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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술사

개요

춘포면

노적마을

구술일: 2012년 9월 1일
구술자: 김해영(1944년생)·남, 김해영씨, 부인·여
면담자: 장윤준, 이순영

구술 요지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민담
1) 새로 채록된 내용
- 노적마을의 유래 : 노적마을이 원래 그 마을 밑쪽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지역이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수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작물을 산 위에 보관했다고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미등골 : 흉년이 되도 물 걱정이 없어서 믿을 수 있는 곳 미등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 배다리 : 이 근처에 배를 매놨던 배다리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 돌박재 전설 : 돌박재 전설은 금마에서 어떤 장수가 돌을 짊어지고 가다가 길가에 돌을 내려놓고 쉬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날 때 돌을 버리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돌이 박힌 언덕. 돌박재라고 한다. 그런데 돌이 사람들 눈에 보이면 마을에 흉사가 생기고 흙으로 잘 덮어두면 마을에 흉사가 없었다 전해진다.
- 이완용 민담 : 임금이 한양에서 전주로 행차하던 길에 이완용이 호기좋게 임금의 가마를 막았다고 한다. 그 후 이완용은 임금의 눈에 띄여 벼슬까지 했다.

문헌 내용

노적(露積) : 집집마다 곡식이나 벼를 한데에 쌓아두는 노적가리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하나 혹 관곡(官穀)의 노적소(露積所)였는지?
『익산시사』

구술 영상

구술 채록

A1 : 김해영(이장님)
A2 : 이장님의 사모님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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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특이한 바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A1 : 허허. 옛날에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왔지. 그분이 지금 전주가서 사는디 우리 바로 선밴디 그 이야기 꾼이여 그 분이. 그 이야기를 재밌게 허는 분이여. 에 우리 내가 대충 아는 대로 어 노적리 역사는 거의 부류가 에 강씨허고 정씨의 씨족으로 이루어 졌어요. 인자 그 타성바지는 거기에 연관된 사람들. 다들 그렇게 해요. 다른 데도 그래요. 다른 데 다른 마을도 씨족이 있으면은 그 부수적으로 그 다른 씨족이 들어오는 것은 그 씨족허고 연관되서 오는 사람들. 말하자면 결혼해서 온다든지 내 조카의 조카가 연관되서 온다던지. 그래서 인자 내가 알기로는 내가 인자 나이가 뭐 한 100살이나 먹었으면 역사를 잘 알지만은 아는 대로는 그렇게 해서 이 동네만. 이 아래 동네만 쪼그만하게 노적이라는 동네가 형성이 되얐어요. 그리고 노적이라는 그 이름의 유래는 여그 저쪽가면 배다리가 있으요 배다리. 예. 그 배다리라고 허는 것은 거기다가 배를 맸다는 얘기여. 그러니까 지금부터 수 천년 전에 에. 이 지역 이 꼴짜기가 강물로 바닷물로 움직이는 그 시대에 인자 이 언덕받이. 여그는 인자 젤로 춘포에서도 젤로 웃머리거든요. 메마른 곳이여. 근디 인자 여기는 흉년들면 못먹었어. 막 굶는 사람이 많앴어. 에 천수. 이양 완전히 천수답이여. 봉답. 하늘서 물이 떨어져야 농사를 먹고 사는디여 여기가. 근디 인자 지금은 비가 자주 오고 지하수가 지하수가 개발된지가 70년대 초에 개발을 했어요. 지하수 개발이 불과 얼마 안된 것 같애도 그 지하수 개발로 혜택을 엄청 봤지요. 한 30. 30메다만 파들어가면 물이 퀄퀄퀄 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에 그 때부터 해서 이 지역이 쪼금 쌀을 곡창지대보다는 조금 어렵지만은 그렇게 먹고 살았고. 에 여기 인자 여쪽 넘어 교회 동네가 있는데 요 동네는 어떤 인자 강씨가 부자로 와서 여그다 집을 아주 거창하게 지었으요. 인제 지금도 인자 그 자리에 양옥집이 들어가 있고 기와로 돼 있어요. 근데 다른 사람이지 인자. 근데 내놔야 강씨하고 연관된 사람들. 거기는 오씬데 그렇게 연관된 사람들이 들어와서 늦게 인자 허고 그 먼저는 김씨가 여그 와서 인자 살면서 거기도 내놔야 강씨하고 그 토지가 전부다 강씨네꺼 토지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고. 원래 노적이라고 허는 데는 지명은 없지만은 저족 저 방죽 저 노적재라고 하는 데가 있어요. 거 밑에 내려오면은 은행나무 밭이라고 옛날 어른한테 듣기만 했어요. 듣기만 해가지고 은행나무 밭이라고 허는디 거 주변에다가 이렇게 동네를 형성해서 살았어요. 예. 저쪽에 동쪽에. 근디 그 주변에서 살았던 것은 뭣 때문에 살았느냐. 옛날에 장비가 없으니까 저 아프리카 사람들 막 매 수십리까지 가서 물동이로 물 이어다 먹잖아요. 근디 거기는 땅속에서 그냥 쿨쿨 나와 그냥. 에. 물이. 여가 그래서 미등골이여. 믿음골. 에 미등골. 옛날에 기냥 미등골. 그래서 지금은 미등골이라. 그래서 인자 교회도 생기고 인자 XXX 와서 그렇게 해서 그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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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노적이란 말은 무슨뜻입니까?

A1 : 노적은 인자 그 얘기를 헐께. 이쪽으로 꼴차기가 있고 저 쪽으로 꼴차기가 있고. 이 쪽으로 꼴차기가 있으면서 이 쪽으로 또 찢어졌어. 그럼 거가 신동재야. 그러면은 그 천수답에서 농사를 옛날에 지어가지고 에 그러니까 저 아까 배다리라고 했지요. 배다리 거쪽에서 농사를 지어서 전부다 지개로 올려서 배다리 위에 가믄 여가 다 날등이여. 여가. 이렇게 이렇게 산이 있음 날등이 있듯이. 전부다 그 저다 놔두면은 함몰치면 못먹응게 자다가 벼까리를 전부다 여다 쌓았다고 해서 노적이라는 거여. 이슬로 쌓을 적자. 노적이라는 지명이 그것이여. 가을에 수확을 허면은 쌓아서 거그다 옛날에는. 지금은 기계가 비잖아여. 그 옛날에는 손으로 비여가지고 손으로 비여가지고 나락 인제 줄갈이를 죽 쳐요. 쳐서 그 놈 어느정도 인자 말러. 대도 말르고. 말러서 그 놈을 또 지개를 짊어져가지고 훌태로 훑었어요. 모르지요? 어. 전혀 모르지요. 보지도 못했지요 상상도 못허고. 지금 시대가 이렇게 생겼으니까 그런가 보다 허지. 그러니까 손자들보고 옛날에는 이렇게 이렇게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면은 ‘아이고 할아버지 그 때는 라면이라도 삶아먹지’ 근다고 그래. 하하. 시대의 감각이 없는거여. 인제 우리는 우리만 해도 중간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그 쪽에서 살다가 에, 거기 그릇을 구운 자리가 있어요. 옹기그릇. 근데 전부다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지고 농경지로 다 바뀌었지요. 바뀌고 그 지역에는 사람이 아무도 안살어. 전부 다 논밭으로 바뀌고. 그렇게 해서 인제 거그 왜 거그를 꼴차기를 살았냐면은 거그 어느 논에 가서 요런 방죽이 하나 있었어요. 긍게로 그 방죽 방죽을 왜 팠냐믄 꼴차긴데 거기서 그냥 그 물을 나오는 놈을 마시고 살았는데 인자가 시대가 변허니까 인자 거기 사람들도 없어지고 그것을 인자 논을 만들고 거그 방죽만 놔뒀어. 왜냐믄 물을 데먹을라니까. 그놈이 솟으니까. 근디 지금도 거기를 파면은 돌이 이만씩헌 돌에다가 팠어요. 옛날에는 이 절구질을 했어요 이렇게. 그렇게 해가지고 꼬춧가루도 갈어먹고 벼도 벼나 조나 이런 것들을 찌어서 먹었어요. 거기도 그거 아나 그 때 시대 사람들이 거기를 파믄 지금 현장이 나와요. 그 흔적이 그 돌이 있어요. 세 갠가 있어. 쪼그만한 방죽을 품으면은. 그렇게 혀가지고 그렇게 노적리 유래는 거그 없어지고 요리 와가지고 그 때 그 시대 사람들 없어지고 그렇게 노적마을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여그 돌박재. 여그 돌박재라고 여그 있어요.

B2 : 돌박재 말입니까?

A1 :예. 그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우리 선배가 얘기 된걸 내가 다 못들었거든. 책도 그 사람이 쓴 것도 못보고. 근디 그 사람이 에 참 재밌게 말을 잘허고 재밌게 이야기를 잘 했어요. 이 어떤 사람이 장수가 저그 미륵산에서 돌을 큰 놈을 지고 왔어요. 지고 와서 쉬어간 자리 거그다 돌을 놓고 쉬어가고 그 사람은 에 인자 어디로 가버렸어 어디론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거그다가 전설따라 삼천리 돌이 있다는 이야기가. 예 그렇게 해서 돌박재라고 지명을 붙였어요. 노적바위가 거기지요. 근데 우리도 그 돌을 못봤거든? 허허. 뚝이 거기 그렇게 있어요 어령이. 옛날 저 묘를 쓰면은 지금도 어령을 막 높이 쌓는 사람도 있잫아요. 부자 잘사는 사람들은. 근디 어령이 막 우리 질보다 더 높이 이렇게 척하니 자연스럽게 쌓아졌어요. 근디 가운데 거다 놓았다. 그래서 꼭 여가 독 있는 자리다. 근디 다 훼손시키고 논을 만들었어요. 노적리 인자 유래는 뭐 내가 그 전 시대는 잘 모르고.

B1 : 그 돌을 묻어뒀다고 그 바깥에 들어나면은 안 좋은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A1 : 맞어. 전설따라 삼천리를 잘 봤구만. 돌을 그 나 다 잉게 잊어버렸어 몰라. 돌을 이렇게 드러나면은 처녀들이 이 바람이 난디야. 그리고 돌을 묻어주면은 바람이 안난다고 지역이 조용하다. 그런의미로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 분이 머리로 이렇게 해서 추리로 이렇게 해 놔온거여. 인자 그렇게 노적리 유래는 그렇게 대략 그렇고. 노적바위라고 그렇게 나와요? 음. 그 아까 그 얘기대로 약간 언덕이 있으니까 거다 탁 놓고 쉬어갔던 곳이 돌을 놓고 그냥 간거에요. 가서 그래서 거기서 돌박. 그 위에 세대가 돌박재라고 이름을 짓고 아닌게 아니라 아까 그 얘기대로 돌이 들어나면은 지역에 사람들이 바람 나가꼬 어 이렇게 되고 돌이 감춰지면은 이 지역이 평화롭게 된다. 인자 그런 의미도 가지고. 나도 잘 그 때 시대에 잘 안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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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원래 동네는 동쪽에 있었고 여기는 미등골이라고 했었던겁니까?

A1 : 그렇죠 이 신동리가 미등골이라고. 미등골. 원래 미등골이라고 했는데 지금 인자 지금 지명으로는 믿음골 이렇게 썼드라고. 믿음골이 저 믿음골이라고 허는 것은 흉년이 아들고 항상 물이 넉넉해가지고 풍년이 들어서 그것을 믿을 미등골이라 지었다. 지금 그런디가 익산 지역에 많아요. 아 많아요. 왕궁가면 수랑골이라는 데가 물이 좋고 저쪽 어디 삼기인가 낭산인가 그러면 물이 좋은 데가 있어가지고. 그래서 마을 유래는 인자 대략 그렇고. 여가 노적이라고 하는 거가 유래도 저 아래서 수확을 해가지고 여기 축허니 쌓았대요. 농사는 인자 혼자로 안 짓고 집단으로 지으니까. 옛날에 여그가 천석꾼이 살았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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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천석꾼 말입니까?

A1 : 에. 그 넘어 원정리라는 동네가. 천석꾼이 살어가지고 그 때는 떵떵거리고 잘 살았는데 토지개혁을 딱 놔버리니깐 아이 말이 그렇지 세를 받아서 천 가마니를 천 섬을 받아가꼬 살으면은 얼마나 배부르것어. 그 때 당시는 돈이 아니라 쌀인데. 에 그렇게 됐는데 토지개혁이 나면서 하루아침에 그지가 되부럈지. 근데 그 아들들도 둘은 죽고 아니 하나 죽고? 둘 죽고? 둘 남었어요. 다 망했어 없어. 지금 식당허고. 저 쪽 넘애서 공단하고 연결된 도로 공단 갓길 그 쪽에 가면 곰탕이라고. 한번 가보셨어요? 무슨 곰탕이라고는 나 잊어버렸는데. 기와집 도로가에 기와집. 원래 그게 그집이에요. 에 긍게 방이 오밀조밀해. 그게 천석꾼네 집이고 고 옆에 기와집이 작은이 집이고. 아 인자 그분이 집이 망허고 그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해가꼬 우리는 미국가 사니 어쩌니 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고향으로 내려왔디라고. 내려와가지고 인자 거기서 자기 그 아버지가 인자 생전에 남긴 것이 있을 것 아니여. 에 사방 천지가 잉게 그것만 떠들어 가지고 요놈 찾으면 팔아서 먹고 살고 저놈 찾으면 또 팔아서 먹고 살고 여지껏 그렇게 살다가 인자 그것도 인제 안되니까 욕 얻어먹잖아 사람들이. 어? 미처 등기 안낸 사람은 이 사람 것이었는데 미처 등기 안 낸 사람은 지 아버지 강머씨로 되야버리니까 찾아서 팔아먹는거여. 그래서 사람들이 욕을 많이 먹으니까 이것도 못허것다. 때려 치고 인자 곰탕집을 했어요. 근데 죽었어요 그 사람도. 굉장히 잘 돼. 원래 곰탕집 헌다고 강씨네들이 반대했거든. 왜 우리 역사가 있는 집인디 그러냐. 뭐 먹고 살기 힘드는디 사람이 뭐 도둑질만 안 하면 되잖아. 그렇게 해서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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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호랑이 얘기 소금장수 얘기는 무엇입니까?

A1 : 어린 시절에 다 들은 얘긴데 지금 다 가물가물해. 어 소금장수가. 옛날에 어떤 가난한 집에 소금장수가 집에서 거 인자 집이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으니까 소금이라도 장사를 해야것다. 허고 소금을 에 짊어지고 인자 마누라랑 자식들 놔두고 멀리 나가요. 멀리 나가서 소금 장사를 했다 허드라고. 거 나 지금 다 잊어버려서 기억이 가물가물 해. 산을 넘고 또 넘고 넘었는데 어느 집을 갔더니 밤은 인자 밤이 되니까 밤도 새고 며칠도 새고 인자 막. 우리 나라가 쪼그마한 것 같아도 옛날에는 걸어댕기는 세대라 뭐 교통이 없으니까 걸어서 하루 되면은 어디 가서 자야하니까 인자 하루는 어디가서 자자 허니까 인자 방을 하나 주더래. 아 근디 이렇게 해서 보니까 칼 가는 소리가 나더라네. 자다가 일어나서 보니까. 아 진짜 이상하다 허고 가만히 쳐다봉게 칼을 갈고 있더래. 근디 그 거그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후에 생각이 안나. 허허. 그 옛날에 지금 다 돌아가셨어요. 그 양반들한테 들은 얘긴데. 사랑방에 인자 사랑방이 있어 인자. 오두막에서 사람들 잘 붙여주는 그런 집이 있어요. 그럼 거그 가서 인자 거기 아들도 있고 거가 놀으면은 옛날얘기 해달라 하면은 해주고 그러거든. 그렇게 해서 그 소금쟁이가 어떻게 했다 그랬는디 잊어버렸어. 인자 그게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이야. 그 후를 잊어버렸다고. 긍게 그걸 그거 신경쓰고 안살고 먹고 살기 신경써버리니까. 나중에 인제 맨들어요 인자 나중에.

B1 : 그럼 호랑이 얘기라는게 우리 마을에 호랑이가 있었습니까?

A1 : 여그는 멧돼지까지는 우리 어머니 시대까지는 멧돼지가 공동묘지라고 있어요. 왜놈들 시대에 사람들 죽으면 사람들이 죽으면 어따가 사방에다 내버렸잖아. 우리 어린 시절에도 애기 죽으면은 이렇게 돌돌 싸가지고 쩌그 밭 가상에다나 갔다 놨다고. 뭣이 먹냐 그러면 여우가 다 뜯어먹었던 거야. 그런 세대가 살고 있었어요. 실질적으로 존재 했고. 인자 묘를 잘 쓰는 사람은 동이가 있어 물동이. 인제 소금장수는 나 거까지밖에 기억이 안나. 물동이가 있으면은 애기가 죽어서 인자 물동이에다 싸서 늫고 이렇게만 느면 안되잖아 여우가 파서 먹응게. 그래서 물동이 하나를 맞대야. 맞대가지고 하나 묻었어요. 그런건 나도 캐봤어. 그래서 알지. 그리고 허 호랑이 얘기. 거 호랑이가 가물가물 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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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르신 우리 마을은 다른 춘포보다도 높은 것 같습니다. 대장촌 같은 경우는 다 논입니다.

A1 : 그렇지. 거그는 평야고 그러니까 지금 여그가 내가 아까 배다리라고 한 데가 있잖아. 지금부터 수 천년 전에는 이 전부다 바다라는 얘기여. 토탄도 나오죠.

B1 : 어르신 또한 여기는 금마나 팔봉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A1 : 그렇지 팔봉. 팔봉에 가깝지. 그래도 시장은 익산으로 갔지. 잉게 춘포라도 춘포 신동리를 빠개가지고 저쪽은 삼례쪽이여. 삼례권이여 그리고 이쪽은 익산권이고. 장연 문종 뭐 쌍정 그쪽은 전부다 (삼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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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저희가 그쪽과 금마 왕궁 여산 춘포 이렇게 다 가고 있습니다.

A1 : 금마 허면은 이완용이가 안떠올라요? 금마서 얘기 못들었어? 그런 얘기를 들어야지! 허허허허. 아니 왜 금마 가면은 그런 얘기를 들어야지.

B2 : 좀 이야기좀 해주십시오.

A1 : 나는 인자 금마 내가 여그다 소각장을 유치할려다 익산 시내를 다 돌아다녔어요. 어. 협조좀 해달라고 근디 여그 반대하는 사람들하고 나는 교회 장로인데. 교회에서 장로들하고 마찰이 있고 부딪혀가꼬 교회를 떠났지 딴데로. 그러다가 금마 사람들허고 쭉허니 몇 사람 잘 금마 면장도 허고 이렇게 얘기를 해보니까 이완용이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어요 인자. 같이 밥먹고 인자 있으니까. 근데 각 지역마다 유지도 만나고 다 만나러 돌아댕겨서 우리허고 같이 협조좀 해달라고. 그먼은 금마 지금 살아있어 이머시긴디 그 면장이라는 자 춘포에 같이 이야길 하는디 이완용이가 어디서 났느냐 아느냐 그 이야기가 나온거여. 그럼 이완용이는 금마에서 나온 사람이다. 금마에 이씨기 많다 그러더라고. 금마에서 저기 이완용이가 나와가지고 어 지금 한양에서 전주로 지금 그 때 무슨 왕인가 왕이 그 때 이렇게 들고 대니는거 인력거라고 하나 그것으로 이 하인들이 매고 오는거여. 아 오는디 어떤 촌놈이 그냥 지게에다가 나무 하나 지고는 그 앞에서 인자 하인들이 길 비켜라 허고 소리치잖아 지금도. 근데 아 이놈이 안비키고 가만히 있는거야. 가는거야 그냥 무심코. 근데 저놈이 어떤 놈이냐 대체 이 가마놈 내려나. 허고서는 불렀어. 임금이 임금이 가마를 타고 가다가 나무 지게꾼이 길을 안비켜 주니까. 옛날에 큰 길이 어딨어 소릿길이지. 길을 비키라 해도 안비키니까 그 놈을 해칠려고 하니까 임금이 가만 놔둬라. 가마 내려라. 허고서난 그 놈을 가마에 태우고 들어갔단 얘기여. 그래서 전주성으로 들어갔어요. 전주성으로 들어가서 그 놈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줬어. 그래서 결국에는 나라를 팔아먹어 버렸네. 그래서 그 놈이 역적이여. 그래서 이완용이가 그 임금이 인자 죽고나서도 권력을 부렸잖아요. 권력을 부리다가 그 때 당시에 나 어느 시댄가도 잘 몰라. 그 분들한테서 얘기만 들었지. 금마 가면은 이완용이 무덤이 어디에 있냐. 근데 지금 금마 사람들도 어디가 묻어있다 어디가 묻어있다. 서로가 분분 하더라고. 왜냐하면 묘만 있고 실질적으로 푯말이 없잖여.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오드라고. 긍게 나라 팔아먹은 역적의 이완용이가 이완용 자손들이 저 그 왜냐 친일파들하고 연관이 되가지고 그 땅 찾을 때 자손들이 소송내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그렇지만 지 아버지 이완용이라는 명의로 땅이 있으니까. 아 뭐 일제 때 친일파들도 이 동네 안살지만 저쪽 동네 가면 또 살아서 후손도 있고 국회의원도 하고 그래요. 지금 끝발 좋은 사람들은 전부다 친일파들이여. 거의다 그려 왜냐햐면 거기서 내려온 사람들이 정치도 알고 사회도 알고 문화도 알고 다 안다고. 그리고 호랑이 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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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호랭이 얘기는 옛날에 할머니가 떡장사 하러 가다가 한 고개 넘어가면 호랑이가 어어- 떡하나 줄께 나잡아 먹지마라 이러고. 그려.

비고

면담장소 : 춘포 노적마을 김해영씨 자택.
면담시간 : 오후 4시
내용 : 마을 유래,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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