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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금마면

용순마을

구술일: 2012년 8월 10일
구술자: 소선영(1937년생)·남
면담자: 장윤준,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이야기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미륵사 사자암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이 용의 입술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용순'은 '용순리'에서 가장 으뜸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익산 토성 : 기준왕이 토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 사정거리 : 무형문화재 246호 인석이 있는 곳을 지칭 한다.
- 가재골 : 익산 토성 밑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밑에 옹달샘에서 가재가 나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전설 및 민담
- 바랑골 : 스님이 들판을 보고 흉년인지 풍년인지 등등의 풍수지리를 보는데 그때 스님이 바랑을 올려놓고 주령을 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굉이무덤 : 미륵사 스님들의 횡포가 심해서 그 횡포를 막기 위해 고양이를 묻어 놓았다고 한다.
- 인석: 금마를 지키기 위해서 세워 놓은 인석이라고 한다.
- 오자골: 오죽골로 주로 상인과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 오시암: 왕궁면에 피부병에 좋은 샘이 있다.

4) 민속
- 금마의 무당: '옥동', '용순', '기양'에 있었다고 한다.
- 칠월칠석날 두레: 마을 사람들 모두가 논에서 일을 하고 다 같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 성년식: 칠월칠석 두레날에 품앗이를 같이해서 잘하는지 못하는지 확인한 후 어른 취급을 해주었다고 한다.
- 기세배: 옛날에는 12개 마을이 합동적으로 기세배를 했었다고 한다.

5) 철도이야기
- 기찻길: 기찻길이 원래는 금마, 여산으로 놓이려고 했는데 양반들이 반대를 해서 함열, 황등으로 놓이게 되었다.

문헌 내용

용순이는 마을 산이 용과 같고 마을이 용의 입과 같은 속에 위치하고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매모통이’는 산모퉁이라는 말. ‘안뜸’은 원용순의 안뜸.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소선영 (76) 1937년



B1 장윤준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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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르신 우리 용순마을은 어떻게 해서 이름이 용순마을인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A1: 지금 우리 마을 용순마을은 에... 5개 마을로 되어있어 용순리로 되있는데 용순리는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는 리로 되어있다가 5개 마을로 분할이 되있어 5개마을로 분할이 되있어서 에... 용순이 첫째, ‘용순’ ‘동편’ ‘신정’ ‘서편’ ‘신기’ 이케 5개마을로 구성이되있어 용순리는 용순리라고 그래가꼬 마을의 터전은 에... 옛날부터 어.. 말하자면은 유교사상이 심했을때 여기와서 ‘소참봉’이라는 분이 거주를 하셨고.

B1: 아-- 소참봉 선생님이요.

A1: ‘소참봉’이 분실을 하셨고 ‘천석꾼’이였었어 .

B2: 아 ‘천석꾼’이요?

A1: 그랫는데 그 내력은 집이 여기 동편마을이라서 있어 집이 그래가꼬 에..... 거기서 에... 여기 자각도 있고 유교사상이 참으로 강했었다 이 말이여 ‘양반’ ‘상놈’ ‘서론’ ‘노론’ ‘남인’ ‘북인’ 이렇게 해가지고 ‘송시열’ 선생이 여기 임진에 있는 은진 송씨 아니여 영의정 했던 양반이여 그래 가꼬 ‘송시열’ 선생이 여산이여 여산 ‘이병기’ 인물학자 ‘이병기 선생’이 거기 거주지란 말이여 그래서 ‘최인배 선생’이나 ‘이병기’ 선생이나 국문학과 사람이야 그 사람들이 연구를 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전통적으로 유교사상이 강했던 마을이여 이게 양반 상놈이 아주 새렷던 마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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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용순마을이 왜 용순마을이라고 불리나요?

A1: 용순마을은 용순마을의 내력을 얘기해 달라는 얘기지 용순마을은 미륵산을 주행해 올라가보면은 ‘사자암’이 있잖아 ‘사자암’ ‘사자암’이라고 해가지고 뒤에는 ‘신국사’가 있어 근데 남성면 쪽으로 사자암에서 에...풍수지리하는 지사가 봤을 때 용순리 마을은 에.. 용용자 입술순자 용순리 용의 입술과 같이 모양이 되어 있다 그래서 끝에 용순마을이라고 해서 지었고 거기서 거주를 하니까 여기서 ‘천석꾼’이가 되니까 마을이 번창하게 되있어 그래서 신기가 생기고 ‘오작골’도 생기고 그랬는데 용순마을은 주령에 보면은 용과 같이 미륵산 주령에서 이렇게 내려왔다 이 말이여 내려와 가꼬 입술의 끝트리가 말했잖아 머리와 입이 있는데 그 굽어서 꼬부라지고 뭐가 이래 꼬부라지고 이런데 마을을 주변을 잡았다 이 말이여 자리를 잡았어 그래 가꼬 부르다가 그랬고 올해와서 또 이렇게 토종이로 일찌감치 왔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토지가 많고 그래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어.

B2: 어르신 그런데 아까 ‘원용순’이라고 했는데 원용순은 무엇인가요?

A1: 그러니까 ‘원용순’은 아니고 용순리, 용순리, 용순리라고 하면 5개 마을이라 모르니까 용순리 하면은 5개마을로 분류가 되어있다 말이여 그러니 용순리라 하면 어디 ‘동편’인가 ‘신기’인가 ‘신정’인가 어떻게 알것어? 그러니까 ‘원용순’이라 하는 것은 인자 명명자가 쉽게 알기 위해서 풀이하기 위해서 ‘원용순’이라켓지 동편이 아니고 ‘원용순’이다 이렇게해서 내력이 내려왔서 그랫던 것이지 ‘원용순’이라는 것은 으뜸원 자가 ‘원용순’인게 으뜸이간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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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저번에 ‘가재골’ 이야기 해주셨잖아요.

A1: 응 ‘가재골’은 음 가피에가서 금마 금마 소재지하고 ‘오금산’이라는 산이 있어 ‘오금산’ 다섯오자 쇠금자 오금산 거그더러 ‘익산 토성’이 거그가 있단말이여 ‘익산 토성’이 무왕때 ‘기준왕’이 거그 토성을 쌓으니까 거그가 있단말이여 그래서 거그서 있어가꼬 내려갈수가 있는데 그 토성 근방에는 흙과 돌로 함량이 되있어 그래서 그래가지고는 산이 있는데 그 밑에 절이 하나가 있었어 그 절 ‘가약골’이라는 골짜기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가보면은 - 기와장이나 나오고 드러낸겨 기와장이 나오고 이렇게 했는데 발굴해내 어떤 분이 요사이로 소견으로만 분할해서 절을 지까 어찌까 그런 생각도 나고 그러고 있는디 그건 분할해서 안 판디야 그건 소씨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더리야 앞선에 그래서 그렇게 됬는데 그 밑이 가서 그 옹달샘, 옹달샘같이 네모지게 되있어 그 산 밑에 쭉 밑에 ‘오금산’을 내려오다가 주렁에 툭허니 - 그 네모진데서 물이 졸졸졸 나와 그러면 거그서 물을 바가지로 약수로 떠먹고 그게 약수거든 그니까 그게 뜨다보면 가랑잎도 떠오고 낙엽이 많이 쌓여있거든 다 건져내고 먹고 나무꾼들이 가면은 나무들 많이 하니까 지게 짊어지고 거그서 올라가보믄 물들 먹고 그러니까 지게 하다보면은 거글 들어가보면 가재가 나와 그래서 거기는 ‘가재골’이라 그렇게 했다.

B2: 혹시 그 절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A1: 절 이름은 모르지 우리는 우리가 거시기 했었고 그 전에 있었기 때문에 근데 나중에 집 한 채를 지어가지고 에.... 그 절 행사를 하던 양반이 돌아가셨어 돌아가시고 파기했는데 부셔버렸어 말하자면 그것은 에..저 거시기 6.25사변이 나가지고 반공법에 그렇게해서 그 피신처라고 해서 그거 부셔서 포상금 받고 150만원인가 받고 부셔버렸어 안보문제에서 안된다 그래가지고 안보문제.

B1: 안봉제요?

A1: 안보문제, 안보문제로 거 해 가꼬 면 사자께서 지시를 내어 가꼬 간첩들이 그니까 은거할 수 있다.

B2: 어르신 그러면 어렸을 적에 그 절이 있었나요? 아니면 절터만 있었나요?

A1: 절터만 계단식으로 되있어.

B2: 절이 엄청 컸었나 봐요?

A1: 컷는가벼 허드가꼬 있는디 그게 말들으면 전설이랑 절터라고 그리고 그 옆에가서 절 같이 된 또 오금산 옆에가면 또 있었어 - 절 같이 있어서 점 하는 분이 그 짝에 와서 집을 짓고 부처를 만들고 보고 했었어 근데 없어 졌어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리 넘어다녔어 새골진 놈으로 그리 넘어댕기고 했는디 부처 옆에가서 그 넘어댕기면은 마당으로 대녔어 금마국민학교를 다니니까 책보를 짊어지고 산길을 해서 진달래도 보고 이케하면서 넘어와서 근데 그것도 없어졌어 집이 오막살이해서 두 채가 있었는디 없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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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럼 여기 용화산쪽에 ‘바랑골’이라고 아시나요?

A1: 어 ‘바랑골’, ‘바랑골’은 용순리 마을 뒤편에 있어 서편마을에 있어 서편마을에 소관이야 ‘바랑골’은 어떻게해서 ‘바랑골’이냐 중이 이...배낭을 짊어지고 염불하는 객이라해서 ‘방랑골’이라 했어 ‘바랑골’ 사당가에서 중이 내려와 시주를 하러 그래 보면은 들판을 봤을쩍에 흉년이냐 풍년이냐 보고 시주를 하러 내려와 그러면은 중이 풍수지리를 잘하잖어 그래서 미륵불 뒤에 가서 묘도 있고 그러는데 거그 가서 중이 바랑을 올려놓고 주령을 치다왔데 풍수지리 중 있지 사당자리 중인가 어떤 중인가 모르는데 거그서 내다봣더니 여기는 ‘바랑골’이로구나 그래서 ‘바랑골’이라고 중이 와서 지었던 전설이 있어 ‘바랑골’이라고 그래서 ‘바랑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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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럼 혹시 주변에 ‘괭이무덤’에 대해 아시나요?

A1: 어 고양이 무덤 거그 바로 서편 뒷마을이야 뒷마을인데 여 미륵사지가 지금 사리함이 많이 나왔잖아? 그때 언제냐면 에..600년전이지 아니 1400년전이지 그때 그래 백제가 여그서 있었을 적에 그 사리함이 나왔는데 그러니까 중이 대체승하고 비구승하고 있었잖아 그러는디 여그는 대체승이 많았던 모양이여 그래가지고 중이 몇 백명이 살았던 모양이지 거그가서 살으면은 사람은 살았는디 또 미륵사지 안에서 절이 있었잖여 절터가 컸단말이여 거그가서 살았는데 중들이 거그서 많이 살고 그랬는데 그전에는 양반 상놈 차리니까 가마타고 장가가고 글잖어 그래서 그러는데 가마를 짊어지고 다니면은 중들이 몹쓸 짓을 많이 했디야 그래서 고양이 무덤이라해서 고양이가 한번 조사를 하러왔는데 개무덤이라고 그려 고양이 무덤이라고 해가꼬 거따 묻었다고.

B2: 고양이를요?

A1: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가 없으면 중이다 망한다 저따 묻어노면 고양이을 묻으게 되면은 중들이 다 망한다 해가지고 거따 고양이 무덤을.

B2: 중이 해코지를 하니까 못하게 고양이를 묻어놨군요.

A1: 응 금바위를 묻었다거나 그런 얘기들이 나와 그래서 고양이를 묻어 노면은 중들이 다 멸망을 해버린다 하도 중이 기승을 부려싼게 비구승들이 여그를 대니들 못하고 그러니까 그런 전설이 있었어 (현대사이야기) ‘괘무덤’이라고 했었어 ‘괘무덤’ 고양이 무덤을 ‘괘무덤’이라고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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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옛날에 금마면에 소나무도 많고 여우도 좀 많았다고 하는데 어땠나요?

A1: 어 소나무는 유명한 소나무가 이 앞에 신정마을에 가서 있었었어 근데 27연대 창설당시 6.25사변 전에 있었는데 나무가 참말로 한 500년 된 나무가 있었었어 이렇게 된 나무가 있었는데 뿌리서부터 가지가 벌리고 이렇게 벌리고 이렇게 벌리고 해가고 여기서 올라가서 ‘다박살이’라고해 ‘다박살이’.

B2: 어르신 죄송한데 여기 그림 한번 그려주실 수 있나요?

A1: (그림그리시는 중 현대사 이야기) .

B2: 나무는 왜 없어진 거예요?

A1: 논친다고 논지어 먹는다고 나무가 이런식으로 뻐쳐가꼬 소나무가 이렇게 크게 이게 팔으면 시방 몇 천만원 받을 나무 였었어 지금은 짤라가꼬 지금 거기다서는 논을 지어버렸어 (현대사이야기).

B2: 이거는 누가 심었나요?

A1: 이건 소씨 여 저그 소참사라고 있었어 소참사 소참사 본이 여기가 종산이야 소씨가 여기 기승을 부렸었어 소씨가 많이 그래가지고 여서 이렇게 되었어.

B2: 이런 큰 나무가 있으면 빌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A1: 빌지 빌었는디 거따 빈다고 그랬는데 거그는 그렇게 않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나무였었지 빌던 않했었어 서당 그 뭐라고 글지 성당 뭐 독도 던지고 뭐 어찌고 하면서 뭐 그런건 없었고 그 ‘해방등이’라는 나무가 있어.

B2: ‘해방등이’요?

A1: ‘해방등이나무’는 느티나무 하나 있는데 신정에 큰거 그것이 나 초등학교 다닐 때 그때 심기 시작했어 그래가꼬 내가 에..‘해방등이’는 해방된지가 64년이지 64년 64년일꺼여 해방된 고때 심었던거여 그래서 ‘해방등이’라는 나무여 1948년 사실은 1945년 해방되었을 때 그때 심었어 그때 심었던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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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무당 이런 것은 없었나요?

A1: 무당 있었어 금마에는 무당이 세간데가 있었어 금마 ‘옥동 마을’에가 하나있었고 ‘용순리’ 마을에 하나 있었고 용순마을에 터가 있어 어떤 사람이 지금은 부서고 새로 지었지만 그리고 ‘기양리’에 하나 있어 ‘기양리’, 기양리마을 거가해서 3개 무당인데 기양리마을 거그가 살았었어 그래서 애들이 지금 천연두라고 하지 천연두를 하게되면 그 양반들이와서 빌어주고 했다고 그리고 정월보름날이면은 그 집에다가 살을 줘가지고 먹고살고 그리고 무슨 악재가 나면 귀선을 하러 대녔어 그럼 무당을 썼어 세 사람있었어 금마면서 세사람 ‘옥동마을’ ‘용순리’ ‘기양리’ 3개 마을에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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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르신 윗마을에 호랑이랑 여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하던데 여기는 어땠나요?

A1: 어 호랑이 호랑이는 내가 모르겠고 호랑이는 내가 몰라 늑대는 집에 많이 들어왔어 늑대 늑대는 산에서 이짝으로 건너 댕기는거야 늑대는 대녓는데 호랑이는 못봤어 호랑이는 못봣고 늑대는 봤어 늑대는 막 뛰어가는데 저게 늑대라는게 들판을 혼자 뛰어가는데 여기 골짜기로 뛰어가는데 늑대는 봤고 여우도 많이 있었는데 그랬는데 호랑이는 못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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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르신 어렸을 때 다른 어르신들에게 뭐 재미난 이야기 혹시 들이신거 있나요?

A1: 어 재미난 이야기는 재미난 이야기는 여기 농경사회가 되었을 때 완전히 농경사회가 되었을 때 에.. 칠월 칠석 날이면은 ‘두레’라는 것이 있어 ‘두레’ 술 멕이라 그려 사투리 말로 술 멕이는 사람 일꾼들을 술 멕이는 날 쉬는 날이여 말하자면 그래서 칠월칠석날이면 에... 남의 논을 여럿이 매어가지고 질을 받고 큰 질을 받아가지고 익산에 ‘기세배’가 생겼잖어 (현대사이야기).

B2: 어르신 그러면 ‘기세배’가 이 마을에 오래된 전통인가요?

A1: 어 전통이지 이 용순리마을 5개마을, 6개마을, 6개마을로 예전에는 12개 마을이 있었디야 12마을이 합동적으로 하고 그랬는데 12개마을 6개마을로 줄어버렸어 ‘용순’ 어.. 거시기 ‘창개’ ‘옥동’ ‘누동’ ‘도천’ ‘달산’ 6개마을.

B2: 어르신 그러한 전통 말고 다른건 없었나요?

A1: 전통은 술 멕이하다 말했지 술 멕이 얘기는 그래서 ‘두레’라는 것이 있었어 ‘두레’ ---현대사 이야기 ‘두레’라는 것이 있어가고 마을마다 띄어져 있어 5개마을로 되있잖아 용순은 용순마을데로 신정은 신정마을데로 그것이 한참 흥행했어 두레라는 것이 어렷을 때 보면 농경사회여서 논을 내야는데 풀약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이여 그러니까 손으로 밭을 매야 손으로 하니까 풀이 우글우글 됫다 이 말이야 농사지가 풀밭이란 말이야 그러면 그것을 다시 매고 두벌 매고 만들어야하고 세 번은 매야하는데 두벌 맬 때 두레라는 것을 구성을 혀 그래가지고 ‘두레’를 구성하는 집집마다 호미자루 다 들고 나와야되 한 사람씩 나오고 에... 15세 지나면 그때 성년식이라고 하지 지금 학교에서 15세 지나면 ‘두레’와가지고 터를 품앗이 할 수 있는 성년식이라는 것이 있었어 마을에서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품앗이를 해서 우아래를 차이를 두서 15세가 지나면 호패를 차고 나라를 챙기라는 얘기야 일단은 그랫듯이 15세 지나면 청년이 되가지고 호미를 잡고 잘매나 못매나 그때 품앗이를 같이해서 같이 어른취급을 해준다 이 말이여.

B2: 그럼 성년식은 따로 치루셨어요?

A1: 따로 치루던 않고 그것이 성년식이여 그리고 성년식이라 했을때는 거시기가 있어 저 교동이란데 가서 그 유교 ‘명륜장’이라는데가 있어 그 공자님 모시는데 거기에서 성년식을 할 적에는 거그서혀 근데 그것은 통합적으로 일단 저 금마읍 금마저 했거든 그때 군수가 역임했던 자리여 지금 군수가 그래서 여산도 그렇고 그랬을 때 여산은 무뚝거리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가 있어 여기는 없어 왜냐면은 행정처리가 괜찮거든 그래서 성년식을 할 때 거그서혀 지금도 혀 지금도 성년식이라고 하면은 학생들을 해가지고 성년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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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예전에 여산에서 벌을 줬잖아요? 금마에서 죄지은 사람을 여산까지 데리고 가서요.

A1: 어 데꼬가서 벌 받았어 가서 형장을 보면은 사람을 죽이고.

B2: 누가 금마에서 나쁜 짓을 해서 여산까지 끌고 가서 벌은 준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A1: 어 그런 얘기는 못들었는디 그 형을 내렸다는 것은 알지 그래가지고 금마에는 범죄를 잡으면은 항상 거그가서 했지 여그는 없어.

B2: 그 옥동에가면은 ‘사정걸이’라고 사람을 죽였다는 그런 자리를 들어보셨어요?

A1: 금마 ‘사정걸이’? 금마 ‘사정걸이’ ‘사정걸이’는 있는디 ‘사정걸이’는 어디에는 거시기여 ‘사정걸이’라 하는 것은 그 ‘사정걸이’가 아니고 양쪽에 저 무형문화제로 246호나 되었을 때 인석이 있잖아 양쪽에 양쪽에 가 금마를 지키고 있잖여 들판에가 이짝저짝 두 개가 그래가고 문화재로 잽혀있어 지금 그래서 그것을 사정거리라고 하지 마을에서 이짝저짝이 아니고 그래서 그게 금마를 지키고있어 금마읍을 지키고 있어.

B1: 석불 말씀하시는 거죠?

A1: 어 석불 맞어.

B1: 석불은 왜 만들었어요?

A1: 금마읍을 지키기 위해서 돌로써 금마읍 원래 미풍양속 했을 적에 금마읍을 지키는 유적지였어 관문이여 관문.

B1: 그러면 금마에 처음 그 장승같은 거예요?

A1: 어 맞어 맞어 장승과 같았지 그래서 그리고 장승이 밑이 또 그 내려가서 농경마을이라 솟대라고 알지 에... 거시기 저 새를 맨드러서 세우는거 세워놨었어 지금 있는가 없는가 다 부셔졌는가 그거 인석거리 안에 검문소 있는데 거그다가 세워놨는데 - 현대사이야기

B2: 어르신 그러면 동편하고 서편이...

A1: 이것은 제일 위쪽에 마을이여 그래가꼬 ‘두레농사’를 해가지고 칠월칠석날 에... 술 멕이라 그래가지고 우리가 소를 잡았어 소를 잡아서 나눠서 먹으면서 풍물을 치고 놀아 풍물을 치고 놀고 각 마을에서 그때 그래 똑같이 했거든 칠월칠석 날이나 어딘 백절날 한다 초복 때 한다 말복 때 한다 중복 때 한다 그러잖아 그런데 그때는 중복 말복 때 한참 더워서 논을 매기 때문에 칠월칠석날 되게 하더라고 고때 무렵에 풍물치고 놀다가 에.. 지모임을혀 기세배 날에 들판에가서 그때 칠월칠석날이면은 누가 장사가 있는가 마을에 그래가지고 초청을 하면 이 마을에와서 저짝 마을로 가고 저짝 마을에서 일로 오고 우리가 부르면 동편마을에서 불러대야 그러면 풍물을 잘치는 사람이 많잖아 단골이 있으니까 여기와서 풍물을 잘쳤단 말이여 단골이 있어서 풍물을 잘치거든 그런데 뒤에 골 쪽에 동편은 또 심파를 잘하잖아 그런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잘 놀거든 그러니까 그때 무렵에 농민의 날이런 말이여 농민의 쉼터 그래가꼬 그니까 술 먹고 셋마다 대니면서 풍물을 쳐 칠월칠석날 3일간을해 3일간, 3일간을 두레공사 기간에 그리고 논에 나갈때에는 명기와 큰기 바꾸고 나가 큰기는 매뚝에다 세우고 명기는 또 큰기를 지켜야된게 두 개를 놓고 풍물을 치고 들어가 논매면서 매면서 풍물잡이는 풍물만 쳐 논매는게 아니라 그리고 양쪽에서 해가고 쬐~~까지 서가지고 풍물을 가운데서 쳐주면 흥이 나가지고 막 이렇게 매가지고 와가서 논에서 이렇게 풍물이 끝나 금방 끝나 사람이 여럿이라 20명 30명씩 되가지고 저까지 가면 어디마을은 어디와서 이렇게 요 렇게 허리띠 요대를 이렇게 걸어놔서 빨리 걷자 생각하고 농가를 빨리 걷자 생각하고 여기서 돌아가지고 요렇게 가서 싹 간다 그런 재밌는 칠석 때 ‘두레농사’가 우리가 전통적인 것이 잊혀진다는 것이 한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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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어렸을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께서 잠자기 전에 귀신이야기나 이런 이야기 해주시지 않으셨어요?

A1: 응 그런 이야기는 안 들어봤고 내가 할머니를 못 모셔봣어 내가 3살 때 돌아가셔서 그래서 할머니 얘길 들어보덜 못 했어 그래서 그랬는디 전통적으로 뭐 지금은 자장가를 부른다거나 애들은 전통 그 그랬는데 그런 건 못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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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러면 혹시 ‘천석꾼’ 이야기 조금 더 해주실 수 있나요?

A1: 응 ‘천석꾼’이 여그 동편에가서 인제 부서졌던 집터에 ‘천석꾼’이 있었는데 그때 토지부자가 되있잖아 그때 논도 뺏기고 되게 그 부자들이 지금 -되서 여자들 셋씩이나 얻었잖어 그러다보니까 다 자산 다 날리고 그러다 보니까 패망해 버렸지 남승룡이가 여기 처갓집이여 손기정 남승룡이 마라톤대회 했었잖어 저기 일제시대 때 남승룡이가 처갓집을 미륵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어 조선시대 때 선수였던 처갓집이 천석꾼.

B2: 아-- ‘천석꾼’출신.

A1: ‘천석꾼’ 사우, 사위, 사위여 이게 처갓집이라 이 말이여 사위여 사위 내가 국민학교 대닐 때 손기정 남승룡 두 시간 십구분 이십초 막 그렇게 나오잖여 국민학교 대닐 때 그렇게 나왔는데 남승룡이가 처갓집이 여기라고 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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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나무 이름이 있었나요?

A1: 없어 ‘다박돌 나무’라고.

B2: ‘다박돌’이요? 왜 ‘다박돌’이에요?

A1: 나무가 다복하니까 다른 이름이 없어.

B2: 아--나무가 다 복하니까 나무가 복이 많아 보이는 나무네요.

A1: (현대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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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금마가 원래 되게 큰 도시였잖아요?

A1: 어 금마읍, 금마저라고 했어 금마저, 금마읍 읍이라 했어 익산읍내, 여산읍내.

B2: 기차가 들어오면서 이리가 생겼잖아요. 그런 면에서 막 바뀌고 그런 것이 있었나요?

A1: 애초에는 기찻길이 금마를 통해서 오게 되있었어 용산서 해가지고 여산으로 금마로 통해서 내려갈라고 했었디야 남쪽에 기찻길을 그랬었는데 양반내가 거부를 많이 하니까 시끄럽다고 해가지고 등 돌려서 함열로 황등되서 그렇게 됐다네.

B2: 아--시끄럽다고 해가지고요?

A1: 어 그래서 고을이 유교사상이 심해다는 얘기 아니여 양반 사대부 사상이 심했다 이거야 고을은 양반이 그래가꼬 그러고 이..‘소세양’이라고 하는 시집 봤어 안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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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럼 아까 ‘오작골’은 왜 ‘오작골’이라고 불렀나요?

A1: ‘오죽골’이라고 그려 ‘오죽골’이라고 근게 오죽이 많다고해서 ‘오죽골’이야 다섯오자 ‘오죽골’이야 ‘오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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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익산 ‘소세양’ 어르신 있잖아.

B2: 예 ‘소세양’ 어르신.

A1: 문장가 ‘양곡 소세양’ 그래가꼬 여기서 이.. 시구절에 여기 두매골이라는 곳에 살았어 두매골 도천마을 살아가지고 이 양반이 이렇게 시집을 냈다 이 양반이 문장가로서 그전에 사신으로 또 중국까지 갔다 왔고 ‘황진이’와 내사가.

B1: ‘황진이’ 이야기 좀 더 자세히 부탁드리겠습니다.

A1: 상대의 명인으로서 문인으로서 (책 읽은 내용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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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오죽현? ‘오자골’ 이야기했어? ‘오자골’ 이야기는 그 ‘다박돌나무’로 ‘해방등이나무’에서 그 뒤에가서 ‘오자골’이라는 제실이 크게 있었어 ‘소참전’에 그 제실이 근데 다 부셔졌어 그런데 ‘오작골’이 아니라 ‘오자골’ 다섯오자 아들자자 오자골 그러는디 ‘오죽골’이여 ‘오죽골’ 대죽자 다섯오자 대죽자 검을오자 해가지고 ‘오죽골’ 근데 거그가서 상민이 살았었어 아들들이 부자니까 머슴살고 가마지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

B1: 그럼 혹시 어르신 이 마을에도 오래되고 좀 유명한 바위나 샘 같은 것이 있나요?

A1: 여기는 ‘뜬바위’라고 있어 도끼니 도끼 알지 그 뒤에가 ‘뜬바위’ 있잖아 유명하잖아 ‘뜬바위’ 여기는 없어.

B1: 피부병이나 그런데 좋다하는 샘 같은 것도 없었나요?

A1: 샘은 ‘오시암’이라고 하는데 여긴 ‘오시암’은 없어 ‘오시암’은 없고 ‘오시암’은 ‘왕궁면’에 가면 있는데 왕궁에 ‘오시암’.

B2: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A1: 나 37년생이여 소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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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혹시 그러면 이 근처 이 마을 논이라던가 밭이라던가 뭐라고 불렀나요?

A1: 앞에 논은 여기 앞이 그런 밭들라든지 ‘순들이’라고 하고 ‘순들이’ ‘석굴뱅이’라하고 그런 별 이름은 없어 ‘사래들이’라고 하고 물 들을 다 매야서 물이 내려와서 살에 이러고.

B2: 감사합니다.

비고

면담장소 : 금마 용순마을 소선영씨 자택
면담시간 : 2012년 8월 10일 10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용순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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