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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왕궁면

궁평마을2

구술일: 2012년 8월 18일
구술자: 이분님(1941년생)·여, 노금순(1929년생)·여, 최보임(1928년생)·여
면담자: 장윤준,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궁녀들이 살아서 궁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섬들: 예전에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호꼬무랭이: 호전마을에 가는 길 중에 신장로를 돌아가는 길목을 부르는 명칭이다.
- 창뜰: 창을 놓는 무기고 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푸세미: 말 먹이를 저장해 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기와골: 옛날에 기와를 구었던 장소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전설 및 민담
- 도깨비 불: 여자들이 생리를 하면 그 생리혈이 빗자루에 묻어 도깨비 불이 된다고 한다.
- 구렁이: 신정마을 어느 집에서 집을 헐다가 구렁이가 나왔는데 그것을 잡아 먹어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 불덩이가 떨어지면 사람이 죽는다: 둥글둥글한 불덩이가 굴러가면 그쪽에 있는 노인이 죽는다고 한다.
- 깨죽나무를 베면 사람이 죽는다: 깨죽나무가 마을 뒤산에 많은데 그것을 베면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 제석사지: 나무 목탑만 나왔다고 한다.
- 징이야기: 마을의 징을 제국 시대 때 뺏어 갔다고 한다.
- 마을 금기: 아침일찍 여자가 다른 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한다. 대보름날 키 작은 사람이 삼밭에 들어가면 삼이 안 크고 키 큰 사람이 들어가야 삼이 잘 큰다는 민담이 전해진다.
- 옛말: "왕금은 왕궁놈들 궁뜰은 양반들"

4) 민속
- 기세배: 주변 마을과 함께 기세배를 했었다고 한다.
- 칠월칠석날: 마을에 우물을 청소하고 잔치도 했다고 한다.
- 기우제: 비가 안오면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 아이 무덤: 예전에 아이가 죽으면 여우 때문에 시체를 동이 안에 넣고 묻었다.
- 치료: 아이가 아프면 오줌을 받아 먹이거나 담방약이라고 하는 것을 먹였다.
- 더위팔기: 더위 팔기 놀이도 했다.

문헌 내용

궁평은 ‘궁뜰’이라 한다. 이곳에는 백제 무왕대에 제석사라는 절이 있었다. 서편의 나지막한 구릉에 지금도 제석사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제석사는 제석천을 주존으로 모시고 신앙한다. 제석천이 안주하고 있는 곳을 제석궁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궁평은 왕도의 왕궁과 관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제석사지와 관련된 이름이다.
궁평마을은 남양홍씨 집성촌이다. 궁평마을 전체인구의 70~80%가 남양홍씨 가문이 차지하고 있다.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이분님 (72) 1941년
A2 노금순 (84) 1929년
A3 최보임 (85) 1928년



B1 장윤준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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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머님 어디서 시집 오셨나요?

A1: 원 고향은 충청도 영동에 살았어.

B3: 예전에 아이들이 주로 어디서 놀았나요?

A1: 어서 놀았냐고? 저그 동산에서 놀았지.

B3: 동산에서 놀았다고요?

A1: 애들이 그러 드라고 애들도 많더라고 여그 오니까 집도 한 80여 가구 되고 이 마을이 학생들도 많고 막 초등학교도 갈려면 막 척 하니 줄서서 겁나게 갔어.

B3: 줄서서 갔나요?

A1: 줄서서.

A3: 왜정 때라 줄서서 가야지.
A1: 인자 좌측통행 하라고 해가지고 학교서 철저히 저기 해가지고 애들을 그렇게 하고 가드라고.

B3: 어디까지요?

A1: 저그 소재지.

B3: 그 가는 길을 뭐라고 했었나요? 무슨 고개라 든지...

A2: 고개는 없어 여그는.

A1: 아 고개는 고개지.

B3: 무슨 고개라고 했는데요?

A1: 그냥 ‘궁평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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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러면 아이들이 놀던 동산을 뭐라고 불렀나요?

A1: 저기 소나무 있는디? 이 거그가 소나무 밑에가 성준 이씨 그 선대 할아버지가 계셨 었어 그 전에는 거그가 있어가지고 발굴지역으로 이게 인정받아가지고 발굴 할 때 딴대로 이장해서 모셔갔어 그 거기서 애들이 많이 놀고 요그 동산에서 많이 놀고 그러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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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 무덤 있는 데가 무서운데도 놀았나요? 예전에는 도깨비도 나온다고 하자나요.

A1: 그전에는 그런 소문도 있었어 요 밑에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고 근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 였어 도깨비불은 사람의 피로 인해서 그 피가 묻어 가지고 이렇게 불빛이 난다는 거거든.
B2: 어디에 묻어서요?

A1: 그 빗자루나 뭐 그런디 그 먼 여자들은 생리를 하자나 생리를 하며는 그 빗자루를 깔고 앉자녀? 깔고 앉으면 거그가 생리가 묻으면 그게 또 불빛이 비친다고 그랬어 근게 “여자들은 비를 깔지 마라”그랬어 옛날 할머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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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구렁이 이야기 들어보신 것 있으세요?

A1: 아 구렁이는 우리 마을이 아니고 요 밑에 동네 신정마을에 그 이야기도 허도 하는가? 소신섭시네 큰 짚 더미 헐어보니까 거기서 구랭이가 나왔어 짚 더미에서 구렁이가 나오니까 그것을 그 동네 아저씨가 잡았디야 그래 가꼬 죽었어 죽고 그 집 아버지가 인자 그 집을 지을려고 거그를 손 댄 거여 여 가면 큰 집 있어 한옥집 그런게 그 집을 좋게 옛날에 5천 만 원짜리 집을 지으면 큰- 좋은 집이 었어 지어 가꼬 막 그날 풍물치고 사람들이 노는디 아버지가 쓸어져 돌아가셨어 그 집에서 그래서 그것 떄문에 그렇다고 하는디 모르것어.

B3: 옛날에 이 마을에 양반도 많이 살았나요?

A1: 여그가 근게 양반 동네라고 그려 여기에 온 게 내가 고산서 살다 여기를 오니까 고산은 암만해도 인자 타승받이 들이 많이 사니까 처녀 총각들이 그냥 연애도 많이 하고 그랬자녀 여기는 일체 그런 게 없었어 그 마을에서 노래하고 다니는 애들도 없고 인자 한 씨족이 모여 사니까 요 앞에는 성준 이씨 뒤에는 남양 홍씨.

B1: 마을에 명당자리가 있나요?

A1: 여그가 ‘제석면’이었었데 옛날에 ‘제석면’이었는데 지금 이게.. 그런 게 백제시대 때 좀 중요한 저기를 하는 가 발굴을 하는디 뭔가 비치들 않자나 현재 지금 다 흔적이 있자나 요 앞 동네 가면 5층석탑으로 혀서 그 짝으로 지금은 거그는 발굴하고 있어 거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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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마을에 모종이 있었나요?

A1: 있었지 근데 없어 졌어 저 위에 저 위에 있고 저 짝에 있고.

A3: 다 부셔서 없앴어 그 전에는 있었는데 다 부셔졌어.

A2: 다 부서 졌어 비와서.

A1: 부서지고 인쟈 새로 건립 한 거여.

B2: 그 모종이 있던 자리를 뭐라고 불렀나요?

A1: 모종에 놀러가자고 하지 뭐라고혀.

A3: ‘뒤뜸모종’ ‘앞뜸모종’ 그랬디야.

A1: 아 ‘뒤뜸모종’ ‘앞뜸모종’ 그렇게 했지.

A3: 여그는 ‘뒤뜸모종’이고 요는 ‘앞뜸모종’이고.

A1: 그 뭔 기를 들고 막 나 시집 온 게 장구 치고 북치고 막 마을을 돌아 다니 드라고 그리고 집에 와서 빌어주고 잘 되라고 정월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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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궁평’마을에서도 기세배를 했었나봐요?

A1: 어 했었어 그 전에는 그 뭐 기가 뭔 기를 들고 댕기는 것이 있었어 장대 큰대 다가 근디 지금 어디 있나 몰라.

B2: 그러면 다른 마을하고 함께 기세배도 하고 그랬나요?

A1: 그건 안 했어 그냥 여그서 이 동 마을에서만 했어.

A3: 저 아랫동네하고 윗동네하고 맺어가지고 칠석 때 어릴 적에는 풍장 치고 저 짝 동네에서 마주 보고 여그서 마주 보고 그렇게 마주 보고 했다고 하데.

A1: 칠월칠석 날은 막 우물을 다 품었어 깔끔하게 하느라고 옛날에 우물을 둘 가지고 먹고 살았디야 여기 하나 뒤에 하나 ‘뒤뜸샘’ ‘앞뜸샘’ 그렇게.

B3: 옛날에 마을에 부정 탄다고 우물도 푸고 제사도 지냈나요?

A1: 그랬지 여그서 칠석날은 다- 온 동네사람이 싹 모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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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우물에 대한 징 이야기가 있던 데요?

A1: 몰라 그건.

A3: 아직 안 나왔어 아직 발굴 했는디 발굴을 안 했은 게 안 나왔지 징도 안 나왔고 암 것도 안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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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옛날에 마을에서 귀신이나 도깨비 나왔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A1: 몰라 여그서 뭐 불이 떨어지면 불덩어리가 어디서 날라 와 나도 한 번 봤는디 그게 떨어져서 어느 주변으로 그게 떨어지면 그날 그해 사람이 죽는다.

B2: 떨어진 마을에요?

A1: 이 쪽으로 가면 요 쪽으로 할아버지 죽고 이 짝으로도 떨어지면 나도 둥글둥글 가는 거 한 번 봤어 막 불덩이가 굴러가 그러면 노인 양반들이 그 불이 떨어졌다 하면 걱정인거여 내가 죽을 랑가 나한테 그것이 안 올랑가 막 걱정을 헌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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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런데 특이하게 마을에 모종이 두 개가 있네요?

A1: 그래 가꼬 이 짝동 사람을 이 차별이 됬어 이... 길이 있자나 이 짝 사람 따로 저 짝 사람 따로 근디 길 이 쪽 사람들이 더 성공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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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예전에 기우제도 지내고 그랬나요?

A1: 그 전에 기우제 안 지냈어? 비 안 오면 뭐 어떻게 하기는 한 것 같은 데 나 생각이 안 나네.

A3: 당산에다 지사 지낸 다고 했지 뭐 해놓고 그 속에다가 장만 해놓고 절하고.

B1: 당산 나무가 따로 있었나요?

A3: 당산 나무가 아니라 조그만 하게 막을 지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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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아니야 여그도 당산 나무 저 너무 집 뒤로 깨죽나무 그런 게 크더니 그걸 베면 사람이 죽는다고 했어 또 그런 게 안 베어 넘의 당산 내에 있는 깨죽나무는 그리고 당산에 묘도 안 지나가고 사람 죽은 시체도 그 전에는 사람이 나 우리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인디 그렇게 사람이 많이 죽었데 애기가 그러면 이 뒤에 산이 있었다고 하드만? 거기 따가 애기들을 걸어 놓았디야.

B1: 그러면 아이들 시신이 훼손 되지 않나요?

A1: 그런 게 다른 사람이 침범 못하게 그렇게 했디야 옛날에는 맨 애장 살이 디야 다 동을 쓰고 거그다가 사람을 넣어 가지고 애기 죽자나 그러면 동을 두 개를 넣어서 딱 여우가 못 가져가게.

B1: 독이요?

A1: 동이라고 하지 물동이 그면 물동이를 두 개를 가따 가 애기가 죽으면 거기다가 넣어 이렇게 딱 마주 처 놓으면 여우가 못 달라 들지 여그만 아니라 딴 데도 그렇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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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깨죽나무 누가 베었다가 해 당했다고 들어보신 것 있나요?

A1: 못 베게 했지 그 전에는 저 뒤에 가면 그 막 깨죽나무가 쭈-욱 있었어 거글 비면 그날 그 집에 뭔 초상이 난다든지 듣기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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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예전에 아이들이 아프면 어떻게 했나요?

A3: 잔밥도 맥이고 배도 쓰다듬어 주고.

A1: 오줌도 받아서 맥이고 소변도 받아서 맥였어 체하면 엿 질은 멀국도 해서도 먹이고.

A3: 쑥 뿌랭이 같은 것 엿쟁이 뿌랭이 같은 것 캐가지고 찧어가지고 그 새파란 물을 맥이면 좋았지 그게 담배 액이라고 하는 것이야.

A1: ‘담방약’

B3: 그게 무엇이죠?

A1: 그 거시기 쑥 뿌리하고 질갱이 뿌랭이하고 그것 하고 생즙을 내서 엿 지름을 넣고 그렇게 해서 맥이면 개었어 누가 병원 다녔가니 근게 애기가 그렇게 많이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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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주변에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1: 골짜기 이름? 여그는 ‘호꼬무랭이’ 하하 ‘호꼬무랭이’라고 그려 여기 우리 뒤에는 ‘용골’ 또 저그 산천 논은 뭐라고 혀? 별대가 다 있어 또 ‘섬들’이 앞에는 뭐라고 혀? ‘섬들’이는 옛날에 ‘섬들’이 그 마을에 거그를 논을 파니까 뱃조각이 나왔디야 근게 ‘섬들’이라고 지었데 여그가 섬이었다고.

A2: 거그 섬이 있어서 ‘섬들’이고.

B1: ‘호꼬무랭이’는 왜 ‘호꼬무랭이’라고 했나요?

A1: 말이 이상하지 하하하.

A2: 여그서 저 호전을 가면 신장로를 돌아 가자녀 그래서 ‘호꼬무랭이’라고 했는 가벼.

A1: 신장로가 아니라 그 동네를 거쳐서 간다고 오솔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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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제석사지에 대해서 들으신 것이 있나요?

A1: 몰르지 그러지만 거기를 뭐 일본놈 들이랑 저 산을 파면 지금 지금도 봤찌? 그 돌? 그 비석 날맹이 세웠던 것 그것이 있으니까 거그를 파며는 우리 한국사람 3일 먹을 뭐시 나온다더니 개풀 때기도 안 나오고 목탑만 나왔어.

B1: 그 목탑이 벼락을 맞았다고 하던데요?

A1: 나도 거그 가서 나도 그 설명을 들어 봤어 목탑이 나왔는디 그것을 어떻게 팠냐면 깊이 파니까 질흙 있자나 단단 한 질흙을 쌓았어 떡채 마냥 차곡차곡 그렇게 해서 쌓았어 이렇게 그 무지개 떡 싹 썰은 것 마냥 하나는 검정하고 하나는 그 질흙 그렇게 해서 쌓더라고 내가 들어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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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예전에 궁녀들이 많이 살아서 ‘궁평’마을이라고 했다고 하던데요?

A1: 그것도 사람들 말하면 그려 뭐 왕궁은 왕이 살고 궁평은 궁녀가 살고 신정은 신하가 살고.

A2: ‘창뜰’, ‘푸세미’는 그때 옛날에 옛날에 거기다가 ‘푸세미’는 말 먹으라는 풀 그것을 쟁여 놓아서 ‘푸세미’고 ‘창뜰’은 창을 거따 그 곳간에다 쌓아 놓아서 ‘창뜰’이랴.

B1: 마을에 징에 대한 이야기 조금 더 해주세요.

A2: 우물에도 지금 샘도 안 맸자녀.

A1: 그 징 어디로 갔어?

A2: 징은? 징은 인제 제국시대 때 뺏기게 생겼은 게 그 샘에다 넣었어 넣어 가꼬서나 꺼내서 치다가 인자 깨져서 없어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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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그게 그거였어? 그럼 거기 담을 친 게 거기가 새가 금새가 나왔다고 했어 근데 어떤 아저씨가 살아계신 아저씨가 봤는디 누가 가지고 가버렸디야 그 일을 하는데 우물 주변에서 그리고 요 위로 올라가면 기와 구운 자리가 있어 기와를 거그서 기와 굽는 저기가 있어 가지고 여기 기와를 받쳤나봐

B2: 거기를 무엇이라고 했나요?

A1: ‘기와골’ 그 구어서 만든 자기 만들드끼 근디 그 사람들이 발굴하는 사람이 다 파봤더니 기와만 빠글빠글 나오는 거여 그 속에서.

B1: 시집오시고 나서 친정하고 다른 것이 있었나요?

A1: 나는 그게 다르드라고 좀 양반 동네라서 그 샘 미면 재난이 온다고 지금 샘을 안 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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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마을에서 금기시 하는 것이 있었나요?

A1: 아침 일찍에도 누구 집이건 간에 들어가면 안돼 여자는 안 들어가야 하고.

A2: 재수 없다고.

A1: 저 대보름날 키 작은 사람이 들어가면 삼이 안 크고 키 큰 사람이 들어가면 삼이 크고 또 더위를 팔아먹어 가서 불러서 “머시야 니 더위 내 더위 먼 집 더위”하면 그 사람한테 내 더위가 다 간디야 인자 그렇게 했어 하하.

A2: 반심 있는 동네라고 했지.

A1: 맘대로 못 했어 반심 있는 데라고 해서 초 3일 안에는 누구네 집을 가덜 않았어.

B1: 반심이요?

A1: 인자 그 소리는 뭐냐면 양반이 저기라고 쌍놈들의 여자 들이 아니다 저 짝 밑에 동네는 또 쌍놈 동네라고 그려 왕금 사람하고는 결혼다 안 한다고 혀 인자.

A2: 왕금은 왕궁 놈들 궁뜰 양반들 이렇게 불렀어.

A1: 저그 웃두리는 ‘밥치기’마을 가난한 게 밥을 많이 먹은 게 ‘밥치기’마을 ‘일치기’ 어디라고 하드라 내가 하하 별스러운 데가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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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마지막으로 성함하고 연세 좀 여쭈어 봐도 될까요?

A1: 이분님 41년생

A2: 노금순 84세

A3: 최보임 85세

B1: 아 정말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비고

면담장소 : 왕궁 궁평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18일 10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궁평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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