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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왕궁면

온수마을

구술일: 2012년 8월 19일
구술자: 유희수(1950년생)·남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 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이야기
1) 마을 유래담 :
- 지명유래: 벌샘이라는 샘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벌샘: 지명유래는 정확히 모르지만 벌샘 주변에 수초가 자라 꽃이 피었다고 한다.
- 화산봉: 火山 혹은 華山이라는 설이 있다.
- 지압골: 옛날에 장독을 굽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 앵금마을: 새 모양의 금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전설 및 민담
- 벌샘: 벌샘을 메우고 그 위에 모종을 건립 하지 마을 사람들 중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죽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현재 모습으로 복원 했다.
- 귀신: 벌샘에서 한 여자가 빨래질을 하다가 사람이 말을 걸면 우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온수동 수리조합에서도 빨래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면 아무도 없다고 한다.
- 해방꽃: 마을에 해방꽃이 피었다고 한다. 그 해방꽃에 소원도 빌었다고 전해진다.

4) 민속
- 우물제사: 마을사람들이 종종 물을 떠다 놓고 촛불을 켜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칠월칠석: 우물청소를 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잔치를 했다고 한다.

5) 철도이야기
- 삼례역 이용객: 주로 학생이 이용했고 깡아리 장사라고 불리는 봇다리 장사꾼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 치료: 아프거나 그러면 무당이 뱅이라는 부적을 적어 주었다고 한다.

문헌 내용

물이 다순 샘이 있어 일컫던 명칭. 1955년 경에 샘물 속에서 선년장처럼 생긴 수초에 꽃이 피어 화제가 되었다. 유황이 많이 함유된 물이라 하며, 현재 온천이 있다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유희수 (63) 1950년



B1 이동혁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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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야기)

B1: 옛날부터 왜 ‘온수’마을 이라고 했을까요?

A1: 예전에는 여기 ‘벌샴’이라고 그러지 빨래터여 빨래터 빨래도 하고 뭐야 저 그 물 우물 우물이 여기가 옛날에 ‘해방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여기가 있어 우물에서 ‘해방꽃’이 피었어 꽃이 피고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그래서 그 유래가 ‘해방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지.

B1: 그곳을 ‘벌샘’이라고 했고요?

A1: ‘벌샴’이라고 하고 수초가 뭔 이름인 줄도 모르는 수초가 자라가지고선 거기서 꽃이 피었어 그래가지고 우리 어렸을 때도 그 수초들이 자라서 우리가 그걸 건져 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옛날에는 여기가 인자 그 사물 같은 것 없을 때 둠벙 같이 여기 있었거든? 비가 많이 오며는 막 흙탕물이 이리 잔득 들어가지고 있는 거야 그래서 거기를 휙 저으면 맑은 물이 막 올라오는 거야 그 정도로 맑은 물이 많아 물이 많고 인자 물이 다 좋지 여름에는 시원하고.

B2: ‘해방꽃’이 더 이상 피지 않나요?

A1: 그 새마을 사업 한다고 그것을 인자 공구리를 쳤어 주민들이 불편하니까 말하자면 현대식으로 노깡을 공구리를 쳐가지고 거기에 물이 올라오도록 해서 길어 먹기 좋게 흙탕물이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만 사용하려고 그렇게 하니까 그것이 사라졌다고 그러거든? 그리고 여기를 한 때는 저 우리 마을에서 모종이 없어가지고 모종을 거따 모종을 건립을 했다고 메꾸고 메꾸고 모종을 건립하니까 마을에 어떻게 이상스럽게 그 뭐야 건강했던 분들이 갑자기 젊은 분들도 아프고 사고가 나고 그래가지고 마을에서 원성이 많아가지고 그걸 다시 복원을 했어 복원을 해가지고 현재 먹지는 않지만 그 물이 지금 여그가 있어 자리 잡고 있어 바로 경로당 뒤에가 있어 그래 가지고 거그서도 뭔 수초가 자랐었거든 수초가 이쁘게 자랐는데 누가 그걸 끊어 내버렸더라고 누가 끊어 버렸는지는 모르고 그 수초가 자라고 날이 가물으니까 인자 지하수들을 품고 그러니까 물이 딸리니까 그 수초가 현재 없을 것이여 현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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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어릴 적에는 주로 어디서 노셨나요?

A1: 지금 여기 우리 어렸을 때는 여기가 지금 저기가 ‘사랑마당’이라고 거기에 수양 버드나무가 큰 게 있었거든 그래가지고 거기서 우리가 놀이터가 됐어 놀이터도 되고 여그 이 뒷동산에서 잔디밭이 좋았어.

B2: ‘사랑마당’은 왜 그렇게 불렀나요?

A1: ‘사랑마당’은 여그가 옛날에는 좀 잘 사는 분이 있었어 천석꾼이라고 천석꾼이 있었는데 아마 사랑채가 옆에 있으니까 사랑채가 있고 거그가 인자 마당이 있으니까 ‘사랑마당’이라고 짓지 않았나 그 생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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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주변에 특이한 지명이 있는 곳이 있나요?

A1: 지명 여기를 보며는 옹기를 구운 자리가 있어 옛날에 옹기 그 장꽝 하고 그 뭐냐 고추장 된장 담는 그릇 있자나 김치 장독 굽는 데가 있는데 거기는 지금 그 자리는 그 ‘왕궁온천’이 들어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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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우물에 제사도 지내고 그랬나요?

A1: 제사 지냈지 여그서 제사 지내고 인자 그 공들인다고 하나? 옛날에? 촛불 키고 여그다 제사를 지내고 뭐야 저 물 떠다가 그 장꽝에 다가 떠다가 샘을 떠다가 빌고 그런 것을.. 여그 와서도 제사 지내고 하는 사람들 많이 있었어.

B2: 마을에서 우물을 푸고 그랬나요?

A1: 아 그것은 인자 칠월칠석날이 라든가 이런 때는 우물 청소를 대청소를해 우리 동네에서도 칠월칠석날이면 연례행사로 연중행사로 그 뭐 개를 잡아서 먹는다든지 돼지를 한 마리 잡아서 마을 분들하고 술먹이지 술먹이 인자 그런 것들이 전통적으로 쭈-욱 내려오는 거지 뭐 내려오고 옛날에 이 여기 물로 이 밑에 농사를 다 지었다고 그러드라고 우물로 그렇게 물이 많이 나온 거야 여그가 그 인자 옛날에 어른들 이야기 들어 보며는 그 물로 여기 뿐이 아니라 이 위에 치까지도 농사를 다 지었데 이 물로 지금은 지하수들을 많이 파니까 지금은 인자 그렇게 많이 양이 줄어 들었는디 옛날에는 그 물로 농사를 다 지어서 먹었다고 그러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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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릴 때 날이 덥고 그러면 물놀이는 주로 어디로 가셨나요?

A1: 물놀이? 물놀이는 인자 저-기 저 저수지였어 저기가 수리조합 ‘온수동 방죽’이라고 혀 일명 ‘온수동 방죽’ 그게 한 크기가 약 한 10만평 정도 해 그러면 인제 거기 그 물줄기가 만경강으로 연결이 되었거든 그러면 비가 오며는 고기 반 물 반이야 막 새우 기 장어 무슨 뭐 없는게 없었어 자우지간 비가 많이 오며는 비린내가 날정도야 그 정도로 고기가 많아가지고 이 근방사람들은 막 다 와서 고기잡으로 고기잡으로 다 와가지고 거기가 낚시터도 했었고 우리 우리가 그러니까 한 그것이 한 30대 까지만 해도 그렇게 했었어 근데 저 쪽에 ‘소생원’이라는 한센인들 사는 디가 저기 있거든? 그분들이 인자 축산을 한다고 양돈 양돈을 한다고 인자 폐수를 막 흘러내리니까 거기가 오염 된 거야 그래가지고 그래도 적당히 있을 때는 그 저 뭐야 거시기 유지가 되었어 고기 같은 것이 근데 폐수가 너무 많이 오니까 인자 다 죽어버린 거여 그래가지고 이 농사도 요 때 되며는 다 쓰러지는 거여 그래가지고 그 물을 이제 사용을 못하게 되었지 근데 그때 까지만 해도 저 수리조합에서 놀았어 그리고 저 방죽에서 사람도 많이 바쪄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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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왜 죽었나요?

A1: 아 인자 여름에 물놀이 하다가 죽은 거지 이 동네 사람도 많아.

B1: 옛날에는 이 마을에 몇 가구나 살았었나요?

A1: 옛날에는 한 70가구 정도 살았지 큰 마을이여 왕궁에서도 한 두 세 번 째 일 거여 근데 지금은 다 해 봐여 40호도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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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이 마을 앞에 있는 산을 무엇이라고 불렀나요?

A1: ‘화산봉’ 거기서 석탄이 나왔어 근데 경제성이 떨어져 그래서 다시 인제 우리 어렸을 때 보면 거기 굴처럼 있어가지고 거기서 시원하게 놀고 그랬어.

B2: 왜 ‘화산봉’이라고 했을까요?

A1: 근게 어떤 사람은 여그가 불 화자로 그 되어 있으면 온수의 발전이 흥한다는 둥 꽃 화자이면 망한다는 둥 그런 말이 많은 데 불 화자 인지 꽃 화자 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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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혹시 귀신이야기나 도깨비이야기 같은 이야기 아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A1: 그런 이야기는 어렸을 때 많이 들었지 여그 저 ‘벌샴’에서 옛날에 그런 이야기가 그 지금도 살아계신 당숙 어른이 있어 그 양반이 말하자면 이야기를 참 잘하셔 우리 어렸을 때 그면 우리는 당숙 조카니까 이야기를 귀신이야기를 해줘 그러며는 그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 당신 네 어머니 아버지가 새벽에 물을 길러 가셔가지고 여기서 보며는 빨래를 하얀 소복을 하고 있는 여자가 머리를 산발하고 빨래를 또닥또닥 방맹이질을 빨래를 한다 이거여 빨래질을 허고 그리고 그 인자 ‘벌샴’ 빨래터가 있으며는 좀 넓은 데가 있어 맨 끝 어리가 거기서 빨래를 소복을 타악 하고 머리를 산발하고 빨래를 또닥또닥 하면서 가서 물 뜨러 가 가꼬서는 쭈삣 할 것 아니여 무서운게 “누구여” 하면 물속으로 퐁당 뛰어 들어간디야 들어갔다고 우리는 인자 무서우니까 어렸을 때 막- 무섭다고 그러고 인자 그리고 어렸을 때는 그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는 무서우면서도 그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고 그게 막 듣고 싶거든 그런 말씀을 참 잘 하셨어 아마 그 양반이 지어내서 하신 말씀인가 어찐가는 몰라도 그 말씀을 참 잘하셔 지금도 살아가시는데....

B2: 또 들어보신 것 있으신지요?

A1: 어? 또 들은 거? 아!! 그 이야기는 저기 저수지 수리조합 거그서도 그렇게 그런 이야기들이야 저그 건물 있지 그게 양어장이거든? 저기 제방이 있자나 그 밑에가 양어장이었어 그러며는 그 밑에 양어장으로 이렇게 해서 저쪽으로 집이 한 채 있었거든 집이 한 채 있으며는 거그서 그 양반들 그 친구분 들이 있으면 가서 놀기도 하고 사랑방처럼 그 놀으면 저녁에 인자 한 12시나 되며는 거그서 그렇게 그 빨래 빠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여.

B2: 아 아까 그 귀신이요?

A1: 어 또 그 귀신이 허허 그래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더라고.... 그래 가꼬 올라가 보며는 없디야 그면 또 내려오면 또 들린디야 인자 그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 듣고 그 무서워 가꼬 근데 별로 그런 이야기는 뭐 어렸을 때는 유독 무서움 들을 많이 타 가꼬 이게 지금 보이는 도로가 원래 길이 아니야 저기 지금 산길 글로 인자 삼례도 다니고 학교도 다녔거든 이 길타고 저그 대부길 건너서 저기 다리를 건너서 화산 모퉁이 돌아서 이렇게 꾸불꾸불 다녔거든 그렇게 다녔어 옛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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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 길을 따로 뭐라고 불렀나요?

A1: 거기가? 거기가 ‘화산길’ ‘화산길’로 다녔지 이 길은 이제 새로 낸 길이야 이렇게 우석대학교 쪽으로 지금은 다 이리 다니지마는 그때만 해도 글로 다 다녔다고 근게 우리 어렸을 때 비만 와도 저 신발을 고무신이 자너 옛날에 운동화가 어디가 있어 고무신 딱! 벗고 저 등어리다가 필통 따그락따그락 한 놈 책가방 딱 쨋메고 뛰는 거여 아 신발 신고는 못 다녀 느러 붙은 게.

B2: 저녁에는 상당히 무서웠을 것 같은데요?

A1: 저녁에 무서웠지 저기가 공동묘지거든 저 쪽으로 공동묘지야.

B2: 저기 도깨비불 같은 것도 나오고 그랬나요?

A1: 암 도깨비불도 나오고 그랬지 머 빨간한 것만 지나가면 도깨비불이다 막 그랬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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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르신 아까 독을 굽던 곳이 있다고 하셨는데 옛날에는 뭐라고 불렀나요?

A1: ‘지압골’.

B2: 옛날에는 마을에서 음식을 주로 무엇을 많이 해먹었나요?

A1: 그때 당시에는 뭐 우리 어렸을 때는 뭐 ‘보리개떡’ 그 그걸 보리 겨라고 하나? 보리 가루 그런 걸로 개떡도 쪄 먹고 또 호밀 빵궈 가꼬 또 뭐 수제비도 하고 우리 클 때는 그 칼국수 한 참 클 때 칼국수 많이 생각나 칼국수를 그냥 그 우리가 한 참 클 때니까 칼국수 같은 거 먹으면 돌아서며는 배고프거든 지금은 뭐 고기들 많이 먹고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옛날에는 막 양은 커가지고 그거 많이 먹고 나도 금방 배고파 영양가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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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 ‘삼례역’이 처음 생겼을 때 주로 어떤 사람이 많이 기차를 이용했나요?

A1: 어떤 사람들? 그러니까 학생들 우선 통근 열차니까 옛날에는 전부다 그냥 기차로 거시기 전주 익산 이런디 학교를 다녔거든 학생들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에는 인제 그 ‘깡아리’장사라고 하나? 이렇게 메고 저 그 봇다리 장사들 그런 사람들이 주로 많이 탔지.

B1: ‘깡아리’장사요?

A1: ‘깡아리’장사라고 그 엇가리 같은데다가 올게 논 놈을 가지고 그 대게 보면 쌀 같은 것도 여기서 전주까지 옛날에 아주머니들이 메고 서는 갔다가 장사했다고 그려.

B1: 그럼 주로 어디에 다가 많이 팔았나요?

A1: 전주에 갔다가 팔았나바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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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예전에 마을에 상여집도 있었나요?

A1: 우리 마을에는 없었고 여그 여 우석대학교 이 길로 막 내려가며는 저 그 우석대학교 큰 도로 나와 가며는 그 집이 상여집이여 그 집에 상여집 이니까 또 얼마나 무서 그 집만 올라가며는 무섭지.

B2: 그 ‘화산길’ 앞에 말씀하시는 거죠?

A1: 어 그게 삼례 학교 갔다가 좌우지간 삼례 갔다가 좀 어두컴컴해지면 거기 올라면 무서운 거여 거그 그게 생이 집이거든 그럼 거기 생이도 있고 관 같은 거 있으니까 무서운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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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옛날에 아이들 죽으면 어떻게 했나요?

A1: 옛날에는 그랬디야 옛날에는 애기들 죽으며는 “에이 웬수!” 하면서 탁 엎어 버렸디야 근게 정을 띨라고 그랬나 그래가지고 탁 엎어가지고 서는 이렇게 보자기에 싸가꼬 산에 다가 저런데 아무데나 살짝 저녁에 인자 임자 없는 산에 가서 그런디 가서 그냥 묻었다고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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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여그 ‘앵금’이라는 마을이 있어 거그서는 ‘앵금’이거든? 그 금으로 된 새 모양 금이 나왔디야 새가 나왔디야 그래서 ‘앵금’마을이라고.

B2: 언제 들으신 건가요?

A1: 몰라 어렸을 때 그 어른 들이 그 아무개가 그것을 이렇게 저 텃밭 가꾸면서 이렇게 한 게 뭐가 딸그랑 하니까 주서 보니까 그 날개가 하나가 떨어졌다고 하드만? 근디 그게 앵금 새 드랴 금으로 된 새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옛날에는 금이 비쌌으니까 부자가 됬는디 그거 몇 년 안 가서 다 까먹고 그랬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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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혹시 구렁이 같은 동물 이야기 들어 보신 적 있으신지요?

A1: 그 전에 그 구렁이 같은 것 집에서 나온 것도 있었어 저 대나무 우리 집도 저기가 우리 집인데 또 모종이 저기 있었거든 그 모종이 여 공사한다고 15톤 덤프트럭이 밀어 가꼬 허물어 졌어 허물어져 가지고 여그 ‘벌샴’자리에다가 메우고 거따가 모종을 지었거든 근데 안 좋다고 해서 뿌시고 인자 여기다가 새로 건립한 거여.

B1: 옛날에 집에서 나온 구렁이는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요.

A1: 그런 건 없어 그전에 저 모종이 있을 때 점심을 먹고 어른들하고 그때가 초여름이거든? 모종에 있었더니 막 우리 안식구가 질겁을 하는 소리를 하더라고 그래서 왜 그러는가 하고 막 뛰어가 봤지 예감이 좀 이상해서 그랬더니 그 구렁이가 딱 꾸부리고 있는 거여 그래서 잡았어 잡아가지고 인자 그놈 가꼬 와서 “이게 뭔 구렁이요” 하고 물어봤지 그러니까 흙구렁이래 그래가지고 집 구렁이이지 말하자면 흙구렁이라고 그래 가꼬 서나 그놈 한 번 잡았는디.

B1: 잡아서 그냥 놓아 주셨나요?

A1: 몰라 그냥 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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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여기는 어느 성씨의 집성촌인가요?

A1: 여그는 저 전준 이씨하고 경주 김씨들이 주로 많이 살았지 근데 지금은 인자 타승바지도 많이 살고들 그려.

B1: 마을에서 금기시 하는 것이 있었나요?

A1: 그런 것은 없었어 아니 있었어도 뭐 별로 묻혀가고 근디 ‘벌샴’을 묻고 모종을 지으니까 인자 좀 그래서 그랬는지 하여튼 안 좋은 일이 자꾸 벌어지니까 그래서 그랬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 지금은 아무래도 교회가 있자나 교회가 있으니까 기독교 신자들은 그런 거 안 믿어 인자 없는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의심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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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마을 자랑거리 하나만 알려주세요.

A1: 옛날에 마을 자랑거리는 그때 당시 ‘해방꽃’이 피어가지고 여기 이 ‘해방 꽃’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근방 멀리서 와가지고 자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많았어 옛날에는 동전이 많이 있었어 동전을 가따 넣어 놓고 내가 무슨 뭐 우리 아들이 어디 합격 시켜주십시오 하면서 불공처럼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때 당시 ‘해방꽃’이 피었다고 그랬었지 요즘 같으며는 이게 뭐 그랬으며는 연구 대상이거든 그 인터넷에 들어가 봐도 그게 좀 나왔을 텐데?

B1: 어르신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A1: 50년생 유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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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옛날에 점쟁이들한테 점을 했어 그 무당이라는 분들이 와서 굿을 해 굿도 하고 또 그러지 않으면 그 뭔 ‘뱅이’라고 하지 ‘뱅이’ 자기들이 하는게 있어 뭐 쌀로 뭘 표시를 하고 거기에다가 뭐 붙었다고 귀신 붙었다 던지.

B1: 쌀로 어떻게 하나요?

A1: 쌀로 이렇게 앉아서 상에다 깔던가 뭐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뭐가 붙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 하고 서는 그 애기가 그러며는 뭐가 귀신이 붙었다던지 그러면 그분들한테 어떻게 하냐 그 굿을 하라고 하던 가 크게 아프면 굿을 해야한다 든가 그러면 인제 굿 하는 사람도 있어.

B1: 크게 아프지 않으면요?

A1: 작게 아프면 그 사람들이 인자 ‘뱅이’라고 부적 이런 것을 해서 주고 그러면 사례로 얼마씩 주기도 하고.

B1: 이장님 어렸을 때 그랬나요?

A1: 어렸을 때 그랬지 어렸을 때 그렇게 하고 서는 뭐 굿을 막 푸닥푸닥 잡고서는 뭐 소리 딸랑딸랑 소리 나는 걸로 점치고.

B1: 그때 당시 무당은 어디에 있었나요?

A1: 그때 당시는 무당이 저-기 ‘봉동’에서 우리 동네는 많이 왔어 ‘흑지 할머니’라고 저 ‘봉동’에 사는 분이 여기를 한 번씩 와 와가지고 마을에서 그런 일이 있으며는 여그서 오래 며칠 기거를 하시면서 누가 어디가 안 좋네 뭐 거시기 하면 인자 초빙을 혀 그분을 초빙해서 봐 달라고 하고 그러면 그렇게 하면 앉아서 뭐라고 뭐라고 주문을 외우고서는 뭐가 붙었네 뭐시 붙었네 해 가지고 서는 그렇게 점을 했지.

B1: 아- 네 알겠습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비고

면담장소 : 왕궁 온수마을 모종
면담시간 : 2012년 8월 19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온수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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