산’이라고 들어보셨나요?

A1 : 그건 모르겄어. 여그는 인자 산이 얕잡고 크-게 뭐 산 이름을 그러던 않았어.

B3 : 마을에서 ‘용왕제’도 지내고 그랬나요?

A1 : 그것은 여기서 인접한 ‘성당포’가 있어. 거기가면 은행나무라고 있거든? 큰- 나무가 두 그루가 있는데. 그 밑에서 그전에 그 뭐야 거그가 포구였었거든? ‘군산’서 ‘강경’까장 뭐야 배로 도수로 이용해서 쭉- 들어가면서 거그가서 기착지가 되기도 하고? 거기 가서 인자 전주(?)가 있어가지고 거기다가 조기 같은 거 팔기도 하고 그랬어. 여기서 얼마 안되. 불과 한 1키로? 그런디가 ‘성당포’가 있거든? 거그가면 ‘용왕제’도 지내고 아니 ‘용왕제’가 아니라 그 뭐야 사고가 안 나겠금 지내고 그랬어.

B3 : 제사 지내는 것 어릴 적에 직접 보셨나요?

A1 : 아니 어렸을 때는 안 보고 몇 해 전에 그 저 시에서 자금을 대주고 거시기가 있어. 그 제를 지내는 곳이 있어. 그때 한번 가서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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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금강’에서 용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A1 : 용? 근데 ‘용골’이라고 하는 데가 있어. 용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르지만 ‘용골’이라는 지명도 있어.

B3 : ‘칠성산’은 어디에 있는 산인가요?

A1 : 음 ‘칠성산’은 저기 우리 동네 뒤에 말랭이 올라가면 ‘칠성산’이 다 보여. 이 맞은 편에서 보여. 그 봉우리가 쪼끔쪼금 일곱 간디가 이렇게 있어서 ‘칠성산’이라고 불러. 높지는 안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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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도깨비 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A1 : 있었지. 그 한 30∼40년 전에도 어떤 아주머니가 오다가 도깨비 들려서 말이여. 밤새도록 헤매다가 날 새고 왔다는 사람이 있어. 근데 옷이 다 막- 젖고 가시덩쿨에 다치고 그랬다고 본인이 그렇게 얘기 하드라고.

B3 : 어떻게 해야 도깨비 돌렸을 때 제정신을 차릴 수 있나요?

A1 : 글쎄 내가 안 돌려봐서 모르겠네 하하하하.

B2 : 도깨비가 빗자루로 변한다고들 하던데요?

A1 : 여그서는 이런 얘기가 더러 있지. 인자 수수 빗지락 있자녀? 수수 빗지락을 인자 그전에는 부엌에가 있으면 여자들이 아궁에서 불을 때자녀? 때다 보면 인자 빗지락에서 깔고 앉는다 이 말이여. 깔고 앉으면 에- 여자들이 하는 그거 있자녀? 그게 인자 거그가 묻자녀? 그러면 거기에서 인이라고 있자녀? 인? 그것이 막 묻어서 그것이 밤에 반짝반짝 탄다고 그런 얘기가 있어. 그래가지고 그것이 도깨비라는 애기가 있어.

A3 : 근게 도깨비가 빗자루 몽댕기 참말로 기드래요. 저- ‘격포’ 사람 하나가 술 먹고 막- 싸움을 하다가 이 핵디 끌러 갔고 쨉매서 던지고 왔는디. 아침에 와서 본게 빗지락 몽댕이 쨉매서 던졌드랴.

A1 : 그런 소리가 있고 하여튼 도깨비 빗지락 몽댕이는 못 찾았지만 하여튼 그 아주머니가 밤새도록 헤매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어.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야. 한- 7∼8년 되나?

B3 : 어느 고개를 넘어 오시다가 그랬다고 말씀하셨죠?

A2 : 저기 진입로 마을 큰길에서 넘어오는 길 있죠?

B3 : 그 고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A1 : 거기가 ‘신풍골’이지.

B3 : ‘신풍골’이 왜 이름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세요?

A1 : 아 인자 그 유래는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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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저기 뒷 동산에 시제 모시는 동산이 있는데. ‘웅포면’ 치면 ‘웅포 팔경’ 중에 일경이 여기 노송나무 있는데 있어요. 소나무가 참- 좋아요.

B2 : ‘웅포 팔경’은 무엇 무엇이 있나요?

A1 : 나 모르겄네 그건. 그것은 이제 면에 가서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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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물 넘어 고개’라고 들어보셨나요?

A1 : 응 ‘물 넘어 고개’있지. ‘물 넘어 고개’는 그 ‘성당포’에서 저그 저- ‘제석리 지적마을’에 연결되는 곳이여. 거기 지금 공사하고 있더만 거기가 ‘물 넘어 고개’여.

B3 : 그 ‘물 넘어 고개’를 왜 그렇게 불렀나요?

A1 : 응? ‘물 넘어 고개’, 그게 지명이 ‘물 넘어 고개’인데. 에- 지금 ‘연동’서 양수를 하고 있자녀? 그 고개를 ‘웅포’로 가게 해서 인자 쉽게 얘기해서 물이왔단 말이야. 밑에 땅을 파서 근데 지명이 딱 맞자녀. 근데 그것이 없었는디. 이름은 딱하니 지었단 말이여. 거그가 ‘물 넘어 고개’다. 그런데 그대로 실행이 되었단 말이여. 근게 쉽게 얘기해서 그 지리적으로 보고 먼- 시간을 본 사람들이 딱 적중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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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금방앗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A1 : ‘금방앗간’은 여기 없었지. 여기 ‘맹산리’ 거기가 ‘금방앗간’이 있었지.

B3 : 왜 ‘금방앗간’이라고 했을까요?

A1 : 아 인제 거기서 금을 채취해가지고 거기서 걸러내고 그랬으니까 ‘금방앗간’이지.

B3 : 진짜 금맥이 있었나요?

A1 : 그때는 있었는가 보지. 그게 일제 때 지었는디. 하다 말은 것이 근디 나는 안 봤어.

B3 : ‘콧등골’은 왜 이름이 ‘콧등골’인가요?

A2 : 거기 ‘덕절’ 그 근처 아닌가요? 여기 넘어가는데.

A1 : 어 그렇지. 그게 ‘상제 1부락’에 있는 데여. 거긴 우리 마을 구역이 아니여.

B2 : 그럼 이 마을 구역에서는 무엇이 있을까요?

A1 : ‘용골’ 있자녀 하하하. 아까 얘기하지 않았어.

A2 : ‘용골’이 아저씨 ‘대룡골’이라고 하지 않아요?

A1 : ‘대룡골’? 어 ‘대룡골’이라고 이짝 산 넘어가는데. ‘용골’ 옆에가 ‘대룡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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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옛날에는 시장을 어디로 많이 가셨나요?

A1 : 옛-날에는 시방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성당포’라고 있자녀? 거기서 고기배가 많이 닿고 거기서 고기를 많이 판출 하고 그럴 때는 그 옆에가 ‘남포장터’라고 했어요. 그래서 현재 지금 ‘익산시’에서 ‘용안 북면’에 마을에 돈을 걷어서 거기다 큰- 집을 짓고 거기다 농촌에서 생산되는 곡물 같은 것을 판촉 활동을 한디야. 그래서 거기에 크-게 집도 짓고 그러고 있어 지금. 그전에 거기서 난장판도 이루어지고 또 지금 와서는 에- 조금 전에는 ‘강경시장’을 많이 댕겼어. 왜 댕겼냐 하며는 여기가 ‘금강’ 연안이기 때문에 갈대가 많았단 말이야. 그 갈대를 많이 채취를 해서 그전에는 이런 장판이 없자녀? 못 살았을 때는 그 갈 딱딱 쪼개 가지고 ‘갈자리’라고 자네들 안 봤지? ‘갈자리’를 이용해서 쉽게 얘기해서 쩔어서 그걸 저- ‘강경시장’을 가면 거기서 상인들이 사가지고서나 각 집을 도매를 했었어. 일본 제국 시대 때는 그것도 마음대로 사고팔고도 못했어. 잘못 팔면 걸렸어. 국가에서 그것을 다 관장을 하기 때문에.

B3 : 그게 그만큼 비싼 물품이었나요?

A1 : 응 그때는 비쌌지.

A2 : 쉽게 이야기해서 돗자리에요.

A1 : 돗자리가 아니여, 갈로 만든 ‘갈자리’여.

A3 : ‘갈자리’ 안 봤어?

A2 : 네.

B1 : ‘갈자리’와 돗자리 중에 뭐가 더 좋나요?

A1 : 아 돗자리는 왕골로 만든 것이 돗자리고 인자 쉽게 얘기해서 서민 치고는 잘 못사는 거여. 그전에는 있는 부자들만 돗자리를 깔기도 그랬는디. 서민 층들은 ‘갈자리’를 타고 살았어. 근디 그 ‘갈자리’도 쉽게 말해서 돈이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갈자리’를 썼어. ‘갈자리’도 좋은 놈이 있고 큰- 놈이 있어. 또 조그마하게 촘촘하게 조그만 한 놈은 말이여 고런 놈은 비싼 것이고.

A2 : 근데 아저씨 저 어렸을 때 엄마가 여기서 배타고 ‘갓개장’도 많이 갔자나요?

A1 : 응 거기를 많이 다녔지. ‘입포리’라고 우리말로 ‘갓개’여.

A2 : ‘충청도’인데 배타고 갔어요.

A1 : 거기 다니고 ‘강경’다니고 근데 요즘은 시내권이고 ‘함열’이나 ‘북부시장’으로 많이 댕기고.

B3 : ‘갈기’도 나오고 ‘갈자리’도 만들고 당시에 갈대밭이 상당히 중요했네요?

A1 : 여그는 쉽게 그전에 없이 살을 때는 ‘갈자리’를 절어서 살았어. 여기가 ‘웅포면’에서는 넓었어, 거시기가 경작지가 넓었어. 근데 물이 공급원이 없었단 말이여. ‘금강’이 바로 옆에 있지만 서도 발달이 안 되어서 달동이 같은 걸로 품어서 연명하고 비가 안 오니까 못 심고 그래서 그랬는디. 그 ‘갈자리’로 해서 생계를 다 했어. 근데 그것이 없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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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러면 기우제 같은 것도 지내고 그랬겠네요?

A1 : 여기 우리 높은 말랭이에서 기우제를 지냈지.

A3 : ‘용고당 꼬쟁이’라고.

A2 : 아 그것도 또 지명이 있다. ‘용고당 꼬쟁이’이라고.

B3 : 이름이 왜 그렇게 되었나요?

A1 : 하여튼 뭔지는 모르지만 ‘용고당 꼬쟁이’라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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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옛날 장군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A1 : 그런 건 못 들어 봤지만 여기 이씨 중에 한 사람이 참- 기운이 장골한 사람이 있었데. 근디 인자 이 마을하고 저기 ‘칠산리’가 있어. ‘칠성산’있는 마을이 ‘칠산리’여. 근디 인자 가차우니까 배로 왔다 갔다가 하다가 서로 인자 마을끼리 트라블이 생겼다 그 말이여. 또 그러고 이리 와서 묘를 썼디야. 요기가 좋으니까 근데 인자 싸움이 붙어서 ‘칠산리’에서 막 사람들이 건너 올 것이 아니여? 근게 여기 사는 그 장수라는 사람이 뫼갱이라고 나락을 찧는 그 있자너.

A2 : 요즘에 해머처럼 떡 방아 찧는 그거 있자나요.

A1 : 거그서 배타고 오는 놈을 말이여. 여그서 막 그 뫼갱이를 착- 던지니까 그 ‘칠산리’ 배에 가서 떨어졌디야.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말이여 여기를 못 왔다는 전설이 있어.

B2 : 그게 언제 적 이야기 인가요?

A1 : 그게 아마 얼마 안 되는 이야기지. 그 사람이 죽은 100년 남짓한 게. 왜정시대 얘기지.

B2 : ‘칠산리’ 사람들이 여기 까지 와서 묘를 쓸 정도면 무슨 명당자리가 있었나 보네요?

A1 : 그때는 지금 마냥으로 산지가 불명치가 않았어. 인자 일본 놈 때, 침략 당할 때 다 가렸지. 그전에는 이건 내 것이여 하면 다 자기 땅이었어. 그러기 때문에 그때는 아무데나 묘를 쓸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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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판포’는 어디 인가요?

A1 : ‘웅포’ 제일 끝에가 ‘판포’여.

A2 : 면소제지.

B1 : ‘판포’가 ‘느레’인가요?

A1 : 어 그렇지. 근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네. ‘웅포리’에 있어-.

B1 : ‘웅포’에서는 어느 고기가 제일 많이 잡혔나요?

A1 : ‘농어’, ‘복쟁이’, ‘메기’, ‘숭어’, ‘뱅어’ 뭐 없는 게 없었지.

B1 : 어떤 요리를 주로 많이 해드셨나요?

A1 : 지금이나 그전이나 똑같지 뭐 탕이나 회 떠먹고 그랬지.

B3 :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비고

면담장소 : 웅포 원대암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7월 5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원대암마을 주민 1, 2는 성명과 생년을 밝히지 않았음

구술 사진

사진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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