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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금마면

도천마을

구술일: 2012년 9월 1일
구술자: 이재형(1937년생)·남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마을유래담 :
- 도천 : 원우록을 보면 소양곡의 친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도내골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또는 비가 많이 올 때마다 냇가가 길이 되어서 도천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도읍의 안에 있으므로 도내골이라고 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근거가 희박하다고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갓점 : 마을에서 500M 떨어진 곳에 갓점이 있는데, 갓점에서 갓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 산소골 : 이름의 유래는 모르나 왜정 때 일본 군대가 훈련했다고 한다.
- 준암바위 : 준암이라는 호를 가진 분이 시를 읊으며 바위 위에서 쉬었다고 해서 준암바위이다.
- 다짐재 : 황각동에서 예산동 넘어가는 곳에 다짐을 받았다고 해서 다짐재다.
- 항복골 : 항복을 했다고 해서 항복골이다.
- 상준논 : 원님이 이 곳에 내려오면서 보니 다른 곳은 다 가물었는데, 이 논에만 물이 많아 물 걱정을 하지 않아서 상준논이라고 했다고 한다.
- 소주탕 : 물이 맑아서 소주탕이다.

3) 전설 및 민담 :
- 인심 : 사람을 볼려면 도내골로 가고, 배가 고프면 동편으로 가라는 말이 전해진다.
- 용화사 :용화사와 소양곡의 다섯째 막내 동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절을 앞 뒤로 뛰어 넘고 했다고 한다.
- 소양곡 : 큰 벼슬을 하던 사람인데 도천에 내려와서 선비를 가르치고 지냈다.
- 소양곡2 : 소양곡이 벼슬을 하다 오는데 자신을 사모하는 여인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을 것을 염려하다 죽었다고 한다.
- 소씨 집성촌 : 진주 소씨가 많이 사는데 여기에 많이 살아 익산 소씨라고도 한다.

4) 민속 :
- 고려장 : 근처에 고려장을 하던 곳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문헌 내용

도천(道川, 도내골)․갓점․감나무골 : 도천은 전에 마을 가운데에 서울 방면으로 통하는 큰 길이 있었고 옆에 내가 있는데 비올 때가 아니면 내 바닥이 길이 되는 일이 많았으므로 ‘길내→道川’이라는 설도 있으나 ‘도내골’이 본 이름이므로 ‘도내’를 ‘道川’으로 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지명에 ‘터’를 ‘더’ 또는 ‘도’라 한 곳이 퍽 많으니 ‘텃내골’의 뜻인 ‘도내골’로 보는 것이 가합할 것이다.

『익산 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 이재형

B1 하정일
B2 장윤준
B3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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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소양곡씨는 어떤 분이십니까?

A : 소양곡. 그분이 서울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훌륭한 일을 허고 정상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그런 훌륭한 길의 대제학 허시고. 근데 여기 어디사는고니 하니 저기 장이고(?)씨 그 사는 다리 건너 그 집에다가 집을 짓고 살았었어. 그 분이 오형젠데 그 소양곡이라고 하는 분은 두째 아들이여. 아주 훌륭해 그서 육십세때에 인자 시골로 내리와서 지방 선비를 가르치고. 이 내 고장을 다스리야것다 해서 내려와가지고 많은 시골 이런데 수장 맡기 전에 지금 이 원우록을 보면 그 종각으로 여덟개를 지었다 그려. 이짝으로 해서 짓고. 지금 남어있는 것이 전부 허물어졌지만 익산 중고등학교 초대 교장으로서의 이 소병구(?)선생님의 그 사택. 그것 허물어졌어. 그리고 사모당이라고 허는 거 그집도 허물이진거여. 지금 흔적이 남아있는 디는 그 집이여 근데 여닯채를 짓고 옜날에는 벼슬을 혀가지고 벼슬을 헐 때는 괜찮지만 삼대가 벼슬을 안하믄 그때는 그게 곧 총매기(?)잤다고 그려. 그런데 경상도나 경기도나 저짝 영남지방으로 가면은 벼슬허던 사람들이 그 지방에 가서 생활을 허는디 벼슬이 인자 떨어져가지고 오면은 알아주지를 않어. 그런디 여그 이 익산에는 소양곡이라고 허는 분이 인제 그래도 인자 나라에 공을 세워주고 나라의 녹을 먹던 분인디 지금 벼슬을 안한다고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해가지고 자기 사비를 털어서 그 양반들은 무척 다스려줬어. 그런 존경을 해준 것이지. 그러니까 딴 디로를 이 그 한양에 있는 양반들이 볘슬이 떨어지면 익산이로 와. 그서 익산에 양반이 많다는 건 이 양반이 양반을 무시 않고 그 낙향을 해서 익산에 오믄은 잘 다스렸어. 그래서 익산에 양반이 많고 진품명품이 많은 것도. 지금 가져온 것도 많인 여긴 없는디 상당히 많이 잠재우고 있어. 그쪽에는 구곡이라고 했는디 전설에 의허먼은 하나도 인자 얘기가 많애서 왜 도냇골이라고 했는지. 제가 어렸을적에 물어보면은 아 어떤 중이 여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데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니까 이거 비 들어가게 내깔이 되어가기에 길도자 내천자 도내꼴이라고 했다고 허드라. 그런 얘기도 있고 비만 오면 뒤뜰막이 내깔이 된다고 해서 도천이라고도 했다고도 허고 또 그 서울 우리 동네 사람이 시곡(?)씨라고 있어. 그 분이 서울 고례 대학 사학 그 교수고 그런 분인디 그분의 책자에 보면은 여가 도읍지라고 불렀어. 도읍진디 도읍의 안에 있다. 해서 도내골이라 그랬는디 확실헌 근거가 희박혀 그러셔 내가 인자 가만-히 생각허니까 누가 그렇게 물어봐도 뚜렷한 증거가 없어. 근디 여기 원우록을 보니까 이 그 소양곡이라고 허는 분이 아주 친헌 사람이 있어. 누가 친하냐. 명나라 사신으로 간 정 명도와 정 이천이라고 허는 형제가 있 형제보단 더 절친한 친구가 있어. 그서 그 친구의 정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이 동네를 명도짜 도짜 따고 이천짜 천짜 따고 해서 도천이라고 지었다고 그런 얘기가 나와 그서. 이것은 인자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저 사백년전 일이니까 알도 사도 못허지만 흘러나오는 역사를 기준이가지고 그렇게 생겨서 우리 도천이 생겼구나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천이라고 들어왔다 이거에요.

B2 : 크게 이제 네가지 설이 있는 겁니까?

A : 중이 이제 지나가다가 비가 와서 로가 길이 되니까 아이 우리동네는 도내골이라 질이 냇가 돼가서 도내골이라고 해야것구나 해서 도내골이라고 허는 설도 있고 그서 도끼리 도짜 내천짜 내천 그 두가지와 또 하나는 소양곡이라고 하는 분이 친구가 정 명도 정 이천 두 형제가 있어. 끝엣머리짜만 따서 도천이다 그런 설이 있는데. 인자 풍문에 의해도 그런것 보다도 문서로써 내려온 그런 것이 확실성이 있지않나 해서 도내골 얘기 책이다가 원우록을 기준우로 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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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갓점은 무엇입니까?

A : 갓점이 지금 음 여기에서 오백메터 가면 갓점이 있는데. 그 인자 어른들허고 말씀을 들어보면은 옛날에 갓을 만드는 갓을 만들어서 팔았다 그거에요. 지금은 너나없이 장사를 허고 먹고 살지맨은 옛날에는 천민이 장사를 했다 그래요. 그래서 인자 갓을 만들어서 파는 동네가 있다. 점방- 상점이여 그게 인자 갓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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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산소골이 무엇입니까?

A : 아 저 산소골이 있어. 산소솔. 여그가 산소골도 있고 소주탕도 있고 그래. 소주탕 으디에 팔부능선 거기에가 이렇게 그 도로같이 나 있어. 거기서 왜정때 일본 사람들이 말타고 훈련을 했다 허는 전설이 있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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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준밤바위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십시오.

A : 준암바위는 지금 그 저수지를 막으믄서 그 준암빠우가 소실이 돼야부렸어. 그러기 전에는 거기 거가 바우가 있는디. 그 호가 준암이라는 분이 외롭고 쓸쓸헐때 거기 가서 시도 읇고 인자 지금도 나무가 있지만 옛날에도 나무가 무성허고 그런디 다행히도 거가 바위가 있어가지고 그 바위에 앉어서 시도 읊고 그으 자기의 인자 뭐라그럴까 즐거움을 달래 외로움을 달랬다고 그럴까 그 놀이터 휴식처가 되지 않았나 해서 준암빠우라 있어요. 지금도 다 망가졌지만 형태가 남아 있어 준암빠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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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 항복골이 어디인지 알고 계십니까?

A : 항복골이 여그가 지금 이 우리 동네가 도내골 감나무골 셋골 망골. 글케가 있고. 그댐에 인자 우리 마을에서 산등을 하나 넘으면 서당골이 있어. 서당골. 서당골은 긍게 서당이 있어 서당골인가 그 그 남의 동네라 물어도 안보고 알아보도 안보고 그래서 인자 서당골 넘어가 항보골. 항보골 넘어가 턱골. 턱골 넘어가 수실. 용화리 그렇게 나가. 항복골 다음에는 왕궁리 아녀. 항복골 까지가 금마면이여.

B2 : 감나무골은 많아서 감나무골입니까?

A : 그 나 어렸을 때는 감나무가 없었고 옛날에야 감나무가 많이 있었다 그래. 여그가 참나무베기도 있고 감나무 골도 있고 그러거든. 나무로 헌디가 지금 저-그 옻시얌.

B2 : 옷샘 말입니까?

A : 옻시얌. 어. 옷샘. 그냥 표 그저 허는 말로 옻샴옻샴 허거든 손님샴 옛날에는 그 인자 피부병이 와. 그러면 뭐 약이 없으니까 그 샘에가서 씻츠믄은 낫는거여. 그래가지구 옻올라가꾸 나섰으면 옷샘. 손님이라고 말라리아같이 전염성 있는 손님 그런 것을 막 얼굴이고 어디고 징집이 나고 했는디 거가 씻쳐서 나았으면 손님샴. 지금 여기 손님샴 있는데 여기도 내 책에두 써있지만 거 참 웃기는 얘기가 있어. 손님샘 그것이. 그 손님샘 샘도 있고 우리 동네 샘이 지금 이 우리 여그 샘은 둠벙이러고도 이름이 없고 찬샘이라 고런데가 있어 찬샘. 지금 용화사 절을 만들어 팔십팔년도에 용화사 절을 만들어서 지금 개인이 사용하는 것들인지 그전에는 그 찬샘에서 에 모욕을 허면은 땀띠가 났는디 두번만 두번만 스쳐버믄 깨-끗히 나섰어. 그렇게 물이 좋았어. 아주 시원허고 차고 우리 어려서 여름에 인자 거따가 발을 담구고 백까지 실수가 있는사람 내기를 혀 누가 오래 담구고 있나. 그래가꼬 댓명이 서가지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하나 숫자를 셔 근데 한 오십 시면 나가. 백까지 발을 담구고 있들 못허게 그렇게 찬샘. 그 기묘년 지금으로부터 삼 칠십 사년전 돼야쓰 칠십 사년전에 흉년이 들어가지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그려 근디. 그 샘허고 여그 둠벙만 우리 동네에서 물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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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렇습니까?

A : 그리고 우리들 내가 인심이 좋다는 것은 지금 저 이장허는 그 아버지 남상용씨가 헌 얘기여. 그 지나가는 선비들이 허는 얘기가 사람을 볼라믄 도내골로 가고 배가 고프믄 동편이로 가라. 저 동편에 있거든 서편 동편이. 그 동편. 근디 우리 동네가 옛날부터 그 소양곡이라는 분도 낫고 지금 그 십이기 그 문재승(?)이라고 육사 삼학년때 인자 퇴학을 당해서 말았지만 그리고 삼십구기 이석광 대령. 장성의 꿈을 꾸고 있는 그런 분도 태어나고. 그 국회의원도 우리동네에서 나왔고. 사대를 거듭거듭 사대를 금마농협 협동조합을 허는 동네가 이동네 역사 이래 일케 그 현명한 분이 있들 않여. 인자 지금이야 너나 없이 학교도 많고 배운 사람도 많고 출세한 사람도 많지만 옛날에 그 옛날에 글을 배워가지고 출세헌 분들이 이동네에서 많이 배출되었댜 그래서 사람을 볼라믄 도내골로 가고 배가 고프믄 동편이고 가라.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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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용화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A : 용화사라는 절이 그 대한민국 그 그 역사책을 보믄 용화사라는 절이 많이 있어. 그런데 특별 내 여그따 인자 아는대로 내 적었는데 그 소양곡이 여그 여 다섯째 막냇동생이 키가 육척이고 그 용화사 절을 뒤에서 뛰어서 앞으로 정원까지 뛰었다는 그런 설이 있어. 그렇게 그냥 키가 육척이라 그러고 근디 잘못되야가지고 뭐 어쨌다고 그러는디. 아마 불량배로 혀가지고 잽혀서 죽지않았나 근디 그런 얘기는 없지만 원우록에가 있고 그려. 그래서 그 용화사가 몇년도에 화재가 나서 다시 짓들 복원을 못허고 그냥 전실되야부렸어. 근디 그 절 지금 그 돌이 지금도 절 터가 남아있고 주추가 있어. 어마어마하게 넓어 한 이메타? 직경 일점오메타 둘레는 한 삼메타 정도로 그런 절 주추가 남아있어 형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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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 마을은 소씨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집성촌입니까?

A : 그래서 그 진주 소씨라고 혀서 익산에 그 일명 익산 소씨라고도 혔어. 익산에 많이 살아서. 지금은 인자 지금으로부터 아주 몇백년전 일이기 때문에 여그 저그 인자 분포되야서 살지만 그래도 주로 분포되야서 살지만 그래도 익산에 많이 살고 있어. 내가 천구백육십년대 군인을 갔는디 저 경기도 파주에서 근무를 허는디 인자 소씨얘기를 했드니 귀헌 성이 다있네 소씨 안들어본 성이네? 인자 그런 얘기를 헌 친구들이 있었어. 그런 그정도로 글케 소씨가 아주 참. 드물었었어. 그러나 우리는 인자 그 우리 동네도 있었고 금마만 나가믄 여그 익산 금마에는 소씨가 상당히 집성촌을 이루고 그 많은 그 그냥 뭐라 부자로 살았지. 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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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재밌는 전설이나 민담은 있습니까?

A : 전설? 우리동네는 그런 전설은 몰르고. 긍게 인자 여그 소양곡이가 벼슬을 해가지고 내려오는 거여. 아유 최동규씨가 잘아는디 근디 저 황각동에 인자 보를 막어. 근디 인자 보는 대게 인자 쪼끄머-헌 내를 보를 막어서 그 물을 이용해서 모내기 이용해서 막는데. 대게 인자 내깔 까서가 보들나무도 있고 그런 나무가 많지 않어? 근데 이 남자를 사모혔는디 이게 그 안만나주고 안되게 생겼으니까 이간정에서 목메달아 죽었다는 그런 얘기가 있는디 자상시럽게는 모르는맨도 우리 어려서 들은 얘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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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다짐재는 무엇입니까?

A : 에 황각동에서 예산동 넘어가는 그 다딤재 그래서 그 다듬을 다짐을 받았따고 혀서 다짐재라고도 허고 다딤독을 떠서 다딤대라고도 허는디 몰라 남의 동네를 대충 들었는디. 다짐을 받어. 다짐을. 거기서 다짐을 허는 거여 또. 그렁게 무슨 다짐을 혔던지 다짐을 허고 그래 인자 막 쫓아가 쫓아가는거여 인자. 다짐을 혀가지고. 그래서 인자 항복골 가서 잽혔어. 잽현 게로 인자 거기를 항복골이여서 항복골이라고 허는 그런 얘기가 있는디. 그 있어서 얘기를 허줘야 하는디 이 대충 농담으로 지어낸 얘긴가 그냥 가끔 전설을 가지고라도 그런 얘기가 있었는데 근디 인자 다짐재로 혀서 인자 어서와라를 그냥 꼽고 말을 타고 인자 오는거여. 내려 오는디 벼슬을 해가지고 내려 오는디 인자 그쪽으로도 인자 가물어가지고 이만큼이나 가물었나 흉년이 들고 가물고 모를 못심었는데 그 지금. 내봉재. 내봉재 밑에 줄기에 물이 쫄쫄쫄 내려오는 소리가나. 그 연마지긴가? 그게 저 오성수씨라고 그 논을 지었는디 아 소양곡이 아니다. 원님이 원님이 행차하는디 오는디. 그 그 거기서 인자 물소리가 나. 그러니까 상을 줬대 상을. 그래서 그 논을 상준논 상준논 그러드라고. 그서. 상시럽게 상준논이 있냐 뭐시냐 물어봤어. 대체 왜. 긍게 어디서 특별하는 것을 물어보고 그랬었어. 왜 상준논이라고 허냐 그랬더니 원님 행차때 딴대는 물을 못씨고있었는디 여그만 물이 내리서 모를 심어서 원님이 내리가지고 상을 줬대서 그래서 상준논이라고 허드라고. 지금도 논 이름을 상준논이라고.

B2 : 상준논 말입니까?

A : 응. 상을 줬대서 대개 그러잖아요. 이름을 질적으 감나무뱀이라든지 호박뱀이라든지 새막뱀이라든지 황뱀이라든지 논이름을 짓거든 글케.

B1 : 상준논은 어느쪽에 있습니까?

A : 황각동 황각동에 있지 황각동. 거기도 나이 든 분한테 물어보믄은 상준논이 어딨냐 그러믄 알아. 특별너게 이그 전설 이런 건. 우리가 어렸을 때 인자 막 앉아 노는거 그런 것은 있지 그런거. 뺑둘러 신파도 허고. 연극이지 지금은 말하자믄 인자. 각본 짜가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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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술먹이는 무엇입니까?

A : 술맥이? 그게 회식이여. 지금 회식. 에에 어떻게 해는고니 인자 여름에 아 논을 내는디 전부다 동원을 해. 집집마다 한사람씩. 그래가꼬 갑이라는 사람내도 을이라는 사람내도 병이라는 사람내도 논을 인자 내줘. 나는 맻마지기를 맡 맽길랍니다. 그래가지고 인자 그러면은 논 는 돈을 인자 그 공동으로 내놔. 그러믄 그 공동으로 내는 돈을 모야가지고 칠월 칠석날 음력 에 그라느믄 칠월 십오일날 내쭉날(?) 날을 잡어가지고 돼지도 잡고 소도 잡고 그려. 동네 회식을 혀. 그러믄 인자 에 술을 집집마다 맺겨. 갑이라는 사람한테는 두 말을 내라. 을이라는 사람한테는 할 말을 내라. 그리가꼬 술을 혀다가 인자 막 물지개로 짊어지고 저그 저 모정 있어 모정. 거그다가 큰- 항아리 가져다가 붓어. 이집 저집. 그래가지고 하루에 그냥 일곱말도 먹고 그래. 그래가지고 그면 그 그 고기 큰- 솥 걸어가지고 여기다 나오면 보면 윤복(?)씨네 집서 솥을 걸어가지고 거기서 삶어다가 그놈 퍼다가 히약- 풍물도 키고 노래도 허고 그냥 춤도 추고 그 오락기를 혀. 일년중에. 술 많이 먹는 사람은 큰 사발로 일곱 사발도 잡순 분이 있고 그려. 그랬었어. 술먹인가 술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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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고려장이 있었습니까?

A : 고려장. 긍게 인자 그 역사를 보믄 옛날에 허믄 오래 살아가지고 땅을 파고 음식을 넣고 거기다 히서 이놈 잡수고 돌아가시오 해서 묻어놨디야. 그럼 인자 그놈 먹고 죽는 것이여. 지금 보면 있어 보믄 근디 인자 형태가 없대. 올라가봉게 그저 우리 어려서는 네모지게 큼지먹허게 있어. 그 테레비 같은 큰 팔십센치? 그래가지고 있어 근디. 그 공쿠리로 되야 있더라고 그래가꼬 일케 안을 들어댜보면 씨튼 물이 들어갈수 있고 그러지 않고 어떤데는 그 뼈 씌트건 뼈 그 팔뼈나 발뼈같은 것이 남아있고 그랬었어. 그서 거 무서가지고 거긴 안가고 그랬었는디 지금은 형태도 없어졌드라고. 거기 거기도 우에 가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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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소주탕은 무엇입니까?

A : 왜 소주탕이라고 혔는가는 모르는디 물이 아주 맑은 물이 나와. 그래서 그 소주탕 우에 그 주마등이라고 하는 디서 훈련을 혀다가 목이 마르믄 내리와서 그 물을 마셨지 않은가. 그 소주탕에. 지명에 많애 우리 동네안에서.

비고

면담장소 : 도천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오후 2시
내용 : 지명 유래에 대한 이야기 및 민담과 마을의 전설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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