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채록 된 지명유래
유적, 터 및 기타지명
전설 및 민담
민속
기타 조사
유적, 터 및 기타지명
전설 및 민담
민속
기타 조사
1) 새로 채록된 내용 :
- 감옥이 있던 마을이라서 ‘옥(獄)’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구술 ‘옥(玉)’을 사용한다. 주변 세 개의 마을이 합쳐져 ‘옥두마을’이라고 불린다. 예전에는 옥동마을을 신촌이라고도 불렸다. 사정거리는 예전에 사정거리에서 죄인을 처벌할 때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죄인의 혼을 빼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죄인의 가족들이 ‘차라리 빨리 죽여 달라’고 사정을 했다 해서 “사정거리”라고 불렸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동원 : 마을에 원님이 살던 ‘동원’이 있었다. 동원에는 우물이 있었으며, 그 우물의 이름을 ‘동원 우물’이라 불렀다. 동원의 자리는 금마 초등학교이다.
- 사정거리 : 마을 옆 길을 사정거리라고 한다. 활연습을 하던 곳이다. 교수형으로 죄인을 처벌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금마 농협이 있던 자리이다.
- 비석골 : 지금 금마 농협의 뒤편에 있었다. 비석이 여러개 있던 거리이다. 비석거리, 비성거리 등으로 불렸다. 비석은 금마 향교로 옮겨졌다.
- 향교 : 지금 금마 중학교 자리에 있다.
- 옥담집 : 지금 금마 파출소 옆 기와집이다. 예전에 감옥이라고 한다.
- 한샘 : 한샘이라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 한다리목 : 한다리목이라는 큰 다리가 있었다. 위치는 금마 시내 창고가 있던 곳이다. 한다리목 끝에는 학독, 즉 물레방아가 있었다. 익산을 가려면 그 다리를 꼭 건너야 했으며 일제 시대때 군대에 강제 징집되는 사람들의 수건식(환송식)을 그 다리에서 했다고 한다.
- 항복골 : 백제가 미륵산 서쪽에서 신라군이 쳐들어올까봐, 서쪽을 바라보며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쪽에서 적들이 처들어 왔고, 항복골까지 도망갔다가 항복골에서 항복을 했다고 한다.
- 익산군 : 예전에 익산읍내라고 불렸다. 또한 금마가 옛 익산의 중심이라고 불렸다.
3) 전설 및 민담 :
-여우이야기 : 금마에서 소장수가 황등에 가서 소를 사왔다고 한다. 그런데 금마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여자가 자기도 금마에 가는 길이니 동행을 하자고 했다한다. 소장수는 무서운 생각에 여자의 다리와 소의 다리를 묶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니 여자가 여우가 되어 도망갔다고 한다. 그 뒤 소장수가 황등에 가서 황등친구의 집에 갔다. 그런데 친구의 집 방안에서 그 전에 자신에게 나타났던 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뒤 문을 열어 여우의 머리를 세차게 세 번 때리니 여자가 여우로 변신하여 도망갔다 한다. 알고 보니 여우가 마을 뒷산에 굴을 파서 사람들을 홀려 병을 얻게 하고, 그 뒤 경을 읽어줘 치료를 해줬었다고 한다.
4) 민속 :
- 기세배 : 금마의 각 마을깃발이 모여 서로 기세배를 하였다.
5) 기타 :
- 기차 이야기 : 금마에 살던 양반들이 기차가 시끄럽다고 반대해서 현재 기차길이 놓여졌다고 한다. 또한 전주양반들도 기차가 전주를 관통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 감옥이 있던 마을이라서 ‘옥(獄)’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구술 ‘옥(玉)’을 사용한다. 주변 세 개의 마을이 합쳐져 ‘옥두마을’이라고 불린다. 예전에는 옥동마을을 신촌이라고도 불렸다. 사정거리는 예전에 사정거리에서 죄인을 처벌할 때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죄인의 혼을 빼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죄인의 가족들이 ‘차라리 빨리 죽여 달라’고 사정을 했다 해서 “사정거리”라고 불렸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동원 : 마을에 원님이 살던 ‘동원’이 있었다. 동원에는 우물이 있었으며, 그 우물의 이름을 ‘동원 우물’이라 불렀다. 동원의 자리는 금마 초등학교이다.
- 사정거리 : 마을 옆 길을 사정거리라고 한다. 활연습을 하던 곳이다. 교수형으로 죄인을 처벌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금마 농협이 있던 자리이다.
- 비석골 : 지금 금마 농협의 뒤편에 있었다. 비석이 여러개 있던 거리이다. 비석거리, 비성거리 등으로 불렸다. 비석은 금마 향교로 옮겨졌다.
- 향교 : 지금 금마 중학교 자리에 있다.
- 옥담집 : 지금 금마 파출소 옆 기와집이다. 예전에 감옥이라고 한다.
- 한샘 : 한샘이라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 한다리목 : 한다리목이라는 큰 다리가 있었다. 위치는 금마 시내 창고가 있던 곳이다. 한다리목 끝에는 학독, 즉 물레방아가 있었다. 익산을 가려면 그 다리를 꼭 건너야 했으며 일제 시대때 군대에 강제 징집되는 사람들의 수건식(환송식)을 그 다리에서 했다고 한다.
- 항복골 : 백제가 미륵산 서쪽에서 신라군이 쳐들어올까봐, 서쪽을 바라보며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쪽에서 적들이 처들어 왔고, 항복골까지 도망갔다가 항복골에서 항복을 했다고 한다.
- 익산군 : 예전에 익산읍내라고 불렸다. 또한 금마가 옛 익산의 중심이라고 불렸다.
3) 전설 및 민담 :
-여우이야기 : 금마에서 소장수가 황등에 가서 소를 사왔다고 한다. 그런데 금마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여자가 자기도 금마에 가는 길이니 동행을 하자고 했다한다. 소장수는 무서운 생각에 여자의 다리와 소의 다리를 묶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니 여자가 여우가 되어 도망갔다고 한다. 그 뒤 소장수가 황등에 가서 황등친구의 집에 갔다. 그런데 친구의 집 방안에서 그 전에 자신에게 나타났던 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뒤 문을 열어 여우의 머리를 세차게 세 번 때리니 여자가 여우로 변신하여 도망갔다 한다. 알고 보니 여우가 마을 뒷산에 굴을 파서 사람들을 홀려 병을 얻게 하고, 그 뒤 경을 읽어줘 치료를 해줬었다고 한다.
4) 민속 :
- 기세배 : 금마의 각 마을깃발이 모여 서로 기세배를 하였다.
5) 기타 :
- 기차 이야기 : 금마에 살던 양반들이 기차가 시끄럽다고 반대해서 현재 기차길이 놓여졌다고 한다. 또한 전주양반들도 기차가 전주를 관통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