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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왕궁면

신정마을

구술일: 2012년 8월 18일
구술자: 한순전(1938년생)·남, 이태원(1934년생)·남, 김제완(1939년생)·남, 김영규(1933년생)·남, 김명규(1949년생)·남
면담자: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유적, 터 및 기타지명
집성촌 여부 등 확인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섬드리 : 근처에 섬이었던 지역이 있다 해서 이름이 섬드리이다.

3) 기타
-물이야기 : 물이 아주 좋다. 어딜 파도 물이 나와서 거의 한 집 걸러 우물 이 있었다.
-각성바지 : 현재는 각성바지이지만 처음 마을을 세운 것은 합천이씨였고, 그리고 지금은 소씨가 더 많다.

문헌 내용

신정(新井, 신정리) : 새로 판 샘의 물이 좋아 생긴 이름이라 함.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 한순전1938
A2 : 이태원1934
A3 : 김제완1939
A4 : 김영규1933
A5 : 김명규1949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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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새로 생긴지가 새로 생긴 마을이라.

B1 : 우리 동네가 언제 생겼습니까?

A5 : 일정 때도 동네가 있었죠?

A3 : 그 전이었지. 새 신자 우물 정자.

B1 : 그럼 우리 마을에 좋은 우물이 있었습니까?

A5 : 옛날에는 저 우물을 요즘에야 각자 자기 집에서 수돗물로 허는 사람들 있고 자가 저 샘을 파가지고 이 뭐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저 옛날에는 인자 군대군대 인자 파가지고 우물을 파가지고 근데 여기 이 동네는 우물을 팔 수록 물이 좋았대요. 에 물이 깊을 수록 좋았고 또 그 물을 또 많이 여러 사람들이 활용을 했고.

A1 : 옛날에는 샴이 기냥 몇 집 걸러서 거의 거의 한 집이 거의 있다 싶이 다 팠었어요.

B1 : 다른 마을에는 우물이 이렇게 까진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A1 : 우리도 첨엔 세 군대밖에 없었어.

A5 : 왜냐면 그게 팔 능력도 안되고 그러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사용을 했지. 그 뒤로는 인자 좀 더 문화가 발달하면서 작두샘을 이용하다 보니까 각자가 필요한거야 그래서 집집마다 파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 대신 다른 동네는 우물을 파도 깊이 판다던가 해도 물이 잘 안나오고 그랬는데 물 하나는 좋았다고. 그래서 지금도 수리 시설이 잘 되어있는대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파기만 하면은 물이 나오기 때문에 다 각자 이용하고 있다고.

B1 : 그래서 온천 물이 그렇게 나오는 겁니까?

A5 : 나오지 왕궁온천이 나왔잖아. 그 지하수 개발을 혀다가 그 분이 처음에 지하수를 각자 개발하다가 거기 온천을 발견한거여. 왕궁온천이 여기서 한 10키로 8키로 삼례니까 8키로 되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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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우리 동네를 처음 터를 잡으신 어르신은 알고 계십니까?

A4 : 합천 이씨라고 허네. 그 분들이 젤 먼저 터를 잡았다고. 어떻게 왔는가까진 몰르것고.

B1 : 그럼 우리 마을은 각성바지는 아니인 것입니까?

A5 : 아니 여기도 각성바지 촌이여.

A1 : 원래 소씨가 많이 있었어 여그가. 근디 제일 많앴었지 근데 그 이후에는 그냥 지금도 아마 숫자는 제일 많을꺼여 그 중에서도. 그래도 각자 성이 골고루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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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의 형세에 대해서 들어 보신 게 있습니까?

A2 : 아니지 원래 원래는 저 산 산 날이 이게 산이 날이 시방 저리 내려갔지 이게. 약간은 등성이에 있다가 여기 와 있는 것이지. 여기도 원래 참나무 밭이었고 동네가 있었잖여.

A5 : 그니까 저 산세가 여기 약간 나왔잖여 죽허니 여그까지 뻗었다가 그 주변에 인자 집들이 하나썩 들어서고.

A2 : 음 그래서 동네가 커졌지.

A5 : 그 전에는 인자 여그 여 집 이런 집 들 짓기 전에는 주변에가 산에 있는 나무 참나무가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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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럼 우리 마을에 백제시대나 그런 시대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까?

A5 : 뭐 여기 주변에 그런 것은 없고 이 앞에 궁평에 제석사지가 발견되니까 그런건 있지만 이 동네에 대해서는 뭐 크게 그런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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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예전에 이 마을이나 이 부근을 뭐라고 불렀는지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까?

A5 : 에 있지. 예를 들어서 저 저 다리를 홈다리라 그랬거든? 호음다리 호음 부락인디 지금도 호음이래거든 호음부락인데 홈다리라고 불렀지.

A2 : 글자로 해석하믄 좋을 호자하고 소리 음자.

A5 : 허허 아이 우리 어렸을때도 그렇게 불렀고. 저 동네는 탑린데 탑 있는 동네거든? 그래서 탑동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저 동네 앞에가 섬드리라 그랬어. 옛날에는 섬이었다 그러드라고.

A1 : 아니 요기 짚은 데로 그 옛날에 우리 강이다 배가 들어왔다 그려 그래서 거긴 섬이라서 섬드리라고 그려.

A5 : 그래서 배가 이리 들어와서 그래서 섬들이었다고 그렇게만 허더라고.

A3 : 그래서 그 전 어른들 말 들으면 저 앞에 섬드리 있는 동네 앞에 짚은 데서 뱃전 배에서 떨어진 쪼각들 큰 송판 그런것이 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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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이 참 이쁩니다.

A5 : 이 모종도 저 돌아다니다 보면 이 모종이란 데 많잖아요. 근디 이렇게 오래된 모종이 별로 없어. 저기 저 저 쓴거 보면은 지금 단기니 서기니 이렇게 썼을텐데 틀리잖아. 지금은 저런 모종을 다 시에서 관리해주고 해기 때문에 새로 지은 모종들이 많지 요근래. 근디 우리 동네는 지금 재앙이 왔었는데도 이렇게 좋은 모종이 그래서 여다 놔둔거여. 이렇게 아마 왕궁면에서도 드물거여.

A5 : 아 지금잉게 그러지 옛날은 명절때나 칠석때 되면은 서로 교류도 허고. 술도 같이 나눠먹고 술맥이를 하면 그런 것도 허고 그랬었는데 그게 어느날 갑자기 세속화되고 그러면서 없어졌어.

A3 : 옛날에 술맥이를 허면 초청을 다 허젆어. 허는 날 저 동네서도 오고 저 동네도. 그럼 풍물 각자 치면서 뭐 우리 동네서 그 전 고사지냈잖어. 뭐 뭐 마당 가서 다진다고 하고 부엌이니 그 전 옛날 풍물 그것 보고 잡귀잡는다고. 다 고사지내고 그려. 집집마다 하면서 자기네 말하자믄 집에서 허믄 한 잔 먹으라고 한 잔 드시라고 쪼끔 인자 어느정도 쌀을 한 말이 됐든 닷 되가 됐든 내놓잖여. 그런거 내놨다가 걷었다가 동네 자금으로 쓰고. 저 동네 사람들도 왔단말여 초청했응게? 그 사람도 같이 이 동네서 그리 가고 그동네서 지고.

B1 : 기세배도 했습니까?

A3 : 그 큰 기도 다 있지 동네마다. 그래서 미고 그러고 댕겻지.

A5 : 긍게 저 동네가 우리 동네보다 인구수도 많고 커. 그렁게 어른 대접을 해주는거야. 그런 일도 있었는디 그게 지금 없어진지가 오륙년도 넘어.

A1 : 오륙년이 뭐여. 십년도 넘어.

비고

면담장소 : 왕궁 신정마을 모종
면담시간 : 2012년 8월 18일 오후 2시
내용 : 주변 유적 및 터에 대한 지명담, 집성촌 여부에 대한 확인

구술 사진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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