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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금마면

황각마을1

구술일: 2012년 8월 9일
구술자: 이상제(1949년생)·남, 김종호(1941년생)·남, 박노철(1949년생)·남
면담자: 장윤준,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이야기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지붕이 누런 초가집이 많아서 황각이라고 했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빈대절터: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빈대가 많아서 망한 절터라고 지어진 이름이다.
- 퉁퉁바위: 밟으면 쿵쿵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전설 및 민담
- 등잔바위: 남자를 기다리다 돌 위에서 떨어져 죽은 이야기이다.
- 상원사: 상원사 절에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시기해서 사람을 밀어넣어 죽였다고 한다.
- 수석바위: '유상곡수'라고 써있는 바위의 명칭이다.
- 일간정: 마을 정자 앞 논에 있었던 정자이다.
- 하서대: 농민들이 호미를 놓고 쉬었다는 장소이다.
- 수석바위 : 경주의 '포석정'처럼 마을에 물이 흐르는데 수석바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반대편에는 농민들이 일을 하고 쉬는 '하새대'가 있는데, 양반과 농민의 격차가 한눈에 보이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 항복골 : 적이 처들어와서 왕이 싸우다가 '독점', '황각', '동막골'를 거쳐 도망가다 '황동'가서 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항복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일본인이 명당자리를 폭파하니 도로에서 피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4) 민속
- 매봉제: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 무제봉: 금마면 전체에서 비가 안오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 고름장터: 고려장을 했다는 곳이다.

5) 철도이야기
- 기찻길: 기찻길이 숯고개를 지나가려고 했는데 소씨들이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찻길이 다른 곳으로 놓였다고 전해진다.

문헌 내용

익산에서 제일 명승지라 이르는 경치 좋은 곳으로 익산 구지에도 “사시 풍경이 입과 붓으로 다 형용할 수 없어 시인 묵객이 끊이지 않는다” 하였다. 황각동은 중국에서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황학루(黃鶴樓, 黃閣)에서 취한 명칭이다.

황각동 계곡
신용리 황각동의 용화산 서쪽 기슭에 있는 이 계곡은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이상제 (64) 1949년
A2 김종호 (72) 1941년
A3 박노철 (64) 1949년


B1 장윤준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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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거기 기왓장이 나오고 그랫자나요 나도 들은 이야기인디 거기 권씨네 집에 딸이 이쁜 딸이 있어가꼬 서울서 과거 시험을 봐가꼬 이 도로가 이 아리랑 고개에서 한양을 그리가서 한양길이지 저수지에서 그 사람이 성공을 해가꼬 암행어사 벼슬을 가꼬 길을 내면서 온게 이 여자 처녀가 시집을 안가고 있다가 저기서 여기서 떨어져서 자살해 죽었다는 그런 이야기여.

B1: 아 여기서요?

A2: 응 이 돌에서 이 위에 올라가서 저기 저기서.

B1: 옛 연인이 벼슬을 했는데...

A2: 응응 그렇지 옛 남자가 이 그래서 한양길 한양에서부터 길이 내려와가꼬 이 이게 옛날의 ‘한양길’이여 이게 역사가 있는 길이여.

B1: 그럼 이 바위에서 그 처녀가...

A2: 그 처자가 치다보다가 말하자면 신문에 내보 낸게 보고 여자가 치다 본거여 오는거 내려오나 안 내려오나 그 날혀서 자우간 자살혀 떨어진게 여기 순 바우인게 죽은 거여.

B2: 아 그럼 처녀가 떨어져서 죽었다는 그 바위가 어디 있나요?

A2: 아 그 위 바위 올라가서 저 길이 보이자나.

B2: 처녀가 뛰어내렸다는 바위 이름이 뭔가요?

A1: ‘등잔바위’라니까!

A2: ‘등잔바우’라고 해요 우리는 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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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처녀가 어느...

A1: 그러니까는 이 형님이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고 하자나 긍게 들은 이야기가 차이가 있어 그런게 문자를 냄겨 놓으면 지금 그걸 헌다고하자나 그러니까 문자를 냄겨 놓으려면 우리 한 마을에 살아도 나이가 든게 말이 틀리자나 들은 이야기가 그러면 내가 듣기로는 여그가 쉽게 말하자면 노씨 집성촌이여 옛날에는 지금도 황각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집성촌 마을이 많이 있어 지금도 옛 거시기가 그대로 살아가꼬 왜냐하면 전준 이씨면 전준이씨 김해 김씨면 김해 김씨 그 고적이 그냥 아주 그 성씨로만 그냥 짐정적으로 이루어져있어 그래서 여기가 노씨 집성촌이었는데 여그기 일반정이야 여기 정각자리가 있어 그러면 그 정각에서 저그를 지금 아리랑고개 가는길 아까 1번국도라고 했지? 거기를 보면 훤이 보야 그 정각에서 보이며는 저 도로가 보인다고 그러며는 거그서 쉽게 말하자면 그 노씨 처녀 한 분이 이 아래 금마인가 김제인가 어디 사는 사람 그 공부하는 사람을 사모하는 사람이 있었데 근데 그분이 그 속안은 쌍놈이다 해가꼬 절대 집안에서 허락을 안 해줘 집성촌이라 그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 할아버지랑 대손들이 많을 거 아니여 그니까 허락을 안 해줘 그러니까는 그 사람이 벼슬하고 내려가면서 그 사람 보고서는 집안에서 반대 했다고 그 사람은 벼슬했는데... 그것 뿐이에요 그래서 여그가 처녀 귀신이 나오고.

B2: 처녀 귀신은 어디서 봤어요?

A1: 여그서 떨어 졌은 게 처녀귀인이 나온다 이거여.

B3: 벼슬하려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떨어졌다는 이야기 인가요?

A1: 아니 내려왔지 상을 줬어 근게 여그가 지금도 여기보고 일건정이라고 하고 저그가 상근론이 있고 지금 여기대로하면 그 사람이 뭐 소가(家) 내들 되 가꼬 뭐 여그와서 자그네들 소씨들 뭐 할아버지가 뭐했다 글씨를 써놓고 관광관리로 새겨 놓고 관리해놓고 뭐 조화 등을 해놓고 그런 걸 그 사람이 했다고 혀.

B3: 아 소씨가요?

A1: 아! 인제 저 글 씨랑을 자기들이 했겠지 그 사람들이.

B2: 그럼 벼슬을 하고 내려온 사람이 소씨겠네요?

A1: 그렇지.

A3: 소씨가 했다고?

A1: 소씨가 내려오면서 상을 줬다고.

A3: 누가 그려?

B2: 어르신은 다른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A1: 그러니까 각자 이야기가 다 틀리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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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이 주변에 ‘상원사’라고 절이 있었다고 하던데 아시는지요?

A2: 여 여그 넘어고 이 앞산 넘어.

B3: 혹시 ‘상원사’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A2: 거기 절이 절이 있었을 텐디.

A1: 저기도(다른 쪽을 가르키며) 절이 있었지.

B3: 다른 곳에도 있었나요?

A1: 거기는 ‘빈대절터’라고 했디야.

B3: 왜 ‘빈대절터’인가요?

A1: 빈대가 원채 많아 가꼬 사람이 살 수가 없었디야 그러니까 망했디야.

A2: 옛날에는 빈가 많았어 지금 젊은 층 들은 빈대 뭐 이 같은거 벼룩 몰르지 옛날에는 장판을 뜯으면 벼룩이 벌턱벌턱 해서 많았어.

A1: 그리고 거기다 누가 절을 지을려고 무속인들이 지사도 지내고 뭣허고 했었어 다시 복원을 하려고 근디 그게 허가가 나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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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러면 ‘상원사’에 대하신 것은 들어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A2: '상원사'는 우리가 잘 모르지.

A1: 근데 여기 거시기 한다면 우리가 글 공부 하러다니 던 곳이여.

B3: 아 ‘상원사’ 가는 길이요?

A1: 응 거기 말하자면 그러드라고 쉽게 이야기 하자면 서당가면 공부를 많이 하자나? 지금 학생들 만코롬 근데 누가 질투하는 사람이 있어가지고 쉽게 이야기 하자면 뭐야 똥통! 변기통 옛날에는 재래식이자나 거기다 그 사람을 죽여버렸데 그래서 그 절터가 망했다는 말이지.

B3: ‘상원사’ 절이요?

A1: 응 ‘상원사’ 절.

A2: 빈대 때문이라고 하든데?

A1: 이거 이거 여기 ‘용화산’ 그건 ‘빈대절터’ 이고.

B2: 그러면 누가 누구를 죽인지 아시는 지요?

A1: 그거는 누가 했는지 알어 공부하는 학생을 아이 지금 말하면 왕따고 뭐고 있자나 지금 말로 허자면 근데 그런 뭔가가 있었나봐 뭔가 시기를 하던 놈이 있가지고 그놈 한 사람을, 그런 설화가 많자나 아까 금방 이야기대로 떨어져서 처녀귀신 나왔다고.

B2: 그러면 ‘상원사’와 ‘빈대절터’는 어디 있었나요?

A1: ‘빈대절터’는 저그 저 옴팍 들어 갔자녀 저기 있자녀 그 바로 이 짝에 있어.

A2: ‘용화산’이라고 혀 ‘용화산’.

A1: 인자 거기를 ‘퉁퉁바우’ 밑이라고 혀.

B2: 어디 밑에요?

A2: 저그 자락을 ‘둥퉁바우’라고 혀.

A1: 거기 가서 절터 보면 나와.

B3: ‘등통바우’요?

A1: 아 ‘쿵쿵바우’ 돌 위에 서 있으면 쿵쿵 울려 거기가.

B3: 사람이 밟으면 그 쿵쿵 울리는 바위가 있다는 건가요?

A2: 아니여 인자 그렇게 부른다고.

A1: 아 서당 거시기하면 쿵쿵 울리자너 그런 식으로.

A2: 절도 거기 지을 적에 물이 없어서 그 ‘쿵쿵바우’라는 샴이 있어 어릴 때 그 물이 달아서 먹고 그랬는디 그 물 지금은 안 나올 걸.

B2: 그 절터는 아직 남아있나요?

A2: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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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그러면 ‘매봉제’는 들어 보셨나요?

A1: ‘매봉제’는 저쪽.

A2: 이 바로 뒤에 있는 산이 ‘매봉제’요.

B2: 그럼 왜 ‘매봉제’라고 불렀나요?

A2: 아 이제 옛날에 그렇게 불렀어 산 이름을 요 ‘앞산’이고 다 그렇게 지어 놓았어 여 뒤에는 ‘뒷골’이라고 하고 이름을 다 그렇게 지어 놓았자녀 동네 이름도 다 지어져 있자녀 그런 식이랑 똑같혀 인제 그런 걸 다 알려면 지도 보는 사람이나 잘알지.

A3: ‘매봉제’라는 말은 그전에 비가 안 오면 이 동네에서는 이 산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어 기우제를 모셔가지고 그래서 ‘매봉제’라고.

B2: 기우제는 무제라고 하자나요.

A3: 그렇지.

B2: 그럼 왜 ‘무제봉’이라고 안 하고 ‘매봉제’라고 했나요?

A2: ‘무제봉’은 저기 있어 미륵 산에.

A3: 금마면 전체가 기우제를 모실 때는 거그가 모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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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어릴 때 자주 놀러가신 곳이 있나요?

A2: 우리 어릴 때는 놀러갈 때도 없고 저 용화산 넘어가면 ‘굴바우’라고 있고 저 가면 ‘신국사’있고 저 가면 ‘사자암’ 있고 그런디나 놀러 다녔지.

B2: ‘굴바우’가 어디에 있나요?

A2: ‘굴바우’가 저기여 샴골.

A1: 용화산에 딸려 있지 원수리 원수리.

A2: 지금 문화재 뭐 지어놓고 찍고 그러자녀 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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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황각동’이 중국의 명소지와 관련있다고 들었는데요?

A2: 나도 이제 그런 걸 몰러.

A3: 이 ‘황각동’ 이라는 말은 그 쉽게 말하면 중국에 가면 ‘황학루’라고 아주 경치 좋은 데가 있데 그래서 그 ‘황학루’라는 말을 따가지고 ‘황각동’이라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가 경치가 좋았어 지금 200년 전에 그 이조 말에 익산 원님이 저술한 ‘금마지’라는 책이 있어 진짜 지금도 있어 거기에 보면 금마에 경치 좋은 데가 여그가 나와 이 동네가 이 동네가 나오고 ‘사자암’이 나오고 ‘사자암’에 가보면 바위가 서 있는데 사람이 비껴서 들어 가야해 반듯이는 못가고 그 전에 거기가 노송 같은게 산림이 많이 우거저서 좋았고 여그도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 까지 노송이 만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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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렇게 경치가 좋아서...

A3: 그래서 여기가 우리가 어릴 적에는 ‘수숙바우’라고 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수숙’이 아니라 ‘수석바위’라는 말이 맞지 않나, ‘수석바위’라는 바위라는 그 뜻이 우리 방언으로 ‘수숙바우’라고 보통 그렇게 한 것 같어 그 말을 허자면 저기에 가면(마을 정자 앞 냇물) 저 글씨에 ‘유상곡수’라고 써져있어 근데 글자 하나가 ‘유’자가 흐를 류자 인데 필기하면 ‘流’ 인데 저기에 가면 여기에 점이 없다는 거여 아예 안 팠어 옥편에도 찾아보면 점이 있는데 점이 없다는 것 그런데도 ‘유상곡수’라고, 왜 여기가 이조 말에 익산 원님이 경치가 좋았다고 했냐면 이 논 위에 ‘일간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어 지금도 등기권에 나와 있다고 해 등기권에 ‘일간정’이라는 등기가 있다고 해 근데 이 논이 없었겠지 옛날에는 그래서 이 논이 없으면 이 경주에 ‘포석정’처럼 물이 굽어 흘렀다는 거여 그래서 양반들이 ‘일간정’에서 시를 읊는다 든지 인제 시조를 읊고 시를 쓰고 허다가 이 밑에 가서 술을 하시는데 물이 옛날에 나무가 많이 우거졌을 때 물이 안 마르고 이렇게 계속 흘렀을 것 아니여 그래서 이 술잔을 물에다 띄우면 밑에 있는 술을 받아먹었다는 이 말이여 이 냇가에서 그래서 ‘수석바위’다 포석정처럼 굽어 흘러가지고 이 논이 만들어져서 그것이 안 보이는 것 같어 근데 전해저 내려오는 말로는 그래 그래서 ‘유상곡수’라는 말이 거기에 어울리는 글씨여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쪽에는 양반들이 말하자면 양반들이 정자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하다가 술잔을 띄워서 풍류를 즐겼는데 여기에 보면 ‘하서대’라는 말이 써있어, 그게 뭔 말인 고니 이 가운데 있는 말이 호미 서자여 호미 괭이 이쪽에서는 양반들이 시조를 읊고 술을 마시면서 풍류를 즐겼는데 여기는 농부들이 일을 하다가 옛날에는 호미로 논 풀을 메었자나 농부들이 일하고 땀을 흘리고 와서 호미를 놓고 쉬는 자리가 ‘하서대’라는 것이야 그래서 여기는 양반과 농민의 격차가 한눈에 다 보여 글씨로.

B3: 그럼 이 마을은 양반도 많고 상당이 컸었나요?

A3: 크게 양반은 안 살고 그때 이조 말에 공주에 원님이 낙향해서 이 동네서 와 살았어 원 이름이 호가 별주부여 의령 남씨고 남씨라는 것만 우리 선조가 있어 의령 남씨라는 것만 알고 이름은 나도 몰라 근데 지금 여기에 보면 ‘황각동’이 나오는 이 글씨나 글씨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데 이분이 와서 낙향해서 여기 와서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분이 와서 이 ‘하서대’나 ‘유상곡수’나 머리가 아주 좋았데.

B2: 그러면 어르신 이런 이야기는 언제 들으셨나요?

A3: 우리 아버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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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러면 아버님도 여기에서 계속 토박이셨나요?

A3: 그렇지 내가 여기 5대째 살어 한 번지에 금마면 신용리 111번지에 내가 5대째 살어 그리고 의령 남씨가 우리 바로 옆집 살았었는데 말하자면 우리하고 사돈지간이여 옛날 사돈지간 이었어 그래서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생각해봐도 이 글을 이 동네에 살면서 적을 만 한 분은 이분이 아닌가 그리고 그 ‘금마지’라는 지금 한 200년 지금도 내가 사본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 보면 익산에 토박이 말하자면 권리 실세들이 이조 500년 마지막이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여기 전준 이씨가 많이 살어 이 금마에도 전준 이씨가 많이 사는데 그 전준 이씨 왕족보다도 소씨가 실세야 진주 소씨 진주 소씨라고 하면 당나라 소정방이 후손들이여 근데 지금 땅을 보면 전준 이씨 보담도 소씨들 땅이 훨씬 많아.

B2: 그럼 이 동네에도 소씨들이 많이 살고 있나요?

A3: 여기는 이 동네는 없어 없고 이 금마 전체 금마 왕궁 삼기까지에 익산의 주류 이조 말에 실세들은 익산에서 전준 이씨가 아니라 진주 소씨여 내말이 믿어지나 안 맞는가 찾아가서 한번 ‘금마지’라는 책을 보면 거희 다 소씨여 그것을 내가 왜 가지고 있노니 거기에 내가 순천 박씨인데 그 ‘금마지’에 보면 우리 17대손 할아버진 형제분이 무과에 급제 한 것이 있어 그래서 형제분이 무과에 급제를 하고 임금한테 하사 받은 땅이 있어 근데 소씨들이 얼마나 땅이 많은 고니 무지무지허게 많어 좀 좋은 자리 전준 이씨 보다도 소씨들 땅이 많아 아니 여기만 있는게 아니라 왕궁 미륵산 그쪽에도 많고 저쪽 미륵국민학교 있는데도 많고 엄청나게 많어 말하자면 명당자리 좋은 자리는 소씨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익산의 실세는 소씨여 지금도 현대 사회 들어와서는 이 소씨들이 많이 잘된 사람이 변호사가 있어 나머지는 별로 큰 사람은 없는디 전통 야당 출신들 이 사람들이 똘똘 잘 뭉친다고 전국적으로 보면 소씨 집성촌이 여기 익산이라고 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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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아까 여기 어르신이 말씀하신 ‘상원사’절 이야기는 아시는지요?

A3: 그것인 인자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지 않나 정확성은 없고 지금도 가면 그 ‘상원사’에 주춧돌 같은 것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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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금마 주변에 여우가 많이 살았던 것 같은데 여우에 관련해서 아는 이야기는 있으신지요?

A3: 그런 이야기는 없어, 여기가 경치가 좋았다는 말은 맞을 것 같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 이쪽 산 넘어 여산에 내 외가가 있는데 거기를 걸어 다녔었거든 1∼2학년 때나 3학년 때나 그럴 떄 보며는 노송들이 꽉 차있었거든 그러면 산세가 좋고 물이 깨끗하고 우리가 어릴 때까지 이 냇물을 마시고 살았으니까 그래서 ‘금마지’에 나오는 경치가 아름다운 익산의 한 장소라는 말이 맞는 말이여 내 생각에는 머리에 생각해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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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항복골’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A3: 들어봤지 그 종합 공원 있는데 지금 서동공원이라고 하지 서동공원 안쪽에.

B3: 그럼 왜 ‘항복골’이라고 하는지 아시는지요?

A3: 그거는 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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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릴 적에 아프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셨나요?

A3: 돈 있는 사람은 보약 같은 것을 먹고 평소에 잘 먹고 살지만 없는 사람은 아프고 보약도 못 먹고 굶주리며 살고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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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선잠바위’라고 들어보셨어요?

A3: ‘선잠’이라는 것은 들었어도 ‘선잠’이라는 것은 저 위에가 ‘선잠’인데 바위라는...

A2: ‘선잠’은 저 위에 바위는 없지 무진의 창제에 ‘찬샘물’라고는 있었어.

B2: 샘이요?

A2: 여름에 땀나고 거기서 목욕하고 사람들이 다 거기에서.

B2: 샘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A2: ‘찬샘물’

B2: 혹시 ‘옻샘’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A3: ‘옻샘’은 많아 저기 용정가도 있고 ‘옻샘’이라는 말은 우리 생수가 많이 나오고 그러는데 그렇게 시원하더라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그래서 ‘옻샘’이라고 혀 용정에가면 서동왕자가 태어났다고 해 그 생가있던 자리도 ‘옻샘’이라고 하자나.

B3: ‘올빼미골’은 들어보셨는지요?

A2: 여기 ‘올빼미골’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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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A3: 박노철 65세 49년생, 여기가 풍수지리로 본다면 저쪽 저수지 위에서 본다면 공수부대 저수지 뚝에서 봐두 되고 공수부대 후분 언덕 위에서 봐도 이 동네가 우리 어릴 때는 그때는 초가집이 많았지 누런 초가집이다 누를 황자 자나 옛날에는 누런 집이 많이 있었다 그런 뜻도 되 한문으로 그대로 푼다면 그것이 지금 맞고 중국에 ‘황학루’와 비슷하다 해서 그 말도 무시는 못하는데 아무튼 이 동네가 우리 어릴 때 35세대까지 그 때 살았던 걸로 기억을 해 그때는 한 집에 5∼8명 사니까 동네는 적어도 사람은 많이 살았겠지?

A1: 그치 그때는 많이 살았지.

A3: 이 동네 자랑거리는 여기 이야기 하면 우리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금마지’라는 그 책에 분명이 익산 원이 저술한 책에 기록에 되어있고 그래서 나무가 없으니까 나무만 있으면 괜찮지 그리고 저기 저위에 저수지 그 뚝하고 하면 이 동네 딱 풍수지리 학자들은 ‘좌청룡 우백호‘ 라는 말이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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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아까 말씀하셨던 귀신 이야기 조금 해주실 수 있나요?

A1: 긍게 아까 자도 그러자녀..‘공판제’

B3: ‘공판제’요?

A2: 그리고 아까 노철 그건 모르겄네 여기 ‘항복골’이라는 것은 내가 듣기로는 여기 미륵산 있자나 싸움을 했는디 왕이 이 짝 독쟁이 앞에서만 싸웠거든? 근게 저 짝에서 쳐들어온게 ‘독점’으로 도망가가꼬 ‘황각동’으로 도망가가꼬 ‘동막골’로 도망가서 ‘황동’가서 잡혀서 ‘항복골’이여 그래서 잡혀서 항복해서 ‘항복골’이여 그건 이야기 안 하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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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 길이 이 마을은 지나가지 않았나요?

A2: 여기는 안지나갔어 그래서 거기가서 잡혀서 ‘항복골’이랴 근데 그게 우리는 모르고 그 우리 조부 그분들이 있을 때 물어보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역사를 다 알 수 있지 아까 노철이라는 사람도 가도 이장 질을 헌 사람이고 고등학교 댕기고 그랬으니까 알지 그리고 여기서 이장 질하면서 크고 여기서 저 사돈 아니여 그게 아까 그리 안혀? 남씨라고 내가 이야기 안혀? 의령남씨 사돈 간이여 그게 근게 잘 알지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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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러면 어르신 방금 말씀하셨던 ‘공판제’가 무엇인지요?

A2: 그 역사를 우리가 알아야...

A1: 그러니까 익산이 아까 노철이도 그러자나 이백년 뭐 조선조 500년 그래서 말무렵에 말로 듣기로는 우리는 ‘이원용’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하자나 그 ‘이원용’ 묘가 있어.

A2: 그건 ‘이완용’ 묘가 아니지.

A1: 그 사람이 인자 나라에 역적이 된 것이 관을 해놓고 진짜가 어떤 건지 모르게 그놈을 다 파헤칠까봐 진짜 놈이 어딘지 모르지 송장이 어디 들어가 있는 지는 그러면 그런 식으로 아까 그때만 해도 나무를 기름이 안 거시기 하니까 소나무 송진을 그놈을 쉽기 이야기하면 고무나무 진 빼듯이 그리고 그걸 전부 빼야 그리고 그것을 다 발매를 해가지고 그러면 아까 그 ‘공판제’ 거기서도 그렇게 뒤로 말꼬름 말아 생겼어 이 집 뒤로 이 산으로 그리고 거기서도 그렇고 그러면 막 집대로 옛날에는 명자리를 굉장히 거시기 했거든.

A2: 아 지금이나 옛날이나 똑같혀.

A1: 원래 우리나라는 그것을 명당자리가 많다고 해가지고 쉽게 이야기하자면 쇠로 말을 박았지 여그도 있어 지금으로 말하자면 크레모아여 아 그게 뭐 떡이라고 하는거 그 다이나마이트 그걸 폭발해서 떠내버리는 거야 명당자리를 근디 지금 그것이 맥이 이어진다고 하자나.

A2: 학생들은 그걸 몰라? 일본 놈들이 역사에 지리 같은 걸 보면 머리 영리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생겨서 일본 놈들이 와서 좋은데는 다 떴어 화약으로 저 문화제 독쟁이 저그 가면 있어 산에 거기도 거기다 묘를 쓰면 못 쓰게하고 파내고 그랬어 거기도 푹 떠버렸거든? 여기도 산 넘어가면 길도 매끈한 놈을 일본놈들이 다 끊어버리고.

B2: 그것을 ‘공판제’라고 했다고요?

A2: 아니지 그건.

A1: 거그는 이 넘어가야하고 샴골 쪽으로.

A2: ‘공판제’는 여그가 있는 곳을 ‘공판제’라고 했는디 우리 뭐라고 했는지 뜻도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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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여기 앞에 옛날에 서울로 가는 길이 있었자나요 그러면 다른 지역 사람 왕래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A1: 아 그럼 삼봉리 따라서 다 걸어 다녔지.

A2: 아 이 걸어서 가고 그랬지 시험 보러 과거 보러갈때도 걸어가고 그랬지 저 금마 저수지 가운데로 해서.

A1: 근데 여기 여기 앞에 나오는 길이 있지? 구부러진데 원래 거기서 일본 놈들이 헐 때 피가 흘렀데 그 산길을 끊을 때.

A2: 내가 TV를 본게 그 그런 이야기를 하더만 일본 사람들 살던 집을 전국에서 정부에서 보수를 다 해준다는 것이여 그게 뭐하는 짓인가 나는 알 수가 없어 그게 왜그러는거여 이게.

B2: 어르신 도로에서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 인지요?

A2: 아 그런게 있었어 여기 숯고개라고 있자너 숯고개라고 몰라? 그 맥을 끊을 때 피가 나왔다고 그려.

B2: 어디서 피가 나왔데요?

A2: 피가 나왔 것어 인자 그런 현상으로 이야기한거지.

A1: 사람이 상상해서 이야기 한거지.

A2: 그런 생명을 끊었다는 거지.

A1: 구랭이가 나왔니 뭐네 그런 별 이야기가.

B2: 그러면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나요?

A2: 다 그렇티야 이놈 저놈 그 사람들이 실제로 화약으로 치고 다닌 놈은 우리도 그걸 다 알어.

A1: 아 여기 미륵탑 봐봐 그 일본 놈들이 그 세면 발라 놓았다고 하자녀 그 증거물이 국민학교 댕길 때만 해도 그것이 있었어 근디 지금 완전 철거 시켰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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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기찻길이 생기면서 뭐 변하 된 것은 없었는지요?

A1: 그것을 예를 들면 기찻길을 뚫으면 막 뚫자나 빠르고 편리하자나 근데 그것을 원체 반대한 것이여 그 숯고개 거기 어디께 우리 소가(家) 내들이 거기가 다 그 사람들 땅이었어 근디 그 산맥 ‘좌청룡 우백호’도 나오지만 그런 거시기를 주령을 끊어 놓아버리면 거시기 한다 근게 군은 안 된다 해가지고 그 사람들이 우리 이장이 그랬디야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와가지고 도장 찍어주지 말라고.

A2: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이 그려 지금은 끊은 것이 다 메워지니까 살아난다고 안혀 옛날에는 지리 같은 것도 많이 보고 하자녀 인제 그런 이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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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에서 도깨비나 귀신같은 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세요?

A1: 인제 그런 것은 하도 거시기 했싸니까 호기심이 많고 학생 때 그러니까는 거기를 직접 가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직접 쫓아가 날이 어둑한 날이 있자나 나무도 그 썩은 것이 발광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는 뭐 처녀귀신이다 해가지고 가보자고 거시기 했더니 안 간다고 그래도 다른데 가봤으니까 가보자고 그래서 가만히 서있는 소나무들이 달에 빛나서 그래서 그걸 보고 벌벌 떨고 무슨 놈의 처녀귀신이여 그게 내가 직접 가서 호기심에 그런데를 직접 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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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대 명당자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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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아까 아리랑 고개에서 귀신 나오고 했다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A1: 아 그것은 최근 이야기고.

A1: 삼봉리 사람들이 금마장을 댕기면 거기가 집이 한 가구도 없어 근데 바람이 불어서 대가리로 흙이 떨어졌나 모르는디 모래가 대가리에 떨어진게 그래서 귀신 이야기가 나온 거지 귀신 본 사람이 어디 있어 지금 누가 귀신을 봤디야.

A1: 근게 지금은 나처럼 흙을 찌끄리고 하는 것은 여기 가재가 많다고 했지 이장이 금방 그 가재를 횃불을 들고 가재를 가지고 그놈 저수지가서 그전에는 뱀장어도 올라왔어 참게가 올라왔고.

A2: 뱀장어도 잡고 참게도 잡고 했어...

A1: 그러면 횃불을 들고 올라가다가 불을 껐어 근데 누가 그렇게 모래를 찌끄려 근데 그게 겁이 나지 지금은 라이터 있고 그러지만 달밤에 얼마나 무서 그런데 ‘게오레기’라는 것이 있어 고양이과에 속하는 ‘게오레기’는 뭐 ‘불호랭’이라고도 하고 그때 말로 그러고 했었지.

A2: 고양이보다는 커.

A1: 근데 그것이 그게 막 여수가 사람 홀려 먹을 때 정신을 빼먹고 거시기 한다고 했짜나 그러듯이 그것이 사람을 정신을 빼 버린게 모래를 찌끄리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 그러는디 ‘게오레기’가 거시기 한다고 모래 찌끄린다고.

B3: 어디서 모래를 찌끄린다고요?

A1: 그게 막 개울 있자나 그걸 막 파.

A2: 아 인자 바람에 날라 댕기다 사람에 맞는 거지 인자.

B3: 아 그러니까 ‘게오라기’가 땅을 파는데 그것이 바람에 날려서 사람들이 맞는다고요? 그래서 그것 보고 귀신이라고 했었다고요?

A1: 그렇지.

A2: 그것이 어떻게 발로 주머니에 흙을 쥐어서 찌끄리겄어 발로 막 파헤친게 날라 와서 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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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A1: 그 늦게까지 저기에가 상여집이 있었어 저 ‘상원사’ 올라가는디 거기는 무서워서 빨리 걸어가고 그랬지.

A2: 무서워서 귀신 난다고 막 도망가고 그랬지.

A1: 애장 같은 거 얘기 어린 얘기 단지에다 넣어 갔고 돌로 눌러놓고 그런 거 고름장은 사람을 산체로 쉽게 이야기하면 뭐여 굴 파가지고 먹을 것 며칠 넣어 놓고 뭐여 그런 거 있자녀.


A2: 고름장이여 고름장 옛날에 달리 없어 진게 아니여 거 역사에 나오는 보면 아 지 아부지가 지 할머니가 솔찬히 손자가 컸는디 할머니를 지게에다 짊어지고 설설 가는데 따라가 본게 지 할머니를 산에 다가 굴을 파놓고 거기 따가 할머니를 넣어 놓고 터덜터덜 온게 오다가 지 아버지가 지게를 내버린게 손자가 “지게를 짊어지고 가야겠소” 왜 그러냐 그런게 나도 아부지 거시기 하면 해야겠다고 그러니까 당장에 그래서 그 고려장이 없어졌디야.

B2: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으셨나요?

A2: 정부에서 이제 못하게 한 것이죠 고려장을 나이 먹으면 고려장을 했어 고름장을 인제 굴을 파놓고 먹을 것을 가따줘 고놈 먹으면 죽는 거여 거기서.

A1: 지금 그 고려장 터가 산성 밑에 골자기에 있었어 고름장터가 있었어.

B3: 마을에요?

A2: 아니 산에 산에 다가 근데 몰라 지금 나이를 많이 잡숴갔고 지금이서 치매 들렸다고 하자나 지금은 인자 돈 받고 치료해주는 사람들 많자녀 옛날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정부에서 아무 말도 없고 그러니까 고름장을 시켜 그니까 ‘산고름장’이여.

A1: ‘산송장’이여.

A2: 산사람을 짊어다가 거기다가 파서 먹을 것을 넣어준다고 그놈 먹고 돌아가시라고.

A1: 그 먹으라고 넣어 놓았던 그릇이 지금이 뭐 고려장터에서 나온 뭐 고려자기가 뭐니 다 그 이야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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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A1: 이상제 49년생.

A2: 김종호 72세.

B2: 감사합니다 어르신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비고

면담장소 : 금마 황각마을 정자
면담시간 : 2012년 8월 9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황각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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